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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달 장군과 평강공주

1999년 12월 19일

고구려 평강왕에게는 평강공주라는 딸이 있었다. 이 공주는 어려서부터 성격이 착실하고 예의범절이 바른 탓에 중신들로부터 칭찬을 들었고, 특히 왕으로부터 매우 총애를 받았다.
당시 고구려에는 장래가 촉망받는 소년 장수가 한 명 있었으니, 그 이름이 온달(溫達)이었다. 인물도 수려하고 무예가 뛰어났지만 학문에도 조예가 깊어, 장차 고구려를 이끌어갈 인물이 될 거라는 칭송이 자자하였다. 평강왕은 저 정도 인물이면 평강공주의 짝이 될만하다 여겨, 평강공주에게도 늘 “너는 장차 온달 장군에게 시집보내겠다” 라는 말을 하곤 하였다. 나이 어린 평강공주도 소년장수 온달이 싫지 않았던지,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더욱 몸가짐을 조심하곤 하였다.

마침내 공주가 성장하여 16세가 되었는데, 이때부터 공주의 생각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공주는 자신보다 학문도 부족하고, 나라를 다스릴만한 그릇도 안되어보이는 오빠들이 단지 아들이라는 이유로 나라를 물려받는다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공주의 생각으로는 이미 많은 전공을 쌓으며 고구려의 기둥으로 성장한 온달 장군이 왕위를 물려받을만한 재목일 것 같았다. 공주는 온달 장군을 남편으로 삼아, 자신의 학문과 지혜를 덧붙여 함께 고구려를 다스리는 것이 나라의 발전에 훨씬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굳히고 부왕에게 어려서의 약속을 지켜서 자신과 온달을 혼인시켜줄 것을 청하였다.
그러나 아녀자가 함부로 자신의 혼사에 대한 말을 입에 담았다는 이유로 평강왕은 공주를 호되게 혼내고 궁궐밖으로 내쫓고 말았다. 자신의 혼사를, 그것도 이미 부왕이 약속한 바 있던 혼사를 단지 여자가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는 이유로 질책을 당하게 되자 공주는 그 부당함에 치를 떨었고, 부당한 부왕의 처사에 대한 항거로 연금 중이던 집에서 몰래 탈출하여 온달의 집으로 숨어든 뒤 온달 장군과 몰래 결혼을 해버리고 말았다.

자신의 명을 어기고 멋대로 행동한 공주에게 화가 난 평강왕은 즉시 온달과 공주를 잡아들이라고 명하고, 어쩔 수 없이 두 사람은 이름을 숨기고 숨어살게 되었다. 그러나 이미 공주는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온달의 인품이나 학문이 부족함에 실망하고 있었다. 하지만 공주는 좌절하지 않고 온달을 다그쳐 자신이 생각하는 수준까지 끌어올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여자가 국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이 막힌 상태에서 공주가 택할 수 있는 최선은 남편을 출세시키는 것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고생을 모르고 살았던 온달은 숨어사는 생활에 쉽게 지친데다가 생각보다 독한 공주의 품성에 자꾸 기세가 꺾여가기만 할 뿐이었다.

몇 년이 흘러 고구려가 중국과의 싸움에서 크게 이기자, 평강왕은 대사면령을 내리면서 공주와 온달의 수배도 함께 풀었다. 공주와 온달은 몇 년만에 떳떳한 공주와 부마로 도성으로 돌아올 수 있었고, 비록 한때 화가 나서 내치기는 했었지만 지혜로운 공주와 용맹스러운 사위에게 만족하고 있었던 왕은 기쁜 마음으로 둘을 맞이하였다.
그런데 며칠 뒤, 왕이 신하들을 이끌고 사냥을 나간 자리에서, 한 명의 장수가 자꾸 말에서 떨어지고, 화살도 불안하며, 어딘가 주눅이 들어있는 사람처럼 기를 못펴고 행동하는 것이 왕의 눈에 거슬렸다. 사람을 시켜 그 장수를 불러와보니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말 위에 날고 기며 귀신같은 활솜씨를 자랑하던 그 온달 장군이 아닌가. 왕은 눈과 귀를 의심했지만, 숨어살면서 공주의 기세에 완전히 주눅이 들어버린 온달은 이미 예전의 촉망받던 소년 장수의 모습을 많이 잃어버린 다음이었다.

그래도 예전의 용맹함을 잊지 못한 평강왕은 계속 온달을 믿고 전장에 내보냈지만, 온달은 연전연패하며 왕의 체면만 깎아먹을 뿐이었다. 온달은 패하고 돌아올 때마다 문전박대해버리는 평강공주 때문에 더욱 주눅이 들고, 또 주눅이 들어서 다음 전장에서도 더 기를 펴지 못하는 악순환만 되풀이하고 있었다. 대충 눈치를 잡은 왕은 온달과 공주를 떼놓을 겸, 신라와의 격전지인 아차성으로 온달을 파견시켰다. 그곳은 워낙 격전지라 대부분의 장수들이 살아 돌아오지 못하는 곳이었는데, 사위를 그곳으로 보내는 걸로 봐서 왕의 사위에 대한 애정이 많이 식었다는 소문이 무성하게 돌았다. 한편 평강공주는 아차성을 떠나는 온달에게 “당신, 아차성에서부터 계립령과 죽령 서쪽의 땅을 뺏지 못하면 돌아올 생각도 하지마” 라고 으름장을 놓았고, 소심해진 온달은 대꾸 한 마디 하지 못하고 아차성으로 떠났다.

아차성에서 큰 싸움이 벌어지고, 온달은 안타깝게도 신라군의 화살을 맞고 목숨을 잃고 말았다. 그런데 온달의 시신을 관에 담아 왕이 있는 도성으로 옮기려고 하니, 관이 땅에 들러붙은 듯 꼼짝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장사 몇 명이 달라붙어도 관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보다못한 장수 한 명이 전갈을 보내 평강공주를 아차성으로 불렀다. 아차성으로 달려온 평강공주는 꼼짝도 하지 않는 관을 향해 한 마디 던졌다.

“당신, 까불지 말고 빨리 안움직여?”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관이 움직여, 온달의 시신은 무사히 도성으로 옮겨져 장례를 치룰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