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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쓰기

2009년 9월 15일

친구들이 그림일기 쓰고 있을 때
나는 소설을 쓰고 있었더랬다.-_-;;;

전적으로, 국민학교 3,4학년때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한 형을 흉내낸 것이긴 했지만.

그때 형이 쓰기 시작했던 소설은
아더왕 이야기(원탁의 기사)에 삼국지를 덧붙여서 만들어낸
나름 대하소설이었더랬다.

형이 3국 중 한나라를 주인공으로 쓰길래
내가 다른 한나라를 주인공으로 모방작을 써냈다.-_-;;;
(모방작을 다시 모방-_-;;;)

그러니까 형이 쓴 소설이 유비가 주인공인 삼국지라면
내가 쓴 소설은 손권이 주인공인 삼국지랄까;;;
하여튼 국민학생용 노트에 큼지막한 글씨로
내가 직접 삽화까지 그려가며 처음 소설이랍시고 쓴 것이
정확히 국민학교 2학년 때였다.

그리구나선 해마다 국민학생용 노트로 2~3권에 달하는 장편(?)을 발표하기 시작.

3학년 때 쓴 소설은 처음 쓴 소설의 또다른 아류-_-였고
4학년 때 쓴 소설은 다시 형이 그 당시 쓰던 소설의 아류작이었다.

당시 만화영화 <하록선장>을 보고 삘이 받은 형이
우주전함을 타고 외계인을 무찌르는 SF영웅물을 하나 쓰길래
나는 그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의 아들 이야기를 썼다.-_-;;;

형은 그 소설의 기본틀이 마음에 들었는지
고등학교 때까지 두세 번의 개작을 거쳐
제법 스케일이 큰 SF대하드라마(우리 형제는 썼다하면 대하드라마… 단편 따위는 쓰지 않는다)를 만들어냈고

곁다리 붙은 나는
형의 개작 수위에 맞춰 그때 내가 쓴 소설을 역시 개작해나갔다.
뭐랄까, 상어 밑에 달라붙은 빨판상어 비슷한 느낌인데 어째.

하여튼 그렇게 SF류에 재미를 붙인 나는
<캡틴 퓨처 시리즈> 비스무리한 SF모험물들을 연달아 써제끼기 시작했는데
내용이야 뭐… 다 거기서 거기였을테고.

중학교에 들어가서도 이놈의 소설쓰기병은 고쳐지질 않아서
(이상하게 시험기간만 되면 쓰고싶은 소설꺼리가 생각나더라는)
주구장창 써댄 소설이 공책으로 몇 권이었더라.
(참고로 국민학교 시절 썼던 소설은 어머니가 불태워버렸다는;;;)
그때 썼던 것들이 판타지역사물(마법 나오고 뭐 이런) 아니면 SF, 추리소설 이런 장르였으니
요즘 말로 하면 장르소설 전문가였더랬다.

그러다가 중학교 3학년 때
평소 일기장검사-_-(중3한테 무슨 일기장검사)를 하면서 내 탁월한 문장력(?)을 눈여겨보셨던 담임선생님 – 국어 담당 – 이 어머니와 면담 중에 그 얘기를 하시고
(평소엔 공부안하고 소설쓴다고 구박하시더니) 아들 칭찬에 기분이 좋아진 어머니가 집에서도 맨날 소설만 쓴다고 자랑 아닌 자랑을 하시고
또 그 말을 귀담아들으신 선생님이 나를 따로 불러
학교 교지에 실어줄테니 그동안 썼던 소설 중에 하나 가져와보라고 하셨더랬다.

그동안 써놓은 소설은 죄다 장편으로 된 장르문학-_-인데 그걸 어찌 교지에 싣나.
그래서 순전히 교지에 실을 목적으로 그날밤 소설 한 편을 급조해내니
(그것도 기본시놉은 형이 잡아줘서 겨우 쓴 것임)
그게 내 홈페이지에도 소개해놓은 <권투시합>이다.

2시간만에 급조해낸 소설이긴 해도 담임선생님은 매우 흡족해하시면서
나 졸업하던 날 내 손을 꼭 붙잡으시며
너는 꼭 글쓰는 직업을 가지라는 쓸데없는 말도 해주셨더랬다.
(굶어죽으라는 얘긴가…)
촌지를 좀 아니 많이 좋아하셨던 선생님이긴 한데, 그래도 내 재능(?)을 알아보고 발굴해주신 선생님이기도 하고.
(어쨌든 내가 혼자 끄적거리던 글을 인쇄매체에 처음 실어주신 분이니까)

고등학교 가서도 소설쓰기병은 끝나지 않았는데
문제는 이제 확실히 머리가 굳었는지
어렸을 때 (비록 아류작이긴 해도) 소재를 쏙쏙 뽑아내며 다작을 하던 능력은 없어졌다는 것.

이때는 국민학교 때 썼던 소설 중에 좀 맘에 들었던 한 편을
기본틀만 놔두고 완전히 새로 쓰다시피하는 일에 몰두했었다.
어떤 소설이냐하면 앞서 형이 쓴 SF대하소설의 속편 격인 아들이야기를 썼다고 했었는데
그 아들의 아들이야기-_-를 쓴 게 또 있었다.
그러니까 최초 모티브가 된 소설의 속편에 속편격이랄까.
그래도 2세대가 지나가다보니 분위기도 완전히 바뀌고
기본배경도 싹 바꿀 수 있어서 별로 속편스러운 느낌은 없었더랬다.

그거 말고는 당시 좋아했던 (지금도 좋아하지만) <건담>과 내용/세계관이 비슷한
역시 SF대하소설을 끄적거렸던 것이 있는데
앞서 말한 “개작프로젝트”에 매진하느라 완결을 못지었다.
게다가 머리가 좀 굵어지니까, 어렸을 때처럼 뻔뻔하게 아류작 못쓰겠더라.
(요즘도 뭔가 쓰려고 하면, 비슷한 내용의 다른 작품들이 자꾸 생각나서 뭘 못쓰겠다)

어렸을 때 끄적였던 소설을 좀더 커서 다시 개작을 할 정도로 좋아했던 이유는
등장인물들이 상당히 많이 나오는데 (항상 나는 대하소설…)
국민학교 때 잡은 설정인데, 고등학생이 되고나서 봐도, 심지어는 지금 마흔을 바라보는 내가 봐도,
캐릭터들을 그럭저럭 괜찮게 잡아놨었다.
그걸 고등학생이 되서 좀더 손질하니 더 그럴듯하게 되고.
원작(?)에 없던 전편 부분을 넣으면서 일부 중요캐릭터가 변경되기도 하고 새로운 캐릭터가 핵심캐릭터로 들어가긴 했지만
기본틀, 주인공과 그를 돕는 7인방 캐릭터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어렸을 때 소설을 쓰고 있으면 형이 뺏아서 읽어보고는
네 소설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은 고정된 성격이 없다, 상황에 따라 이랬다저랬다 한다,
이런 비평을 귀에 딱지가 앉게 듣다보니
언제부턴가 소설을 구상(?)하기 시작하면
노트 맨 앞에 주요등장인물 쓰고 외모/성격/가족관계까지 다 써놓고 (물론, 쓰다가 필요하면 확확 바꾸기도 한다)
거기에 맞춰서 쓰던 습관 덕분인 것 같기도.

아무튼.
대학 들어갔다고 소설쓰기병이 나았으랴.
게다가 이때는 PC라는 엄청난 무기(?)까지 손에 들어왔으니.

정말 대학교 2학년 때는 집에 와서
내가 그동안 공책에 샤프로 썼던 소설(고치기 쉽게…)을 타이핑해서 컴퓨터 파일로 옮기는 일만 했던 거 같다.
(아니면 CAD로 건담3D 만들거나… 그것도 어디 아직 있을텐데)

결정적으로 군대에 간 후,
전설의 워드병이 되어 하루종일 PC만 붙잡고 살게 되자
(아래한글 단축키도 그때 다 외우고 있었다)
집에서 몰래 디스켓을 숨겨들어가 (디스켓은 원래 군대반입이 안됨)
그 소설 파일을 다시 뜯어고치기 시작했다.

당시 아래한글에 원고지매수계산 기능이 있었는데
그걸로 계산해보니까 전체 내용이 장편소설로 한두 권 분량인 거라.
나름 파일 6개로 나눠서 6부작으로 쓴 건데.

그래서 파일 하나를 장편소설 1권 정도 분량으로 늘리기 시작했다.-_-
(공군 좋다. 시간많고)
등장인물도 막 늘리고
어렸을 때 쓴 소설이라 개연성이 있건 없건 휙휙 넘어갔던 것도
앞뒤 설명 붙이고 다른 사건 몇 개 더 붙여서
나름 탄탄하게 고치고.

그렇게 첫번째 파일이 대충 한 권 분량이 되길래,
휴일에 사무실 내려가서 막 보급받았던 레이저프린터를 활용해서
아예 책을 한 권 만들었다.
(이거 지금도 집 어딘가에 있을 거다)
요즘 실력 같으면 표지 디자인까지 해서 그럴듯하게 만들었겠지만, 그렇게까지는 못하고.

하지만 아직 그 소설이 완성되지는 못했는데
4부인가 5부인가, 주인공이 여주인공을 구해서 탈출하는 장면이 있는데
내가 워낙 방어막을 잘 쳐놔서 주인공이 딱히 설득력있게 빠져나올 방법이 없는 거라-_-;;;
그래서 그거 해결하려다가 십년 넘게 완결을 못보고 있다.
(원래는 그냥 초인적인 힘으로 싹 쓸고 나오는데, 이젠 머리가 굵다보니 그런 결말 싫어서-_-)

하여튼 그렇게 군대 제대하고나서,
군대에서 있었던 사건 하나를 소설로 썼다.
장르소설이 아닌 정통소설-_-로는 두번째 작품 되겠다.

처음엔 단편소설이 될 줄 알았는데
워낙 글을 쓰다 보면 말이 늘어지는 편이라
(지금 이 글도, 이렇게 길어질 줄 상상도 못했다 ㅠㅠ)
원고지 150매 정도의 애매한 분량이 되고 말았다.

그때 동아일보 신춘문예에서 중편소설 당선상금이 천만원인가 그랬는데
돈욕심이 나서-_- 이 놈을 조금 늘려서 중편소설 분량으로 만든 후
(심사기준이 원고지 250매~300매였을 거다. 지금도 그러니까)
태어나서 처음으로 공모전에 투고를 했더랬다.

중편소설을 응모할 때는 맨 앞장에 시놉시스(줄거리)를 첨부해야한다는 건
보내고 나서 알았지.
뭐 그거 붙였다고 해서 당선될만한 물건은 아니지만.

그래도 써놓은 게 좀 아까와서
이듬해 학교 교지 문학상 공모에 투고했다.
여기는 단편소설로 응모해야되서 내용을 또 팍팍 줄여야했고;;;
상금도 고작 30만원;;; (그때는 큰 돈이었음)

설마설마했는데, 개학하기 전에 당선됐다고 연락오더라.
태어나서 처음 당선소감 이런 거 쓰는데 기분 참 이상하더만.
응모작이 달랑 세 편이었다는 건 나중에 교지가 나온 뒤에 알았고.

그래도 교지에 내 이름과 글이 실린 덕분에
(평소엔 교지 같은 거 쳐다도 보지 않던) 동기들이 교지 읽고나서 “백작가”라고 불러주기도 하고
동기 여자친구 한 명은 자기가 팬 해드릴테니까 나중에 내가 책 내면 싸인해서 한 권 공짜로 달라는 말도 안되는 부탁도 하고.
뭐 그랬었네.
그게 1997년이니까 꼭 12년전.

그리고는 지금까지 소설을 쓴 적이 없다.

홈페이지에 이것저것 잡문 끄적이는 것도 지긋지긋해지는 마당에
새로운 이야기를 창작해내는 게 어디 가당키나 하겠나.
게다가 워낙 장르소설-_-에만 치우쳐서 글을 써대다보니
(사실 위에 쓴 소설도 상당부분 추리소설의 구조를 갖고 있음)
뭔가 새롭게 들리는 소재가 아니면 아예 글을 쓸 흥미조차 생기지 않는 거다.
그런데 세상에 정말 새로운 소재가 얼마나 되겠어. 대충 다 옛날에 울궈먹은 그렇고 그런 것들이지.
그렇다고 그렇게 옛날에 나온 거 조금 변형해서 쓰자니 어렸을 적에 아류작 남발하던 트라우마가 있어서 그건 또 싫고.

그래서 소설은 안썼다.
그렇다고 일부러 안쓴다는 건 아니니까 진짜 뭐 괜찮은 내용 생각나면 쓸지도.
근데 먹고 살기 바빠서…
(요즘 월급 쥐꼬리, 펀드 반토막, 통장은 썰렁 어쩌구 하는 SKT 광고가 있는데 어찌나 내 얘기 같던지)

그러다가 며칠 전에
한겨레21에서 “누구나 소설쓰는 시대”라는 제목으로 된 기사를 읽었다.
http://h21.hani.co.kr/arti/cover/cover_general/25722.html

예나 지금이나
소설을 포함한 글쓰기로 먹고살 생각은… 별로 없다.
없다기보단, 그건 먹고살 도구가 못된다는 생각이 더 크다고 할까.
(전업작가=굶는다. 뭐 이런 사고방식)
그래서 신춘문예 붙을라고 스터디하고, 이런저런 글쓰기 강의듣고, 이런 거 좋아하지 않는다.
작가가 무슨 자격증도 아니고. 아무나 쓰면 쓰는 거지.

바로 저 “아무나 쓰면 쓰는 거지”와 기사 제목이 맞는 거 같아서 처음엔 읽기 시작했다.
근데 읽다보니, 도로 무슨 강좌 나오고, 문학상 나오고, 그러더라.
(하긴 귀여니 같은 이야기 나와도 별로긴 하다만)
그래서 그냥 대충 읽다 말라구 했는데,

중간쯤에 “일반인 창작 사이트” 소개가 있더라.
그런 거 있는 줄은 알고 있었다. 조아라나 문피아 같은 곳은 유명하니까.
그런데 그런 곳은 내가 알기로 게시판형식인데
알라딘에서 블로그 형식으로 연재할 수 있는 공간을 새로 만든 모양.
이게 갑자기 솔깃했다.
그렇다고 새롭게 뭔갈 써보고 싶은 충동은 아니고,
홈페이지 운영하면서 매너리즘 이야기를 입이 닳도록 해왔는데
그런 측면에서 돌파구 같은 걸로.

알라딘 가입해서 이것저것 알아보니
꼭 소설이 아니라 다른 글(이를테면 내가 홈페이지에 쓰고 있는 건축물 소개라거나, 영화 베스트 같은 것)도 연재 형식이면 되는 것 같더라.
외부 블로그 링크도 가능하고.

그런데 내 홈페이지를 그냥 걸어버리면 메타블로깅하고 다를 게 없잖아.
그래서 생각하다가 그냥 알라딘에 블로그를 새로 만들어서
거기에 글을 올리기로 했다.

인터넷 생활 12년만에 제대로 두집 살림하는 건 처음.
(몇년 전 네이트에서 “통”서비스할 때 베타이용자로 초청받아서 두달 정도 빡쎄게 관리한 적은 있음. 그땐 돈도 받았던 거 같은데)
일단은 한시적인 개념으로, 올 연말까지는 가볼 생각.

우선은 “소설”을 “연재”해야할 것 같아서
신춘문예 떨어지고 학교에서 당선됐던 중편소설을 쪼개서 올렸다.
그러고보니 이거, 옛날에 오마이뉴스에서 인터넷문학상이라고 했던가 하여튼 공모전이 있길래
재탕하는 차원에서 보냈던 적도 있었는데.
(그때는 최종심에서 5편까지 올라갔던가… 하여튼 떨어졌음)
(그런데 심사평이, 주인공이 범인을 잡으려고 하지 않는 결말이 맘에 안들어서 탈락이라나)
이번에 알라딘에까지 올리면 삼탕인가.
뭐, 공모전에 보내는 건 아니니까 삼탕까지는 아니겠지.

올리면서 조금씩 표현 고치고 (원래 퇴고하는 성격 아닌데) 하다보면
뭔가 새로운 걸 쓰고 싶다는 충동이 일어날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할 수 없고.
다 올리면 아직 개작중인-_- SF대하소설도 올려보던가
아니면 고등학교 때 쓰다만 또다른 SF대하소설을 올려볼까.
올리면서 고쳐쓰다보면 계속 쓰고싶어질지도 모르니.
어쨌든 연말까지만.

돈이 될 궁리를 해야되는데 자꾸 쓸데없는 궁리만 하는
시대가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