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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대리일기 백쉰여섯번째

2009년 1월 11일

[봉대리의 일기]

9/4 (월) 맑음

오늘 출근길에 작은 사고가 있었다.
버스가 아마 초등학교 앞을 지나가는 모양인데
어떤 띨띨하게 생긴 꼬마애 하나가 문틈에 손을 넣고 있었는지
기사가 미처 확인 못하고 문을 열었는데 손에 문이 낑겼다.
…뭔가 바뀐 듯한 느낌이 드는데…
하여튼 애가 손을 다쳤는데 씩씩한 어린인지 울지도 않더라.
친구인듯한 계집애들(그 나이에 벌써 여복이… 음…)이 둘러싸고
어떡해 어떡해를 연발하는 와중에 우리의 버스기사님이 씩씩하게
버스에서 내렸다.
야, 얼마나 다쳤니? 엉? (내가 슬쩍 내려서 보니 피가 조금 나오고
살껍질이 밀려나갔더라. 애기들은 아플텐데) 병원 가자 병원.
꼬마녀석은 안간다고 버틴다.
나도 그 심정 안다. 중학교때 택시에 치인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택시기사가 나 끌고 병원 가자고 그러는데 괜찮다고 박박 우겼었다.
…괜히 겁나고 엄마한테 야단 맞을 거 같고 그렇거든.
버스기사 아저씨는 애를 병원에 데려갈 거니까 승객 여러분은 죄송
하지만 다음 차를 이용해달라고 부탁을 하고
우리도 애가 아프다니까 찍 소리도 몬하고 그냥 내렸다.
이 출근전쟁 시간에 언제 다음 차 타고 출근하나… 하고 걱정할 줄
알았지?
히히 지각해도 핑계거리 생겼다… 그게 내 생각이었다.
근데 마침 거기서 내린 정의파 아저씨가 자기가 병원 데려다주겠다고…
승객들 그냥 태우고 가시라고… 그러면서 버스 넘버하고 기사아저씨
이름하고 회사 이름만 적어서 표표히 사라졌다.
친구들한테는 선생님한테 자초지종을 말하라고 하고…
(애들이 자초지종이 무슨 뜻인지 알아들었을까?)
아직도 세상은 병들지 않았기에 저런 정의파가 살아있구나.
어쨌든 그 정의파 아자씨 덕분에 지각은 안했다.
뭐, 피부장이 지각을 했으니 그러나 저러나 별 차이는 없었겠지만.

[피부장의 일기]

9/4 (월) 쨍쨍함

아침부터 재수가 없었어.
빨랑 회사에 출근해서 박찬호 15승 도전 경기를 봐야된다는 강박관념이
나를 서두르게 만들었다.
(내 일기에서는 보기 드문 문학적 표현인데… 별 거 아닌가?)
아침에 면도하다가 살짝 미끄러지면서 아슬아슬하게 베어나갈 때부터
조짐이 안좋았다.
오늘 아침따라 길이 막혀서 차 타고 오면서 내내 신경질 났던 것도
그다지 좋은 조짐은 아니었다.
회사에 도착해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내려서 문 잠그고 엘리베이터를
막 타려는데 서류가방을 차에 놓고 내린 게 생각난 것이 결정적이었다.
왕짜증 나서 투덜투덜 주차장 내려가 서류가방 꺼내고 문을 발로
쾅 차서 닫았는데…
아 씨봉…
문에 손가락이 찍혀버렸다.
손톱이 빠질라 그래서 으악으악 비명을 질렀는데 아무도
안 나타나더만.
왕따된 기분…
내 발로 (다시 차를 타고 싶지 않았다) 밖으로 나가 가까운 병원을
찾았다.
다행히 의료계 폐업에도 불구하고 (나 모르게 언제 철회했나?) 작은
병원 하나가 문을 열었더군.
병원은 역시 큰 병원을 가야 제 맛인데…
하긴 큰 병원은 거의 문 닫았지…
치료랍시고 붕대 한두 바퀴 감아주느라고 회사에 좀 늦었는데…
아픈 건 둘째치고 기분이 파이라 이거야…
퇴근할 때도 저노무 차 꼴도 보기 싫었지만 참고 그냥 왔다.
한일 청소년축구 경기를 보려면 서둘러야 했는데 아픈 기억 때문에
성질 죽이고 왔더니 경기 끝났네.
아 씨봉…
되는 일이 없냐…

SIDH’s Comment :
오랜만에 다시 읽어보니 이때 실제로 있었던 사건 이야기.
실제로 있었던 사실이라는 기억은 나는데 상황은 전혀 기억이 안난다.
지금 보니 뭐, 그렇게 대단한 사건도 아닌 것 같긴 한데
출근길에 바쁜 마음이라 선뜻 아이를 맡아준 그 아저씨가 대단해보였을지도.
요즘 나라면 그럴 수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