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례가 벌였던 사건 중에 가장 떠들썩했던 사건이 “책 도난사건”이다. 내무반에서는 취침시간에도 공부를 하고싶은 장병들을 위해 내무반 하나를 개조해 독서실로 쓰도록 해주었는데, (본 기능보다 쫄병들 맞는 곳으로 더 자주 쓰였지만) 독서실을 자주 사용하는 사람들은 관물함에 자기 책들을 넣어놓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가끔 삼례가 그 속에 있는 책들을 훔쳐가서(우리 대대원은 물론이고 다른 대대원들 것까지) 나는 잘 몰랐지만 사람들이 경계를 많이 했었나 보다.
하루는 삼례가 못보던 책을 보길래(컴퓨터 프로그래밍 관련 책이었는데 나도 사보고 싶었던 책이라 기억에 남았다) 물어봤더니 샀다는 거였다. 그런데 책 밑에 누가 자기 이름 이니셜을 도장으로 찍어놓았는지 알파벳 세글자가 보라빛으로 박혀있었다. (당연히 삼례의 이니셜은 아니었다) 나는 또 훔쳤구만 하고 생각하고 그냥 넘겼는데, 그날 저녁에 부관실에 근무하는 고등학교 선배가 (우리 대대원은 아니지만 우연히 알게 되서 나한테 무척 잘해준 선배였다) 나를 불러냈다. 그러더니 조심스럽게 너희 대대에 배 모라는 사람이 있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우리 고참이라고 그랬더니 더욱 태도가 조심스러워지면서 말을 빙빙 돌려서 자기 쫄병한테서 컴퓨터 책이 두 권 없어졌다는 말을 꺼냈다. 관물함을 잠궈놨는데 자물쇠를 잡아뜯고 가져갔으며, 심증은 있지만 물증이 없어서 자기가 나서서 학교후배인 나를 통해 어떻게 정보를 잡아내려는 참이었던 거다. 나는 그 책 주인의 이름을 물었고, 그 이름은 내가 그날 아침에 본 책에 박혀있던 이니셜과 일치했다.
나는 시원스럽게 그 책은 우리 고참이 훔쳐간 것이 틀림없고, 이미 여러번 그런 짓을 저질렀으니 의심할만한 했다고 말해버렸다.(너무 심했나?) 그러자 그 쪽(선배를 포함한 그쪽 대대 사람들)에서는 이런 일이 한두 번도 아니고, 도저히 참을 수 없다며 헌병대에 고발하겠다는 태도를 취했다. 당시 새로 부임한 대대장의 서슬이 시퍼렇던 때라 만약 헌병대에 사실이 알려지면 삼례는 정말 영창에 들어갈지도 몰랐다. 나는 깜짝 놀라서 책을 돌려줄테니 제발 헌병대에만은 알리지 말라고 싹싹 빌고,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빌어야했는지, 참) 사무실로 뛰어가 아침에 봐둔 곳에서 책을 가져다가 돌려주었다. 꼴사나운 고참이긴 하지만 인생이 불쌍하지 않은가.
사건이 여기서 끝났다면 좋았을 텐데, 피해자가 한둘이 아니라더니 다른 사람이 자기 직속 장교에게 이 사실을 찌른 모양이었다. 대위였던 그 장교는 직접 우리 내무반으로 내려와 내일 일과시간 중에 자기한테 찾아오라고 삼례에게 말하고 떠났다. 다른 말은 없었지만 낌새가 이상했던 나는 부관실의 선배에게 전화를 걸었고 어떻게 어떻게 되었는데 책을 찾았으니 헌병대에는 알리지 않겠다는 다짐을 다시 받았다. 과연 삼례는 다음날 무사히 돌아왔지만(그제야 자기가 훔쳐놓은 책이 없어진 사실을 안 것 같다) 삼례를 불렀던 대위가 이미 우리 계장(당시 중위)에게 전화를 걸어 사건의 전모를 이야기하고 알아서 처리하라고 말한 다음이었다. 마음이 넓은 우리 계장은 나에게는 일언반구도 말도 없이 (뭐, 말 안해도 다 알고 있었고 내가 떠벌려서 우리 대대 사병들까지 다 아는 사실이었지만) 책도 찾았다니 사건을 불문에 붙이기로 한 모양이었다. 대신 삼례를 간단히 꾸짖은 다음 우리 모두에게 회식을 시켜주었다. 멍청한 삼례는 술도 좀 들어가고 하자 방금 꾸지람을 들은 것도 잊고 계장에게 이렇게 말했다.
“계장님, 저 제대도 한 석 달(!) 남았는데 열외하면 안 되겠습니까?”
계장이 마음이 넓기에 망정이지 고기 구이판이 날라가도 억울할 것이 없는 상황이었다.(물론 삼례라면 억울하다고 주장하겠지만) 된통 야단을 맞은 삼례는 내무반에 올라온 다음 아니나다를까 나를 붙들고 억울함(?)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책을 훔치다니 어불성설이다,(삼례가 이런 문자를 썼을리 만무하고 내가 정리해서 갖다붙인 말이다) 관물함이 열려있길래(아주! 또 거짓말이군) 잠깐 빌리는 기분으로 가져다 본 것이고 책 표지를 찢은 것은 (원래 주인의 이름이 씌여있던 표지를 찢었었다) 중기반의 누가 그림이 예쁘다고 찢어간 것이며(내가 그 책 표지를 아는데 예쁜 그림 없다) 제대가 석 달밖에 안 남았는데 이젠 열외를 해야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참고로 왕고참 윤 병장은 제대 한 달 전에, 나는 제대 일주일 전에 열외했다) 듣다못한 내가 한 마디 했다.
“그래 책은 돌려주셨어요?”
“그럼!(아주 자신있게) 오늘 아침에 바로 돌려줬지.”
삼례야. 너 인간되려면 아직 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