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느와르라는 말을 들어보았는가? 어설프게 영화 좀 봤다고 건들거리는 작자들 중에도 정통 느와르 영화를 한편도 안 본 놈들이 많다. 심지어 어떤 허접데기같은 영화팬은 느와르와 홍콩 느와르가 어떻게 다른지도 모른다.
느와르(Noir)는 불어로 검다는 뜻이다. 한때 헐리웃에서 이 ‘느와르’라는 장르의 영화들이 유행을 했었다. 보통 암흑가를 다루고, 마약, 밀수, 도박, 청부살인 등이 주요 배경으로 깔린다. 헐리웃 느와르의 대표적인 작품이 ‘대부(Godfather)’라고 누가 그러더라. 그 스타일이 80년대 중후반 홍콩에서 빈번하게 애용되면서 나온 말이 홍콩 느와르라는 신조장르다.
그 당시 한국은 UIP 직배를 맞이하야 헐리웃 영화에 대한 수입이 여의치 않은 상태였다. 그러다보니 마침 중흥기를 맞이하고 있던 홍콩영화 쪽으로 자연스럽게 수입선이 돌아갔다. 개중에는 <천녀유혼7gt; 같은 환타스틱 SFX물도 있었고, <가을날의 동화>나 <우견아랑> 같은 정통 멜로물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이 ‘홍콩 느와르’였다.
홍콩 느와르의 대표작은 누가 뭐래도 <영웅본색>이다. 지금 내가 얘기하려는 <첩혈쌍웅>을 대표작으로 꼽는 사람도 많지만 <영웅본색>이 없는 <첩혈쌍웅>을 생각할 수 없다는 점에서 나는 절대적으로 <영웅본색>의 편이다. 제목부터가 질이 다르지 않은가.
글의 제목에서 나는 <대행동>과 <첩혈쌍웅>을 맞부딪혀놓았다. 왜냐하면 두 영화가 같은 홍콩 느와르이면서도 비교해보기 좋은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대행동>을 보면 홍콩판 <언터쳐블>이다. 주인공(이자웅)이 경찰이고 4명의 팀원이 밀수업자와 대결한다. <언터쳐블>의 계단 총격씬 같은 명장면은 없지만.
<첩혈쌍웅>은 느와르풍 <시티라이트>로 일컬어지는, 장님가수의 눈을 뜨게 해주려는 살인청부업자와 그를 쫓다가 우정으로 묶여지는 형사, 그리고 청부업자를 제거하려는 악당들이 주요 테마다.
<대행동>은 법과 악의 대결이다. 이 구도에 얽매여서 왕조현이 특별출연하기는 하지만 로맨스가 없다. 하지만 ‘첩혈쌍웅’은 법을 초월한 두 사나이의 우정과 청부업자와 장님 가수의 로맨스가 주축이다. 이야기의 기본 구도 자체부터 다르다.
또, <대행동>은 국내에서 – 표현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 스테디셀러라 할만한 영화로, 개봉은 작은 소극장에서 하고 소리없이 사라졌지만 비디오로는 제법 많이 알려진 편에 속한다. 아마 주연배우가 ‘이자웅’이라는 이름없는 배우 (개봉당시로는)였던 탓이 아닐까 싶은데, 왕조현의 특별 출연으로도 그 한계는 극복하지 못했나보다. 반면 누구나 알듯이 <첩혈쌍웅>은 주윤발이라는 어마어마한 스타의 인기를 업고 국내 개봉전부터 불법복제비디오가 떠돌았었다. 개봉 후로도 한달 가까운 매진 사태가 이어져 아마 그 해에 상당한 흥행기록을 세우지 않았나 싶다. ‘개 같이 살기보다는 영웅처럼 죽고 싶다'(영화속 대사) ‘이 영화는 이제 전설이 될 것이다'(선전문구) 라는 유행어도 낳았다.
<대행동>은 극 분위기가 시종일관 잔인하고 극악하다. 드릴로 손을 뚫어버리는 쇼킹한 첫 장면으로 시작해서, 연속되는 살인마다 구역질나게 잔인하다. 주인공인 이자웅의 연인과 신참 형사를 깔끔하게 죽여버림으로써 관객을 한층 영화 속으로 끌어들이고, 계속 복선으로 등장하는 이자웅의 오른손 마비증세는 마지막 총격전에서 멋진 반전의 계기를 만들어준다. 한마디로 피와 총알이 난무하는 화끈한 액션영화다.
반면 <첩혈쌍웅>은 화끈한 액션…보다는 수많은 여자관객의 손수건을 적실만큼 멜로성이 강하다. 줄거리는 비약과 과장이 심하고 액션 또한 ‘대행동’의 서너 배는 되는 사람들이 잔인하지도, 징그럽지도 않게, 어떻게 보면 우습게 떼거리로 죽어넘어진다.
<대행동>과 <첩혈쌍웅>은 이렇게 다르다. 솔직히 많은 홍콩 느와르들이 <첩혈쌍웅>과 비슷한 유형이다. 강직한 경찰보다는 의리있는 킬러가 주인공이기 쉽고, 탄창을 갈아끼우지 않아도 수백 발은 거뜬히 뽑아내는 권총으로 사람들을 우습게 죽여버린다. 그리고 그런 영화들이 거의 흥행에 성공하지 <대행동> 같은 영화는 별로 재미를 못봤다.
본인이 어느 영화에 점수를 더 주고싶어서 두 영화를 끄집어냈다고 생각하는가. 물론 <대행동>이다. 솔직히 <첩혈쌍웅>이 더 재밌고 좋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행동>을 앞에 내세우고 싶은 이유는 정의로운 경찰이 주인공을 해야된다고 생각하는 여당 끄나풀이어서도 아니고, 왕조현이 이뻐서도 아니다. <첩혈쌍웅>은 영화적으로 결점이 많다. 특히 줄거리를 많이 따지는 본인에게 엽청문이 눈이 머는 과정, 이수현이 주윤발에게 동화되는 과정에 억지와 비약이 심하다. <대행동>은 저예산 비인기배우로 영화를 꾸리다보니 지나치게 잔인한 볼거리쪽으로 치우친 점만 아니라면, 꽤 산뜻하고 보기 드물게 아기자기한 액션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