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신림동 윗집에 살 때니까 국민학교 4학년보다 이전일텐데
일식이 일어난다고 해서 어머니랑 형님이랑 다 같이 마당에 나와서
안쓰는 선글라스에 매직을 칠해서-_- 봤던 기억이 있다.
그후로는 일식이 있다고 해도 뭐, 우리나라에서 잘 안보이거나 살짝 보이고 말거나 그래서 별 관심이 없었는데
오늘은 부분일식이긴 해도 태양의 80% 정도를 가린다나 어쩐다나 하며 여기저기서 꽤 요란스럽길래
태양이 바로 내리쬐는 자리에 앉아있는 덕분에-_- 오랜만에 일식을 좀 볼 수 있으려나, 하고 기다렸더랬다.
대충 아침 10시쯤 되서 다른 사람들하고 다같이 태양을 쳐다봤는데
대충 일식이 진행된다는 것 정도는 보이는데 아무래도 눈이 부셔서 계속 쳐다볼 수가 없더라.
나말고 안경 혹은 렌즈를 끼는 눈나쁜 다른 사람들은 아예 맨눈으로는 보이지도 않는다고.
어디서 선글라스니 OHP필름이니 수많은 도구들이 동원됐지만
잘 안보이는 모양.
마침내 성공한 세 가지 방법이
첫번째는 색이 있는 OHP필름을 네 장 겹치고 선글라스를 끼고 보는 방법.
두번째는 핸드폰에 있는 액정화면을 거울로 활용해서 (검은색 거울이라 좀 덜 눈부심) 보는 방법.
세번째는 슬라이드필름에서 검은색이 짙은 부분을 이용해서 보는 방법.
세번째가 제일 확실하게 보이더라.
그러구나서 인터넷을 찾아보니 판자에 구멍을 뚫어서 관찰하는 방법도 나오길래
메모지에 핀으로 구멍을 뚫어 그림자를 만들어보니
오오, 정말 빛이 동그랗게 들어오는게 아니라 초승달 모양으로 만들어지는게 아닌가.
신기해서 사람들한테 보여주니 너도나도 메모지에 구멍 뚫어서 해보고.
아쉬운 건 장비가 부족해서 카메라로 찍어놓지 못한 건데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이 찍은 사진이라고 보내준 걸 몇 장 받은 걸로 그냥 만족하기로 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2030년까지는 기회가 없다던가…-_-) 찍어보던가 해야지.
그러다 문득, 우리가 살면서 얼마나 자주 태양을 쳐다봤었는지,
모처럼 일식 같은 신기한 현상이 벌어졌다는 이유로 너도나도 그동안 외면해왔던(?) 태양을 쳐다보지 못해 안달이 났는지,
그런 희안한 생각이 들었더랬다.
어렸을 때 읽은 햇님달님 동화에서
햇님이 된 누이동생이 사람들이 쳐다보는게 부끄러워서 강한 햇살을 쏴서 자신을 쳐다보지 못하게 했다…는 대목이 있었는데
(여러가지 버전이 있다보니 그런 소리 첨 듣는다는 사람도 있겠지만)
새삼 그 이야기도 기억나고.
물론 태양을 쳐다보면 재채기를 하는 “광반사재채기”를 앓고있는-_- 사람이긴 하지만
일식 같은 일이 없어도 가끔 태양을 쳐다봐주는 건 어떨까, 하는 아주 쓰잘데기 없는 생각이
들었다는 그런 이야기다.
어째 마무리가 좀 이상해진
시대가 썼습니다.
아래 사진은 그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이 찍은 사진 중 한 장.
저작권이 저한테 있는 게 아니고 저도 무단으로-_- 올린 것이니 퍼가지 마실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