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대리의 일기]
12/02 (목) 맑은 건지 흐린 건지 원…
오늘 아침에 일어나다가 침대에서 거꾸러졌을 때 짐작을 했었어야 했다.
오늘 재수 니미뽕일 거라고…
그래도 아침 버스 속에서 예쁜 아가씨 엉덩짝 구경하며 오는 바람에
뭐 그런대로 즐거운 하루가 될라나 착각을 했었다.
그 아가씨가 뒤로 이상한 개스를 뿜었을 때 아니라는 걸 확실하게 알았어야 했다.
이쁜 아가씨는 냄새도 향기롭네요 그딴 소리는 뭐하러 했을까?
무안해진 아가씨가 내 따귀를 때려서 분위기를 반전시켰을 때 역시 깨달았어야 했다.
하여튼 오늘 재수의 백미는 점심시간.
피 부장이 한 껀 해줄 것처럼 다 따라와!! 라고 외쳤을 때
음모임을 깨달았어야 했다.
한정식집에서 있는 거 없는 거 떡벌어지게 차려먹고,
뭐 따라오라고 한 사람이 계산하는 게 이치 아닌가?
느닷없이 지화자 씨가 씨알도 안먹히는 소리 늘어놓으며 붙잡았을 때는 정말 눈치를
챘어야만 했다.
남들 다 나간 뒤에 피 부장이 계산대 앞에 서있는 모습을 한번 애려주고 나갈라는데,
피 부장이 불렀다. 어이 봉 대리님.
여기는 이 수표를 못받아준다네…
야이 씨뱅아 백만원 수표를 받아주는 곳이 어딨냐.
이 돌아먹을 자식이 어디 통신 유머란에서나 떠도는 수준 이하의 짓거리를…
어차피 상황이 막내 지화자 씨를 벗겨먹을 분위기가 아니었다.
카드도 엄서요? 물어보나마나한 말을 물었다.
마누라한테 뺏기고 죄다 카타질을 당했거덩.
저런 쪽팔린 얘기까지 서슴없이 하는 걸 보니 오늘은 날을 잡았구나.
어쩔 수 없이 카드를 꺼냈다.
지불정지임다~
상황 역전.
결국 피 부장의 백만원 수표가 내일을 기약하며 그곳에 남겨졌다.
한 번은 겨우 모면했는데… 내일이 두려워진다.
쫄따구를 벗겨먹으려는 부장하고 무슨 회사 생활을 하냐… 아 조또…
[피 부장의 일기]
12/02 (목) 날씨 : 몰라 씨바야
오늘은 아침부터 치밀한 계획을 세웠다.
봉대리 물멕이기.
그 바람에 날라차기의 장본인 황 대리와 내키지 않은 신사협정을 맺어야만 했다.
담번엔 네 차례야 개구리같은 넘.
막내 지화자 씨까지 모두 동참하기로 비밀리에 동의가 되었다.
뭐 그저 장난인 줄 알았나 보지?
장난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겠다.
아침부터 왼쪽볼이 발갛게 부은 봉 대리에게 묵념을 했다.
오늘은 전초전에 불과할지도 몰라 미스타 봉…
생전 첨 가보는 한정식집에서 거사가 행해졌다.
갈비 뜯으면서 쯥쯥거리고 쩍쩍거리는 봉 대리 아가리에 물수건이나 쑤셔박아줄까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으나,
잠시 후의 카타르시스를 위해 한껏 참았다.
지화자 씨가 구역질나는 애교로 봉 대리를 붙잡아두는 것까지 좋았다.
백만원 수표를 내밀자 주인 아자씨가 난색을 표하는 것까지도 좋았다.
(나는 설마 네 거슬러 드리겠습니다 할까봐 졸라 쫄았다)
봉 대리 수표를 안받아주네~ 회심의 일격을 날렸다.
봉 대리의 여태 먹은 고기를 죄다 뱉어낼 것같은 떨떠름한 표정을 보자 속에서
환호성이 터질 것 같았다.
봉 대리가 신발 밑창에서 카드를 꺼냈다.
싸이코 아냐 저거?
삑~!
지불정지였다 개쉐이…
방법은 없었다… 일부러 바꾼 백만원 수표를 식당에 맡겨둘 수밖에…
겨우 한번 넘긴거다 봉 대리… 담번엔 절대 이렇게 넘어가질 않아…
백만원 수표 유머는 참으로 오래된 것인데
이걸 써먹을 생각을 하다니 다섯회 연재만에 소재가 떨어진 모양.
옛날에는 이 글에서처럼 밥먹으러 가자!고 한 사람이 다 내는게 예의였다고 한다.
하지만 이 글을 쓰던 때만 해도 더치페이가 거의 정착된 상태였고.
구세대직장문화,를 꼬집어본다는 의도도 조금은 있었던 거 같다. (조금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