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대리의 일기]
12/24 (금) 눈빨… 장난아니었잖아?
모처럼 눈이 장난 아니게 내렸다. 이런 날은 어제 만난 황대리 처제와
포근한 밤을 보냈어야 하는데…
어제 황대리가 마누라한테 선물을 줬는데 선물이 맘에 안든다며 마누라와
한바탕 했다나… 그 바람에 오늘 하루종일 도끼눈을 뜨고 있는
황대리한테 말도 제대로 못붙여봤다.
선물을 뭘 줬는데… 그랬더니… 속옷을 사줬는데 사이즈를 크게
사줬다나… 자기 딴에는 임신도 하고 해서 좀 크게 봤는데 이 사람이
나를 뭘로 보냐며 또 소주병이 날라다녔단다…
그 집은 부부싸움용으로 빈 소주병을 늘 비치해놓나보다…
하여튼간에 젠장 크리스마스 따시게 보내기 힘들구만…
회사는 반은 붕 떠서 일을 하느라 업무가 제대로 돌아가는 건지 어쩌는
건지 알지도 몬하고…
좀 급하다 싶은 일이 들어오면 담주에 담주에… 그렇게 넘겨버리고…
다른 회사들도 뭐 다 마찬가지일테니까 별 상관도 안하고…
하여튼 얼추 퇴근시간이 되가니까 사람들이 피부장 눈치보면서 슬쩍슬쩍
도망을 쳐나가드만…
저 인간은 오늘이 무슨 날인지도 모를껴… 그러니까 저렇게 심각한
얼굴로 책상 앞에 죽치고 앉아있지…
황대리도 떨떠름한 얼굴로 퇴근하고… 어제 피곤해서 못치른 부부싸움
2차전을 치러야 한다나…
밤일로 치르는 거 아닐까…
하여튼 선물도 뭣도 없는 크리스마스 이브… 눈은 많이 녹아서
질척거리기만 하고… 혼자 방에 앉아서 일기나 쓰고 있는 신세라니…
조까튼 크리스마스 이브로군…
재밌는 프로그램이나 많이 해라 썅~
[피 부장의 일기]
12/24 (금) 눈 졸라 썅…
아침에 눈을 떠보니 온세상이 하얗게 눈으로 덮여있었다.
에에에에에이~ 조까튼~ 니미씨바알~
오늘도 차를 갖구 나갈 수가 없게 됐잖아~
어쩌지 어쩌지 고민하다가 결국… 그 빌어먹을… 버스를 타고 출근할
수야 없지 않는가… 하는 생각으로… 발목 잡고 말리는 마누라를
걷어차버리고… 마이카를 타고 출근을 시도했다.
달려라 키트~
달리긴 개뿔이… 오늘도 벌벌 기더군…
그래도 도로에는 눈이 많이 녹은 상태라 생각보다 밀리지는 않았는데,
차가 개판 됐다 씨양…
이거 언제 세차하나… 주유소 가서 무료 세차 한번 쌔려줘야겠군…
회사는 크리스마스 이브라고 한 10미터 붕 떠서 일하는 분위기고…
여직원들은 쬬꼬렛또에 리본 달아서 돌리고… 낮에 눈이 한바탕 더
내리니까 직원들 여기저기에 전화하느라고 사무실 시끌벅적…
그나마 기분이 좀 괜찮았던 것은… 황대리와 봉대리가 전부 동지팥죽에
부랄덴 얼굴로 앉아있었단 점… 저놈들이 인상을 펴고 있으면 나는
소화가 잘 안되서…
참, 그룹웨어 메일박스를 봤더니 회사가 어렵다는 핑계로 2년 전부터
크리스마스에 간단한 선물도 못줘서 미안하다는 사장 명의의 비서가 쓴
메일이 왔더군.
크리스마스… 그놈이 대체 뭔지… 어디서 서양명절 갖구 이렇게들
지랄인가 말야…
아그들 먹을 과자나 사들고 오라는 마누라의 말같지않은 명령이 있었구나
참… 크리스마스가 어디 과자 먹는 날인가… 외국은 칠면조
먹는다던데… 우리는 우리식으로 삼계탕이나 끓여먹으면 좋잖아…
어쨌든 저녁에 흰쌀밥이라도 무사히 먹으려면 과자부스레기라도 사갖구
들어가야지…
메리 크리스마스…? 흥…
우리 세대는 미아리 구리수마스 그랬어…
원래 크리스마스 당일보다는
크리스마스 이브가 훨씬 노는 날 같은 법이다.
그런데 진짜 노는 날은 크리스마스고
크리스마스 이브는 출근하는 날.
크리스마스 이브에 제대로 일하는 직장인 별로 본 기억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