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휴가를 나올 무렵이 마침 과 졸업작품전 기간과 겹쳐있었다. 군대를 가지 않은 (여성/남성 공히) 동기들이 막 4학년이 되어 졸업작품전을 한창 준비할 시기이기 때문에, 나는 면밀한 계획을 짜서 작품전 준비기간이 끝나고 전시회가 딱 시작될 무렵에 정확히 휴가를 나가서 작품전을 끝낸 놈들하고 뽀지게 술이나 마실 작정을 하고 부푼 가슴으로 휴가를 나왔다. 그런데 빌어먹을, 작품전이 일주일 연기됐단다.
덕분에 나는 나 모양하고 최 모양이 남자 따까리가 없다는 이유를 들면서 군바리인 나를 적극 영입하는 꾀임에 넘어가 (사실 최 모양의 폭력이 무서워서였다. 나를 아는 놈들은 다 안다 내가 최 모양을 얼마나 두려워하는지) 황금같은 첫 휴가중 4일이나 이것들한테 봉사해줘야했다. 그것도 하루는 날밤을 새가며.
나말고 또 동기인 김 모군이 처음부터 얘네들을 도와주고 있었는데, 얘네는 보통 설계팀이 아니고 구조설계팀이라 본 모델 말고도 트러스 모델을 하나 더 만들어야 했다. 이걸 김 모군하고 나하고 (솔직히 나는 쪼금 거든 것 뿐이지만) 만들었다. 되게 굵은 동선을 니빠로 짤라갖구 무슨 쇠를 붙이는 본드로 조심조심 붙여서 만들었는데 트러스 한도막 만드는데 거의 한시간이나 걸리는 무지막지한 작업이었다. 그것도 본드가 부실해서 세게 잡아당기면 뜯어질 정도라 만들고나서도 조심조심 만져야 했다. 어쨌든 우리는 해냈었다.
드디어 전시회날, 경복궁 역에 마련된 전시장에 모델을 설치해놓고 우리는 해방감에 젖어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은 채 뿌듯한 마음으로 모델을 바라보고 있었다. 최 모양에게도 힘들텐데 앉으라고 말하자 걔는 그래도 숙녀가 어떻게 땅바닥에 앉느냐고 생각했는지 기다란 모델 다이 위에 엉덩이를 기댔다. 그순간! 널뛰기의 원리를 생각하라!!
떠오르는 트러스 모델.
따라서 우리의 시선도 잠시 하늘을 향했다가 그대로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강한 파열음과 함께 사방으로 흩어지는 트러스, 재료인 동선 쪼각들.
나와 김 모군은 그대로 땅바닥에 길게 누워버리고 말았다.
그 이후의 일에 대해서는 더이상 묻지말라. 돌이키고 싶지 않은 추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