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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시상식, 그 지겨운 나눠먹기

2004년 1월 3일

매년 해가 바뀌면서 가장 적응하기 힘들었던 것이, 문서를 작성하거나 기타 글을 쓰면서 날짜를 기록하려고 할 때 월/일은 맞게 쓰면서 년도만 계속 지나간 년도를 쓰게 되는 것이었다. 지금도 글을 쓰려다가 날짜가 틀린 걸 보고 고치면서 또 그 고민을 했다. 2003년? 2004년?

어쨌거나 해가 바뀌었다. 새해에는 묵은 것들 다 털어내버리고 새로운 희망을 향해 힘차게 전진하라고 방송 언론에서 열심히 떠들어대던데, 지들이 구린게 있으니 저러는 건가 하는 삐딱한 생각 잠시 해주고, 해마다 연말이면 되풀이되는 그놈의 무슨무슨 가요대상, 연기대상 하는 것들 좀 씹고 가야겠다.

특히나 올해는 예년에 비해서 논란거리가 많은 시상식이 되어버려서 씹을거리가 무척 많다. 가요대상만 놓고 봐도 SBS는 예상대로 이효리에게 대상을 주면서 생각없는 방송사라는 점을 만방에 알렸고, 항상 보수적인 면이 돋보였던 (HOT가 한창 인기 높을 때도 임창정에게 대상을 줄 정도로) KBS는 <해피투게더> 진행 오래 해줘서 고맙다는 이유로 효리에게 연예대상도 아닌 가요대상을 주는 미친넘 널뛰는 짓거리를 저질렀으며, 효리가 대상 받으면서 하도 욕을 많이 먹자 MBC는 얼른 이수영에게 상을 주는 얌체짓을 저질렀다. 가요대상에 비하면 연기대상은 대충 예상됐던 사람들에게 돌아갔는데, 안재모나 김희선에게 대상을 주는 등 연기대상에서도 아무 생각없다는 사실을 국민들에게 자주 일깨워주던 SBS가 김희애를 제치고 이병헌/송혜교 커플에게 대상과 최우수상을 나눠주면서 논란에 본격적으로 불을 지펴버렸다. (김수현 아줌마는 또 왜 끼어들고 그랬을까?)

원래는 이 글을 연말에 맞춰서 (시상식 하기 전에) 써서 올리려고 했는데, 게으름에 미루고 미루다보니 해를 넘겨버리는 바람에 마치 김희애가 상 못받은게 억울해서 이런 글을 쓰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는데… 처음 이 글을 쓰려고 했던 것은 연말이 되면 늘 그렇듯 지들끼리 나눠먹을 거다, 라는 너무나 뻔한 사실을 씹어보려고 했던 것이기 때문에 김희애가 대상 받았어도 이 글 썼을 거다. 올해, 가 아니고 작년이라고 해서 갑자기 방송사들이 정신 바짝 차리고 공정하게 상 줄리도 없고. 아니 엄밀히 말해서 방송사들이 정말 정신 바짝 차렸다면 저런 대상 뭐시기 하는 것들 다 없애버려야 정답이겠고.

연말만 되면 각종 신문사 방송사에서 무슨무슨 시상식이 왜 그리 많나. 연말에 주는 가요상만 해도 십몇개란다. 신문사마다 방송국마다 다 주니까. 그게 무슨 개성이 있는 것도 아니고 권위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연말이 되면 남들 다 하니까 한다. 맨날 상 받다가 올해 좀 부진해서 상 못받을 것 같은 가수는 후배에게 상 양보한다고 말해서 그나마 있는 권위도 깎아먹어주고, (조용필이 최초다) 보통 성인가요라고 불리는 트로트가수들은 구색맞추기 식으로 항상 끼워넣어지고… 그런 식이다. 솔직히 그렇게 많을 바에는 수상위원회별로 좀 차별화를 해서 우리는 뭐 댄스가수들만 준다거나 우리는 트로트가수들만 준다거나 우리는 록그룹만 준다거나… 그렇게라도 해보지, 다 똑같다. 보통 이렇게 비슷비슷한 것들이 여러개 난립하면 대충 몇개는 사장되거나 도태되던데, 그렇지도 않은 거 보면 그놈의 상 받을라고 뒷돈깨나 오가는 모양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연기대상은 더 가관이다. 한 80년대? 그쯤에는 연말 연기대상은 정말 중년연기자가 아니면 받기 힘들었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20대 배우가 주연상 받기 힘든 것이랑 뭐 비슷한 경우였다고 하겠다. 그러다가 요즘은 드라마가 트렌디? 뭐 그런 이름 붙으면서 주연배우들 젊어지더니 20대 초반의 연기경력 3~4년된 어떻게 보면 초짜 배우들이 대상 떡떡 받아간다. 뭐 지나치게 연륜 따지고 서열 따지는 것도 좋을 거 하나도 없지만, 그래도 드라마가 인기 끌었다고 그냥 주연배우 상주는 식의 연기대상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연기대상들을 죄다 챙겨보거나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에 좀 불공정할 수도 있지만, 내가 기억하는 한 가장 황당했던 대상은 MBC에서 <보고 또 보고>로 김지수에게 대상 줬을 때, 그리고 SBS에서 <토마토>던가로 김희선에게 대상 줬을 때였다) 이제는 시청자들도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서, 그냥 대박터진 드라마 있으면 그 드라마 주연배우가 대상 타려니 하고 생각하게 됐다. MBC에서 이영애가 받느냐 하지원이 받느냐 다투는 게 그 짝이고, SBS에서 이병헌이냐 김희애냐 싸우는 게 그 짝이다.

최우수상 우수상 나눠서 상 주는 것도 웃기고, (최우수상 후보에서 떨어진 사람은 우수상 받은 사람보다 잘했다는 건가 못했다는 건가? 하긴 옛날에는 대상 후보도 따로 있었다) 대충 주기 애매하면 두명 세명씩 공동수상으로 때려버리는 이런 시상식이 해마다 반복되는 이유는 웃기게도 시청률이 잘나와서란다. 근데 이 바보들아, 연말 그 시간대에는 그냥 재미있는 버라이어티쇼나 괜찮은 영화 하나만 방영해줘도 그 정도 시청률은 나온단 말이다. 쓸데없이 시청자들 바보로 만들지 말고, 연말에 프로그램 쉽게 하나 만들어서 일주일 편하게 먹으려고 하지 말고, (연말만 되면 무슨 특집프로그램이랍시고 일년 내내 방송해준 거 편집해서 또 보여준다!!!) 지들끼리 딸딸이치면서 울고 짜고 하는 그런 구경거리나 만들어서 보여주지 말고, 차라리 그 시간대에 하던 정규프로그램이나 그냥 보여줘라. 스포츠중계 할 때는 정규방송 관계로 잘도 짤라먹더니 이런 잡짓거리 할 때는 왜 정규방송 안내보내주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