캬바레나 춤바람이라는 어두운 일면으로만 기억되는 사교댄스지만, (요즘은 스포츠댄스라고 불리길 바라는 것 같던데) 영화 속에서 사교댄스는 대개 아름답게 그려지게 마련이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스칼렛과 버틀러의 왈츠라거나, <애수>에서 마이러와 크로닌의 블루스, 최근에는 <여인의 향기>에서 알 파치노와 가브리엘 앤워의 탱고를 생각해보면 말이다.
<왕과 나>에서 데보라 카와 율 브리너가 함께 춤을 추는 장면은 또 어떨까. 샴왕국의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율 브리너지만, 영국인 가정교사에 대한 호감을 함께 춤을 추겠냐는 말로 돌려서 표현할 수 밖에 없었던 그 수줍음이 “Shall We Dance?”라는 음악에 함께 녹아있었다. 일본영화 <쉘 위 댄스 ?>의 마지막 장면에서도, 스기야마에게 춤을 청하는 마이는 “Shall We Dance?”라는 말로 그 영화 속의 추억을 되살려낸다.
어두컴컴한 홀에 홀로 조명을 받고 서있는 히로인. 그녀가 주위를 둘러보다가 자신의 마지막 춤 파트너를 선택하고 다가온다. 그녀는 주인공 앞에 멈춰서고, 조명은 두 사람만을 비추고, 그녀는 속삭이듯 주인공에게 묻는다. “쉘 위 댄스?” 상기된 표정의 주인공이 그녀의 손을 잡고 홀에 나서면, 바로 <왕과 나>에서 들리던 그 노래 “Shall We Dance?”가 흐르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영화제목에서부터 기미가 보였던 일이지만, 영화 <쉘 위 댄스 ?>는 <왕과 나>를 통해 사교댄스에 대한 막연한 향수나 동경을 갖고 있던 관객들에게 훌륭하게 어필할 수 있었던 영화였다. 그 음악을 클라이맥스에 배치하고, 그 대사를 적절하게 사용한 점부터, <쉘 위 댄스>는 조금 심하게 표현하면 “<왕과 나>가 낳은 영화”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영화가 낳은 영화 – 일종의 오마쥬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 라는 점에서 <왕과 나>의 그 춤 장면은 단지 클라이맥스만 장식하는 것이 아닌, <쉘 위 댄스 ?> 영화를 이끌어가는 큰 요소로 자리잡고 있다. 이제는 중년이 된 사람들이 젊었을 적 보았던 영화 <왕과 나>의 그 인상적인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것뿐 아니라, 그 음악에 이끌려 춤에 빠져든 스기야마를 보며 지금의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미모의 아가씨로부터 춤 신청을 받는 자기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게 해주는 것이다. 할머니 춤선생님의 말처럼 “아직도 저 노래를 들으면 가슴이 설레는” 세대에게 “Shall We Dance ?”라는 음악은, 노래는, 대사는 영화 속에서는 주인공을, 극장에서는 관객을 영화에 빨아들이는 묘한 흡입력을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극중에서도 스기야마가 마이의 환송파티로 발걸음을 돌리게 된 이유는 댄스교습소의 창문에 붙어있던 “Shall We Dance ?”라는 문구였으니까.
<왕과 나>에서의 원곡보다 조금 달콤하게 편곡된 듯한 삽입곡 “Shall We Dance ?”는, 영화 속에서의 스기야마의 일탈(?)만큼이나 경쾌하고 깔끔하게 마지막을 장식해준다. 이 음악, 그리고 <왕과 나>에서의 추억이 있었기에 이 영화는 성공했고, 사교댄스 붐까지 일으켰다면 조금 심한 단정일까? 적어도 나는 심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