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대리의 일기]
12/07 (화) 구름 끼었다… 개었다…
“너 군대도 안갔다왔어?”
이 말을 신입사원때 당시 과장이던 피 부장에게 듣고서
개 뭐라고 속으로 욕하던 그 시절이 있었다.
회사 생활하고 군대 생활하고 무슨 상관이야?
후일 알았다. 엄청나게 상관있다는 걸.
군대 생활 잘한 놈들이 사회 생활도 잘하더라.
본인은 군대에서나 회사에서나 여전히 뺀질이고.
어쨌든 당시에는 몰랐다가 나중에 피 부장이 육개월 방위 출신임을 알고
달밤에 칼춤춘 적도 있기는 하지만,
각설하고,
오늘 아직은 신입사원인(1년차니까 뭐…) 전유성 씨가 똑같이 피
부장에게 당했다.
몇년째 레파토리도 안바꾸나?
전유성 씨는 해병대 출신이다.
아직 피 부장이 육방인줄 모르는데 알면 꺼꾸러질 거다. 정신건강을 위해
오래오래 숨겨야겠다.
근데 피 부장은 사지가 멀쩡해보이는데 왜 육방일까?
평발일까?
과다체중일까?
짝부랄일까?
고자는 면제 아닌가?
하여튼, 궁금한 일이로다.
[피 부장의 일기]
12/07 (화) 날씨가 어땠더라?
입사한지 1년이 되가면 뭔가 분위기 파악을 해야될텐데…
저 신입사원 전유성씨 말야, 아주 사람 골아프게 한다.
이름만 비슷한게 아니라 조금 어리버리해뵈는 것도 개그맨 모씨와 비슷한
것 같고,
항상 형광등처럼 깜박깜박하다가 불 탁 켜주면 아! 하는 저거저거… 아주
뼛골까지 갈아먹어버리구 싶다 진짜루.
저걸 자꾸 키워주면 봉대리 투가 된다. 애시당초 싹을 잘라야 한다.
오늘도 보고서 레이아웃이 엉망진창이길래 한마디 해줬다.
너는 군대도 안갔다왔어? 각이 딱딱 맞게 뭐든지 못만들어놔?
군대… 아 씨바…
남들 30개월 할 군생활을 6개월동안 하느라고 얼마나 고생했던가…
그 좋다는 말년병장 생활도 못해보고… 말 그대로 6개월동안 꼼짝 못하고
죽은 듯이 지냈던 그 악몽같은 6개월…
아버지가 돈을 아끼려다가 완전히 면제로 빼주지 못한 현실을
퇴근버스에서 얼마나 애통하게 생각했던가.
내가 그때 생각만 하면 발바닥에 있던 피가 머리꼭대기까지 단숨에 올라올
거 같다.
내 새끼는 반드시 면제로 빼주리라.
저기 돌아다니는 저 새끼들… 나처럼 군기 팍 들어있을 때 제대 안하고
다들 말년에 군기 팍 빠져서 제대해놓으니까 저 모양 저 꼴로 뺀질거리는
거 아니겠는가?
육방은 군기의 화신, 군대의 꽃…
이 명명백백한 현실이 단지 육방이 소수라는 이유로 무시당하고 있으니…
정말 사회생활하기 싫다…
진실로 육방이 대접받는 사회를 꿈꾸며.
대한민국을 하나의 병영처럼 관리해주시던 박통이 남겨준 위대한 유산인지 몰라도
우리나라 사회생활은 참으로, 군대처럼 돌아간다.
특히나 그런 특징이 강하다는 H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해서 더 그렇게 느끼는지도 모르겠지만.
대한민국 평범한 남성에게서 빼놓을래야 빼놓을 수 없는 군대.
제대한 지가 십년이 넘었는데 요즘도 회사에서 군대문화/군대용어가 리바이벌되는 걸 가만 지켜보고 있자면
정말 위대한 유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