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홈페이지를 평상시에 제가 휙휙 써대는 글을 올릴만한 공간으로 탈바꿈시키는데 역점을 두고 개편했습니다.”
위에 쓴 문장은, 2003년 7월 22일, (지금으로부터 무려 2년 5개월 전) 홈페이지 버전 8.0을 발표(?)하면서 What’s New? 란에 썼던 글이다. (10번째 버전을 준비하면서라는 글에서도 다시 인용한 적이 있었다) 까놓고 말한 적은 없었지만, 저 문장을 쓰면서 속으로 했던 생각은 “최소한 일주일에 하나 정도는 새로운 글을 홈페이지에 업데이트해야지”였었다. 뭐, 단순히 생각해봐도 지키기에 그리 쉬운 약속은 아닌 것 같아 공개적으로 발표하지는 않았는데, 안하길 정말 잘했지 싶다.
일주일에 최소한 한 편…이라는 (공개한 적은 없지만) 약속을 스스로 하게 된 계기는, 처음 홈페이지를 열었을 때는 그냥 인터넷을 뒤져서 찾은 자료나 올려놓다가 “나쁜 말만 하는 영화평”과 “삐딱하게 본 건담칼럼”을 시작으로 차차 내 생각을 홈페이지에 집어넣기 시작한 것에 재미가 한창 붙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전까지의 열정에 비해 글을 생각만큼 많이 쓰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어서이기도 했었다.
정확하게 따져보면, 1998년 2월에 <비트>를 보고 처음 홈페이지에 영화 관련 글을 올렸던 것부터 시작해서 그 해에 홈페이지에 올렸던 글은 옛날(학창시절)에 썼던 글의 재편집을 포함 20편에 불과했었다. 그러다가 동호회에서 <영화 베스트 5>라는 아이템으로 연재를 시작하면서 글감이 확 늘어난 덕분에, 1999년에는 약 30편 정도의 글을 업데이트할 수 있었다. 벤처기업이지만 정식직원도 되고 월급도 괜찮게 받기 시작한 2000년에는 그만큼 뻘짓할 시간도 많았기 때문인지 1주일당 1편 이상에 해당되는 54편의 글을 홈페이지에 올려놓았었다. 그러다가 홈페이지에 컨텐츠를 업데이트하는 것보다 이것저것 DB 프로그래밍을 입히는 재미를 붙이기 시작한 2001년에는 글이 17편으로 확 줄어들고, 2002년에도 역시 15편에 불과했다.
홈페이지에 올리는 글이 적다는 것, 솔직히 내 홈페이지 방문객들에게는 하등 문제될 것이 없다. (문제가 되는 방문객도 있긴 있을 거다마는) 하지만 나에게는 그게 나름 심각한 문제였다. 자랑은 아닌데, (보통 이렇게 시작하면 다 자랑이다) 국민학교 2학년 때 아더왕이야기를 표절한 동화도 아니고 판타지소설도 아닌 애매모호한 장르의 이야기를 노트에 휘갈겨낸 이래 내가 이렇게 ‘글’을 쓰지 않은 것은 거의 20년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게 단순히 귀찮아서 글을 쓰지 않는 거면 솔직히 별 상관없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건 귀찮아서가 아니라 별로 글을 쓸 “꺼리”가 없어서였다. 인터넷을 즐기게 되면서 확실히 독서량도 줄었고, 그만큼 지식도 얇아지고, (지식은 원래부터 얇고 넓었다) 결국은 쌩쌩하게 날이 서있던 인간 하나가 조금조금 곯아버리기 시작한 게 아닌가 하는 위기감이 진지하게 몰려오는 상황이었단 말이다.
따져보면 2001년에 정확히 우리나이로 서른살이 되었으니, 30대로 접어들면서 머리 굳고 손가락 굳고 심장 차분해지면서 10대 20대의 서슬 퍼렇던 시절에 비해 세상만사 시큰둥해지면서 할 말이 그만큼 줄어든 탓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좋은 게 좋은 거지 뭐, 수준의 변명에 가깝고, 아직은 사지 멀쩡하고 세상 물정 제대로 겪어보지도 못한 시퍼런 인간이 (뭐 시각에 따라서 이미 곯아버린 사람일 수도 있지만…) 벌써부터 아저씨 티를 내는 것 같아 개인적으로도 싫었다. 인생에 시큰둥할 순 있어도 인간에 시큰둥하지는 않으려고 했는데, 세상 달관할 것도 없는 주제에 벌써부터 퍼질러지려는게 내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 꼴사납더라 이거다.
버전 8.0이 나오던 당시, 맨 위에 썼던 것처럼 비장한(?) 문장이 나왔던 이유가 바로 이렇게 내 스스로 느끼고 있던 나라는 인간의 존재에 대한(?) 위기감 탓이었다. 다시 말해서 그 문장은 내 자신의 굳은 의지를 표현한 것이라기 보단 의지도 없고 나약한 내 자신에게 스스로 다짐하고 속박하는, 그런 성격에 가까왔던 거다. 그렇게 바짝 긴장시켜서인지는 몰라도, 2003년에는 앞선 두 해의 글을 모두 합친 것보다 많은 36편의 글이 홈페이지에 올라와있다. (물론, 10월 이후에 쓴 글이 절반이 넘는다만) 2004년에도 40개나 되는 글이 올라와있고.
이렇게 혼자 추스려가며 늙으막에 의욕 불태우다가, 연초에 저작권 어쩌구 하는 시비가 튕기면서 기회는 이때다 도메인 바꾸고 어쩌고 하다가 보니, 다시 또 삼십대의 귀차니즘이 압박해들어온 모양이다. (지금 하나하나 세어보니, 그래도 생각보다는 많이 썼다만) 확실히 요즘은 다시 약 2년전의 그 시절로 되돌아간 것처럼, 머리에 딱히 떠오르는 것도 없고 뭔가 하나 떠올라도 키보드 박박 주물러줄 용기도 잘 안생긴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나마 뭔가 생각나면 배깔고 엎드려서 노트에 끄적끄적거릴 수 있었던 옛날이 더 좋았던 것 같기도 하다. 요즘은 뭔가 생각나도 집에 들어와 앉아서 컴퓨터 켜고 부팅하는 시간에 다 잊어버린다. 용케 안잊어버리면 컴퓨터 켜지는 순간 각종 게임에 인터넷유머사이트에… 이런 것들의 유혹에 시달리다가 또 잊어버리고, 뭐 이 따위 인생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간혹은 아유 내가 이런 이야기 해서 뭐하나 싶을 때도 있고, 간혹은 섣불리 쓰려니 내가 잘 모르는 이야기라 참고자료 좀 찾아봐야 될 것 같아서 찾다가 귀찮아지고, 간혹은 나랑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 쓴 글을 읽다보니 그냥 내가 뭐라고 뭐라고 또 쓰는 것도 별 소용없을 것 같고, 뭐 이런 식으로 포기하고 마는 경우가 다반사인 거다.
그래도 아직은, 뭔가 써야지, 라고 생각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어떻게 써야지…라고 마음먹고 글쓴 적은 한글을 배운 이해 한번도 없다. 여기에 대해서 써보자, 라고 맘먹고 시작하면 나도 어떤 결론이 나올지 모른다. 그냥 쭉쭉 가다가 할 말 없으면 끝나는 거다) 쓰다가 글이 엉망이 되어 관두거나 하는 지경은 아니라서 다행이다. 문제는 바로 그 “써야지”, 단순히 메모장 하나 띄워서 “이것은!”하고 시작하는 그게 잘 안된다는 거다. 고도의 귀차니즘인지 아니면 정말 속이 다 곯아버린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연말도 다가오고, 좀 있으면 2006년 새해도 밝고… 작년에 40개 썼는데 올해는 20개 썼고… 작년만큼은 아니래도 절반은 너무 심하지 않았나. 아직 인간이 곯아버린 건 아니라는 걸 증명하는 차원에서라도 올해 30개는 채워야겠다. 영 할 이야기가 없으면 괜히 은행이라도 털고와서 경험담을 올리는 한이 있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