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동전사 제타건담>의 극장판이 개봉되기까지 이제 딱 5주 남았다. 이번 극장판도 퍼스트건담의 극장판처럼 3부작으로 나뉘어 개봉될 예정이라니 이번 극장판 – 1부에서 사실상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고 생각은 되면서도, 나름 두근거리는 기분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제타건담의 극장판이 준비 중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만 해도 아득하게 느껴지던 것이 벌써 개봉을 코 앞에 둘 정도로 다가오고 말았다. 몇 년 전만 해도 일본에서 개봉되는 건담의 극장판이라는 것은 그저 손가락이나 빨면서 부러워할 뿐인 존재였을 것이다. 하지만 돈 좀 벌고 ^^; 재작년 홀로 유럽에 날아갔다 온 경험이 붙어버리니 갑자기 날아서 한 시간 거리인 일본은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더란 말이다. 그래서 올초부터 <제타건담 극장판>은 꼭 일본에서 보고 말겠다고 단단히 마음을 먹고, 이것저것 저렴하게 일본을 다녀올 (당일치기로라도. 일본에 다른 곳 관광할 생각은 굳이 없으니) 패키지가 있나 없나 뒤져보다가 1박4일-_-;이라는 살인적인 일정의 반딧불여행을 알게 됐고, 현재는 개봉날인 28일에 튈 것이냐 여유있게 6월6일 현충일 연휴 끼워서 개봉 다음 주에 갈 것이냐만 놓고 고민하는 중이다. (개봉하는 주에 가자니 예매도 안한 상태에서 혹시 공치기라도 할까봐 겁나고, 연휴 끼워서 다음 주에 가자니 연휴라는 특성상 비행기표가 없을까봐 겁나고… 하여튼 빨리 결정해야한다)
못해도 돈 몇십만원 쉽게 깨질 이번 여행을 계획하자니 스스로 이런 질문을 던져보지 않을 수 없었다. 너는 무엇 때문에 굳이 일본으로 가려고 하느냐…? 솔직히 이유는 많다. 이유가 없어서 계속 질문을 던진 것이 아니다. 그 이유라는 것들이 정말 회사업무에 치이다가 (그 때가 딱 마감기간이다) 꼭 쉬어야할 황금같은 주말을 내팽개치고 가야할만큼, 월급의 3/4를 적금에 부어넣은 다음 남은 쥐꼬리만한 돈으로 눈물 젖은 빵 씹어가며 살던 놈이 그 쥐꼬리 몇달치를 모아서 한꺼번에 날려버릴만큼, 그렇게 대단한 이유냐는 것이었다.
솔직히, 이번 제타건담의 극장판이 국내에 정식 개봉할 확률은 제로에 가깝지만, 부천판타스틱영화제나 부산국제영화제 같은 시공간을 빌어서 국내 스크린에 걸릴 확률은 상당히 높다고도 생각해봤다. 그렇다면 차라리 그런 공간을 이용하지 굳이 일본까지 날아갈 이유/필요 없다. 단지 이유가 제타건담 극장판을 좀더 빨리 보고 싶다는 내지는 정식으로 영화관에 걸린 모습을 보고 싶다는 이유만이라면 말이다. 얼마나 새로운 컷이 추가되고 얼마나 새로운 내용이 첨가되었는지가 궁금했다면 무신경한 내 성격을 충분히 활용해서 마지막 3부작이 개봉했을 때나 일본에 갈 생각을 품었을 수도 있다. (<반지의 제왕>도 극장가서 본 것은 마지막 3편이 개봉할 시점에서였다) 사실 제타건담의 팬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카미유의 마지막 결말을 토미노 감독이 새로운 극장판에서 어떻게 처리하는지, 샤아는 과연 어떤 방식으로 행방불명되는지, (아는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TV판에서는 하만 칸에게 짓밟히는 상당히 쪽팔린 최후를 맞이한 반면, 소설판에서는 그냥 어영부영 행방불명되어버린다) 뭐 그런 것들이라고 봤을 때 사실 제타건담은 등장하지도 않을 극장판 1부를 굳이 일본까지 가서 볼 필요가 있겠느냐, 뭐 이런 식으로 말이다.
지금도 솔직히 “꼭 가서 봐야만 한다”고 주장할만한 강력한 이유는 없다. 이런저런 이유가 복합되서 상당히 큰 이유를 두리뭉실하게 형성했을 따름이지. 그렇지만 저 시간과 돈을 투자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 이유를 두 가지만 열거하겠다. 무척 주관적인 이유이긴 하지만.
첫번째, <제타건담 극장판>이 개봉되는 일본 현지의 분위기를 보고 싶은 거다. 일전에 웹서핑을 하다가 고지라 류의 괴수물을 좋아하는 분의 홈페이지를 둘러본 적이 있었는데, 그 분이 일본에서 고지라의 새로운 극장판이 나왔을 때 직접 일본으로 가서 극장에서 보고 온 후기를 올려놓았었다. 그 글에서 받았던 느낌 중 가장 강렬했던 것이 고지라가 개봉되면 그 개봉관과 주변 상가에 고지라 관련 상품 – 캐릭터 상품, 설정집, DVD 등 – 의 판매가 호황을 이루는 부분이었다. 건담도 그에 못지 않을 것 아닌가. 제타건담이 개봉된 극장 주변에 크게 세워진 건담의 모형이라거나, 등장인물의 코스프레, 극장 안과 밖에서 쌓아놓고 팔아제끼는 건담 DVD나 캐릭터 상품, 설정집, 일러스트집 등… (현찰 많이 가져갔다간 눈 돌아가서 다 써버릴지도 모른다. 아껴써야지) 그런 열기를 직접 보고 오고 싶은 거다. 조금 냉정하게 말하면 과연 일본놈들은 이 작품을 얼마나 좋아하고 얼마나 집착하는지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가장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싶다는 뜻이고, 조금 뜨겁게 말하면 한국에서는 그리 많이 만나기 힘든 건담매니아들 좀 실컷 구경해보고 싶다는 뜻이다.
두번째, 제타건담과는 별개로 일본을 좀 구경하고 싶은 거다. 물론 시간도 짧고, 소위 일본여행이라면 흔히들 말하는 온천이라거나 후지산이라거나 오사카성이라거나 그런 것들은 구경도 못해볼지 몰라도, 재작년 형님이 공부하고 있는 독일-프랑스를 며칠 돌아다니면서 내가 눈으로 보면서 걸어다녀야할 곳들이 많다는 것을 새삼 느꼈기 때문에, 제타건담 극장판의 개봉을 핑계삼아 일본을 짧게라도 구경하고 싶은 생각이 많이 들었던 거다. 사실 국내에도 여행다닐만한 곳 많고 그게 시간이나 돈이 훨씬 적게 들지만, 나이 삼십 넘어 주말이면 픽픽 쓰러지기 일쑤인 거꾸러지는 청춘이다보니, 뭘 구경한다는 구체적인 동기가 없이 그냥 막연한 마음만 가지고는 그런 여행, 쉽게 결정하지 못한다. 그래서 “제타건담 극장판 개봉”이라는 좋은 핑계거리를 만난 김에 “너는 건담을 좋아하고, 건담 홈페이지도 운영하고 하니까 이건 꼭 일본 가서 봐야해” 식으로 엉뚱한 자기 최면 걸어서, 없는 주말 시간 쪼개서 일본 날아갈 명분을 쌓았다는 말이다. 솔직히 남들이 비싼 돈 들여서 일본 짧게 왔다리 갔다리 하고나서 “어, 내가 뭘 봤더라” 할 지도 모를 때, 나는 최소한 건담은 보고 오지 않았겠는가.
부끄러운 고백일 수도 있지만, 나는 내가 이 나이 먹도록 내 스스로 알아서 한 일이 뭐가 있나 혼자 고민에 빠지곤 한다. 물론 따져보면 많다. 군대도 내 맘대로 공군 지원했고, 지금 다니는 회사도 내 맘대로 골라서 갔고, 이 홈페이지도 내 맘대로 만들어서 내 맘대로 운영한다. 하지만 대학도 점수 맞춰서 가고, 취직도 전공 따라서 찾아다니다가 결국 실패하고, 결국 들어간 회사에서는 시키는 일이나 죽어라 하는 소모품처럼 변질돼서 오랜 세월 지내다보니, 과연 내가 내 스스로 뭘 알아서 하기는 하는 건가 싶은 생각이 마구 든다는 말이다. 2003년 독일여행 간 것도 내가 가고싶었다기 보단 어머니 심부름(음식 공수)에 가까웠고, 가서도 밀이 안통하다보니 형님 뒤만 죽어라 따라다녔지 내가 원해서 어딜 가고 한 것 없었다. 아마 이번에 일본에 가게 되면, 일본어는 물론 안되지만, 내가 가고 싶은 곳에 내가 가서 내가 부딪히고 해볼 수는 있을테지. 나이를 먹으니까 그런 작은 일이 왜 이렇게 사람을 들뜨고 행복하게 하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