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서 이렇게 시큰둥한 영화는 처음 보았다. 시작할 때부터, 끝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관객에 대해서는 손톱만큼도 배려해주지 않는 영화. 그렇지만 코엔 형제의 영화다.
실화를 바탕으로 희대의 유괴살인사건을 다룬 이 영화는 일반적인 상식에 의한 이런 류의 영화와 애초부터 궤를 달리한다. 아내를 유괴해 장인에게서 돈을 뜯어내겠다는 카세일즈맨 룬더가드의 계획은 실행 단계에서부터 무척 어설프게 보인다. 두 명의 청부업자는 작고 떠벌거리는 친구와 크고 말이 없는 친구로 대조적인데다가 룬더가드와 의사소통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 고작 4만 달러에 청부업자들을 고용한 룬더가드의 나머지 계획도 어설프기 그지없다. 룬더가드와 청부업자들을 연결시켜준 카센터 정비업자는 무뚝뚝하기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모든 캐릭터들이 약간은 희화화되어, 스토리로만 보면 박진감 넘치는 스릴러 영화로 충분히 만들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시큰둥하고 일상적인 영화로 만들어버렸던 것이다, 코엔 형제는.
헐리웃 영화들이 공식처럼 가지고 있는 이런 줄거리의 영화 문법이 있다. 하지만 <파고>는 이런 문법을 철저하게 무시했다. 유괴사건을 모의하는 장면과 다른 장면 모두 아주 평범하고 일상적인 미국 가정의 모습을 단편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서두에서 밝힌 것처럼 "이 이야기는 실화임"을 강조하고 있으며, 유괴 과정에서 경찰을 죽이고 목격자까지 죽이는 사건이 벌어지자 출동하는 경찰은 만삭의 여경찰이다. 더군다나 이 여경찰은 자다가 전화를 받고나서도 남편이 해준 계란 프라이를 먹고나서 여유있게 느릿느릿 (만삭이기때문이겠지만) 출동하고, 사건 현장에서도 다른 영화의 주연급 경찰들이 보여주는 사건 해결에 대한 사명감 같은 것은 별로 없어 보인다. 사람들이 죽는 장면만큼이나 비중있게 보여주는 장면들은 여경찰 군더슨의 식사 장면들이고, 사건에 대한 모든 대화는 끝에 아주 일상적인 인사말 한두 마디로 끝나고 있다. (예를 들면 날씨 이야기라거나)
코엔 감독은 영화를 보는 관객을 어떤 방향으로 끌고가는 것을 포기했다. 카메라는 객관적이고, 그 카메라에 비친 영상들은 희대의 살인사건을 다루는 것 같지않게 일상적인 모습들 뿐이다. 영화를 진행시키는 가장 중요한 장치라고도 할 수 있는 백만달러의 돈가방은 범인이 눈에 파묻어버린 뒤 아무 언급이 없다. 범인이 죽어버렸으니 파묻힌 장소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결국 눈 속에 영영 묻혀버렸으리라고 관객들이 추측할 따름이다. 사건을 모두 해결한 뒤 군더슨이 남편과 나눈 대화는 남편의 그림이 3센트 우표 도안으로 결정되었다는 것이고, 그것은 사실 지금까지 영화에서 해온 이야기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대화이다. 그런데 영화는 그렇게 끝나버렸다.
카메라는 시종일관 시큰둥하고 무심하다. 사건이 해결되었지만 영화가 끝나도 그냥 일어나기가 무진장 허전하고, 불안하고, 막말로 기분 더럽게 한다. 그러나 그 일상적인 모습들 속에 숨어있는 더러운 기분이 바로 코엔 형제가 말하고자 한 것은 아니었을까. 아마도 돈을 보고 결혼했지 싶은 멍청한 남자 룬더가드, 만삭의 몸으로 희생자들에 대해 간단한 동정심을 보이지만 그 이상의 투철한 사명감은 별로 기대하기 힘든 여자경찰 군더슨, 별 말도 없이 무뚝뚝하게 앉아있다가 경찰을 비롯해서 다섯 사람을 죽이는 덩치큰 청부업자. 그들의 모습이 평범하게 보일수록 코엔 형제의 의도는 성공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관객들이 기분 더럽다며 일어날수록 코엔 형제는 만족해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뭐 그런 생각이 들어서 두서없이 길게 써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