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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메멘토 Memento (2000)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에피소드들이 시간이 뒤죽박죽 되어있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보지 않으면, 상당히 따라가기 힘든 영화죠. (저는 미리 알고 봤습니다) 그렇기에 저처럼 알고 본 사람이나 모르고 봤어도 금방 눈치챈 머리 좋은 사람들 말고는 욕 뒤지게 먹는 영화이기도 하고. 거꾸로 흘러가는 이야기와 제대로(시간 순서대로) 흘러가는 이야기를 마지막에 만나게 하면서 결말을 짓는 부분이 특히 좋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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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대부 2 The Godfather Part II (1974)
시간순서가 뒤죽박죽이라기보단, 서로 다른 두 개의 이야기를 번갈아 보여준다는 경우에 더 가깝기 때문에… 고심하다가 그래도 처음 이 영화 볼 때 뭐가 어디 이야기인지 몰라서 헤맸던 기억이 워낙 강렬해, 2위에 넣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이 영화가 확실한 뒤죽박죽 스토리라고 확신했었다면, 1위로 했을지도 모르죠. 물론 젊은 비토 콜레오네 이야기가 현재의 대부 마이클 콜레오네 이야기보다 영화 속 시간상 과거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시간이 뒤죽박죽되고 있는 것도 엄밀히 말하면 맞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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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펄프 픽션 Pulp Fiction (1994)
시간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어서 (막말로 대충 편집해서) 그냥 관객에게 던져주고 니들이 알아서 짜맞춰봐라 라고 한 건 이 감독이 원조일지도 모르죠. 바로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얘가 만든 영화는 거의 이런 구조로 되어있죠. (<킬빌>이든 <저수지의 개들>이든) 이런 식의 구성을 선호하는 이유는 아마도, 주인공의 불완전성(모든 걸 알지 못하는)을 강조하고 더불어 관객도 그런 불완전한 상태의 공감대를 끌어내기 위해 미리 알려주지 않고 진행하는, 그런 게 아닐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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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이터널 선샤인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 (2004)
<메멘토>가 가장 대표적인 케이스겠지만, 영화에서 일부러 시간을 뒤죽박죽으로 만드는 이유 중 하나가 이렇게 기억상실증 같은 소재를 활용해 주인공과 함께 현재에서 과거의 시간을 찾아가기 위한 경우죠. 뭐, <메멘토>나 <이터널선샤인>이나 주인공이 기억을 찾는다기보단 관객들에게만 진실을 조용히 알려주는 경우긴 합니다. 하여튼 이놈의 영화, 처음 만나는 장면에서 그다음 이야기까지 워낙 뒤죽박죽이라, 어디서부터 현재고 어디서부터 과거인지 영화보면서 한참 고민하게 만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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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러브레터 Love Letter (1995)
이런 식으로 회상모드를 동원해 현재와 과거를 교차편집한 경우는 상당히 흔한 예죠. 얼른 생각해봐도 여러가지 영화가 떠오르긴 하는데, 그 중에서 아무래도 <러브레터>가 인상적이긴 했나 봅니다. 기억상실증까지는 아니지만, 별 생각없이 넘겨버렸던 학창시절의 남학생을 다시 되새겨보다가 자신도 몰랐던 사랑을 알아버린다는 점에서 시간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어 관객과 함께 주인공이 기억을 찾아가는 케이스네요. 이 영화는 <메멘토>나 <이터널선샤인>과 달리, 주인공이 기억을 찾긴 찾는군요.
<박하사탕>이나 <돌이킬 수 없는>처럼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올라가는 영화도 포함시킬까 하다가, 그냥 제외시켰습니다. <타이타닉>처럼 현대의 화자가 과거의 이야기를 하는 경우도 제외시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