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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대리일기 열여섯번째

2007년 4월 9일

[봉대리의 일기]

12/15 (수) 어제 눈왔다며?

어제밤에 (나는 못봤지만) 모처럼 눈다운 눈이 내렸다고 하더라.
아침에 과연 흔적이 조금 남아서 눈이 왔다는 티를 내더군.
그 바람에 아침 출근길부터 길바닥에 미끄러져 넘어지는 추태를 보이기는 했지만,
뭐 눈이야 내려주면 좋은 것이지.
그동안 눈이 너무 안와서 겨울 가뭄이 아닌가 걱정도 했는데…
뭐 내가 그런 걱정까지 할 이유가 없기는 하지만…
회사 일 빼고는 모든 일에 신경을 쓰는 복잡한 인간이라서…
하여튼 어제 내린 눈만큼이나 황대리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단다.
마누라가 임신을 했다나.
아 씨바 나는 장가도 못갔는데 저 친구는 벌써 애가 생기네.
일본 왕세자비가 임신했다고 일본이 떠들썩했다가 아니랩니다… 요렇게 됐던데
다행히 황대리네 제수씨는 임신이 맞단다.
밀레니엄 베이비를 낳아보지 왜 인제사 임신을 하구 지랄이야… 라구 내가 괜히
한 마디 했더니
야 애 갖기가 얼마나 힘들었는데 그걸 맘대루 해… 그런다.
지 마누라하고 사고 쳤다가 임신했다고 그래서 대학 재학 중에 결혼한 얘기는 들어서
알고 있지만
알고보니 그 임신이 상상임신이라구 그래서 당시 황대리가 한 달 넘게 술로 밤을
지새웠다던가. (속아서 코꼈다고…)
재작년엔가 겨우 임신했었는데 황대리가 임신 중에 먹으면 좋다는 거짓말에 속아서
사기꾼한테 황소개구리를 떼거리로 사서 들고 들어갔더니 마누라가 놀래서 애가
떨어졌다는 비보도 있고 해서
참 임신해서 애낳기 힘드네… 뭐 그런 생각도 했었다.
예정일이 8월이라나. 더울 때 애낳기 힘들텐데 고생되겠다.
에이그~ 나는 애는 커녕 애인도 없으니~
이래서 또 올 겨울 옆구리가 시리게 지나가는구먼…

[피 부장의 일기]

12/15 (수) 날씨는 좋은데 바닥이 미끄러워서 원…

쒸… 어제 눈이 내렸답시고 차가 길에서 기어다닌다.
아침부터 스팀 적당히 받아서 후끈후끈 출근했다.
오늘 나한테 재수없게 걸리는 놈들은 다 죽여버린다.
다짐을 하고 사무실에 들이닥쳤건만, 왠 화기애애 분위기?
당장 화기애매하게 만들어주겠따. 집하압~!
이라고 외칠라고 그랬는데,
지화자 씨가 어줍잖은 애교미소를 띄우고 나한테 발랑발랑 뛰어오더니 그런다.
부장님 황대리니임 애기 아빠 되신대요~ 축하해주썽~
애아빠가 돼?
황대리는 그 개구리 같은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있었고 (그게 지딴에는 웃는 거다)
다른 직원들도 덩달아 기분좋은 미소를 머금고 있다.
아 씨바… 오늘은 나도 성질 죽이고 있어야겠군…
황개구리 축하해, 한마디 해주고 내 자리로 터덜터덜 걸어갔다.
재작년인가 황소개구리를 보여줘서 애가 떨어졌다는데 이번엔 괜찮을라나.
그 아지메도 참 이상하지 맨날 개구리처럼 생긴 남편을 보면서 진짜 개구리를 보고
놀랄 건 뭐야?
그나저나 애기 생기면… 황대리도 성질 많이 죽겠군…
직장생활 잘 살펴보면… 결혼하고 한번 변하고… 애기 생기고 한번 변하고…
그렇게 되더라구… 흔히들 책임감이라고 말들 하지…
두 문제아 중에 황대리는 하나 치웠구나.
봉대리를 장가보내든지 해야 내가 속이 편하게 살라나…
감기기운이 있나 코가 맹맹하다. 에구구…

SIDH’s Comment :
쌍둥이 아빠인 친구녀석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나는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
흔히 쓰는 말이라 좀 식상하긴 하지만 정리해보면
애를 둘이나 낳아놓으니
이 세상에 태어나서 내가 해야할 의무를 다한 듯한 느낌이 든단다.

애 하나가 아파서 한참을 입원해있다가 이제 퇴원했는데
그런 걸 보면 아직 그 친구가 죽으면 안될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