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대리의 일기]
4/21 (금) 비오다 갬
오랫동안 비가 안내려서 걱정이다 걱정이다 그러더니 선거 끝나고나서
비가 죽죽 잘도 내린다.
그동안 선거한답시고 대판 싸우는 꼬라지가 우스워서 하느님이 비를
안내려주셨는지도 모르겠다.
어제 뉴스보니까 또 당선자 중 상당수가 선거법 위반으로 고발당할
처지라지…
확 갈아버려야 전부.
절대 아침에 비가 오는 바람에 늦어서 괜한 심술 부리고 있는게
아니다.
발발발 기어다니는 버스 안에서 발을 동동 구르면서 계속 생각하길,
절대로 피부장보다는 먼저 들어가야된다.
이 인간 비가 와도 자가용을 고집하는 인간이라 틀림없이 오늘도
막히는 도로 위에서 짜증내고 있을텐데
어떻게 해서라도 이 인간보다는 먼저 들어가야 된다…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이런 날엔 편하게 지하철을 타야되는데 눈 앞에 버스가 탁 오는 바람에
좋다고 타버린게 화근이지.
그렇다고 중간에 내려서 지하철 타고 가자니 그것도 불안하구…
버스가 회사 앞에 탁! 도착하자마자 번개처럼 뛰어내려가서 엘리베이터
까지 총알처럼 내달았는데,
지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올라오는 피부장과 정면으로 땅! 마주쳤다.
잠시 팽팽하게 흐른 긴장감.
동시에 시계를 보았다.
지각 1분전.
둘 다 말없이 엘리베이터에 타고 조용히 사무실로 올라왔다.
아슬아슬했다, 젠장…
[피부장의 일기]
4/21 (금) 비
아침에 비가 오면 하늘이 어둑어둑해서 꼭 늦잠을 잔다.
오늘도 그랬다. 어우 제기랄 빌어먹을…
야이 마누라쟁이야 깨워야할 꺼 아냐~
나도 늦잠 잤지 뭐…
저건 마누라가 아니라 절구통이다 절구통.
확 걷어차서 침대에서 떨어뜨려버린 뒤 허겁지겁 옷을 입고 뛰쳐
나왔다.
오늘도 차 몰고 나갈려구~!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 저 영감탱이!
뒤에서 고래고래 악쓰는 마누라쟁이 무시해버리고 나의 애마를 끌고
나섰다.
달려라 달려~
달리기는 개뿔이나~
늘상 하는 얘기지만 이렇게 비가 퍼붓는데 차를 몰고 나오는 몰상식한
개쉐이들은 어떻게 생겨먹은 놈들인지 상판대기나 한번 봤음 좋겠다.
머리나 홀라당 벗겨져라~
문득 지난번 내가 늦었을 때 모처럼 미리 와서 나를 가소롭게 노려보던
봉대리의 눈길이 생각났다.
안돼 안돼! 절대로 봉대리보단 빨리 들어가야 해!
필사적으로 이리 빠지고 저리 빠질 구멍을 찾았지만 도통 뭐 보이는
길이 있어야 말이지.
겨우겨우 회사에 도착해서 차를 주차장에 세우기가 무섭게
엘리베이터로 1층까지 내달았다.
시간이 임박했는데! 봉대리 짜식 벌써 출근한 거 아냐?
엇! 봉대리와 정면으로 마주치고 말았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이어지고…
시계를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남몰래 내쉬었다…
젠장 아랫것 눈치봐가며 회사 다녀야 되나…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한 달에 지각 3번하면 하루 결근으로 처리해버린 적이 있었다.
나름 지각을 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었겠지만
이게 이상한 역효과를 보였으니.
세번째 지각하게 된 친구가 아예 결근을 해버린 거다.
뭐 어차피 똑같으니까.
그런 모습을 보고나니 야 출퇴근시간 갖고 사람 잡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