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어디선가 들은 말 중에 이런 게 있다.
키 큰 사람은 키가 커서 좋은 거 없다고 말하고
키 작은 사람은 키 작아서 불편한 거 없다고 말한다.
어디서 농구선수나 배구선수들을 떼거리로 만나지 않는 한 키 작다는 소리 들을 일이 없는 나로서는
저 키 커서 좋은 거 없다는 말에 공감이 많이 되는 편이다.
그래, 굳이 따지면 농구할 때 좀 유리한 건 있을 수도 있겠다.
그런데 그거 빼고 나면, 키가 크다는 것이 나한테 딱히 좋은 점이 없다는 게 사실이다.
키가 커봤자, 높은 곳에 있는 물건 꺼내기 쉽거나 형광등 갈기 편하다는 뭐 그런 정도인데, 사실 그런 이유로 남이 시켜먹기도 좋아서 (사무실 형광등은 내가 도맡아서 간다던가 뭐 그런) 딱히 좋은 점이라고 생각되지도 않고,
뭐 여자들이 키큰 남자 좋아한다는 이야기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어왔지만
이 나이 먹도록 살아오면서 내가 키커서 좋다는 여자, 지금이라도 좋으니 한번 만나봤으면 좋겠다.
키가 크다는 건 그냥 남이 봤을 때 좀 있어보이는 정도, 사실 그 이상의 장점이란 없다고 봐도 맞다.
평소에 잘 안보는 프로그램인데
지난 월요일에는 마누라가 <놀러와>에 김원준 나왔다고 (김원준 싫어라함) <미녀들의 수다>를 보는 통에 덩달아 같이 봤다.
초반부는 화장실에서 좌욕하느라-_- 못보고 중반 이후부터 봤는데
평소 무개념발언이 난무하는 걸로 명성이 자자한 프로그램이긴 했지만
여대생 특집이랍시고 출연한 여대생들이 하나같이 골빈 소리를 쏟아내는데
아, 대학생이 지성인이라는 소리를 듣는 시대는 이제 갔구나, 라는 탄식이 절로 나더라.
(사실은 내가 대학 다닐 때도 별로 대학생이 지성인 같지는 않았지만)
마누라 표현을 빌자면, “애들이 어려서 세상 물정 모르고 눈이 꼭대기에 붙어있다”고 할까나.
뭐 애들이 나름 대학교 퀸카랍시고 나왔고 의학의 힘인지 화장빨과 조명의 힘인지는 몰라도 뽀샤시하니 예쁘게들은 생겼더라만
그래도 저중에 지들이 줄줄이 떠들어대는 조건,조건들을 다 맞춰서 결혼하는 애들이 얼마나 되겠나.
나중에 듣자니 연예인 지망생도 있었던 모양인데 뭐 연예인 지망생이 다 성공하는 것도 아니고.
하여튼 요즘은 외국인 미녀(?)들의 무개념 발언도 꺼리가 떨어졌다 싶으니 무개념 한국인까지 불러다 놓고 지랄이구나, 이게 간만에 <미수다>를 본 소감이라면 소감이었다.
그런데 다음날 출근해서 인터넷을 보니
내가 아마도 못본 부분에서 어마어마한 대박이 터진 모양이더라.
모 여대생이 “키 작은 사람은 loser”라고 발언한 모양인데
그것도 기준을 “내가 170이니까 남자는 180″이라고 못을 박아버려서
평소에 좀 작은 편이라고 의기소침했을 170~175cm 정도 신장의 남자들은 물론이고
그래도 스스로 작은 편은 아니라고 생각했을 175~179cm 신장의 남자들이 모조리 빡돌아버린 거다.
(나는 loser에 포함이 되질 않아서 그런지, 참 무개념이다 싶긴 해도 열은 안받더라)
돌아가는 폼을 보아하니 여자애 싸이 털리고 블로그 털리고 들리는 소문에는 학교에서 제적 어쩌구 하던데 그건 좀 소설이거나 오바 같고
어쨌거나 온 인터넷에 문제의 여학생을 잡아죽이지 못해 안달이 난 사람들로 아주 난리가 난 상황.
그게 그냥 그러다 말려니 했더니 하루가 지난 오늘까지도 아직 난리 중이다.
글쎄, 여학생의 발언이 솔직히 말도 안되는, 자기가 개념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아주 생각이 없다는 사실을 공공연히 드러내는, 병신 인증 제대로 한 발언이라는 점에는 참 동의하는데,
정말 스스로 키가 작다는 열등감 때문에 열받는게 아니라면, 왜들 저렇게 열을 내고 있는지는 솔직히 아직 이해가 가지 않고 있다.
맨 앞에도 밝혔지만, 사실 키크다는 거, 그리 장점이라고 할만한 거 아니다.
그런데도 그렇게 키에 집착하는 걸로 봐선, 그 여대생 아직 세상 물정 몰라도 한참 모르는게 틀림없고,
(예전에 인터넷에 나돌던 초등학교 6학년이 쓴 로맨스소설을 보니 남자주인공이 키 189cm에 몸무게 48kg인가 그러더라. 딱 그 수준인 거지 뭐)
세상 쓴맛 단맛 좀 맛보면, 지가 저런 소리 했던 거 무릎을 치며 후회할 날이 올 거다.
(생각해보니 이미 온 거 같기도 하다)
<미수다>라는 프로그램이, 비록 공중파에서 방영되고 있어서 영향력이 아주 높은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저렇게 바보 인증 제대로 한 발언을 듣고 사람들이 아 역시 키작은 인간들은 안돼 이렇게 생각하게 될 리도 없고,
그렇다고 일개 여대생 한 명의 발언으로 국가차원에서 키작은 사람들을 차별하는 무슨 제도나 법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아무리 생각해도 그냥 기분나쁘다 정도밖에 안되는 발언인데,
저렇게 열을 낼 필요가 있나 말이지.
어느 블로그에 보니까 키가 작으면 loser라는 말을 듣고 광분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자기가 loser라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라는 말도 있던데
그렇게까지 몰아붙이진 않더라도, 왠지 뭐랄까, 꼬투리 하나 잡아서 온통 달려들어 물고 뜯는 그런 모습 같아서 별로 좋아보이진 않더라.
까놓고 말해서, 저 발언이 특정집단(?)을 지목해서 비하한 덕분에 이슈가 되긴 했지만,
단순히 “여대생들의 무개념발언”에 주목한다면 저 말보다 수위가 높은 말은 얼마든지 있었다.
일부 캡처이미지가 돌기도 했던, 상대남자의 조건에 대한 이야기라거나 연애비용에 대한 이야기라거나, 명품가방에 대한 이야기라거나,
전혀 이슈가 되지 못하고 있지만 대학교 학비를 부모님이 대주시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이야기라거나.
그런데 저런 걸 보고 들으면서 심각한 사회문제라고 개탄한다거나 할 필요가 없는게
방송에 출연한 여대생들이 대한민국 젊은 여성을 대표한다거나 하는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일부 교양프로 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만 본질적으로 예능프로인 <미녀들의 수다>에서 흥밋거리로 떠든 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이 사태에 가장 큰 책임을 느껴야할 담당PD가 저런 무개념 발언들을 전혀 여과하지 않고 그대로 방송에 내보낸 이유도
이 방송이 그저 웃고 즐기기 위한 예능프로일 뿐이라는 기본 인식이 깔려있었기 때문일 거다.
(그게 아니라면 뭐, PD부터 무개념인 게지)
물론 각종 예능프로에서 조금은 무례하지만 그래도 웃고 넘길 수 있을 법한 뭔가가 터지면
다음날 인터넷이 바로 죽사발이 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사람들 자극해서 시청률이나 올리려고 만들어 방송하는 프로그램들을 보면서, 왜이렇게 진지하게 독이 오른 사람들이 많은지 참 의문스러울 뿐이다.
다음주 예고를 보니 이번엔 남자대학생들이 나온다는데
얘네들은 뭐라고 무개념 소리들을 해댈런지 참 기대가 크다.
(정말로 기대한다는 얘기 아니다. 본방사수할 생각도 없고)
어쩌면, 이번 사태에 겁먹은 PD가 (이미 녹화는 뜬 것 같던데) 가열찬 편집으로 좋은 소리만 모아서 방송 내보낼지도 모르고.
그러면, “역시 남자들이 여자보다 개념있어” 뭐 이런 주장들이 인터넷에 넘쳐나려라.
이래저래 세상은 나 편한대로 굴러가는 법.
자기 생각을 표현했다는 점에서 걍 그 출연자를 바보구나 하면 되는 거지,
방송프로 자체를 공격하거나, 그 개인에 테러를 한다거나
좀 대중이 과도하게 흥분한다는 생각이 드네요.
저 역시 루저남이긴 한데, 솔직히 인생 살아가는데 불편을 느낀 적은 없고,
연애에서 조차 신장이 그렇게 큰 의의를 가지는 지 의문이네요…
제 생각엔 연애에 대한 열등감을 품고 있는 단신의 남성들이 주축이 되어
일으킨 소란이 아닌가 싶은데…
암튼 현상 자체는 좋지 못하다 싶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