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하고 성실한, 가정에선 다정다감하고 직장에서는 철두철미한 한 남자가 있다. 그의 부인은 그런 남편을 사랑하고, 그의 대를 이어줄 아들을 낳지 못한 것을 미안하게 생각한다. 남편이 비록 맡은 임무에 충실하기 위해 하나뿐인 딸의 마지막을 지켜주지 못했지만 그것을 단지 원망할 뿐, 극단적인 파국으로 몰아가지 않을 정도로. 남편은 부인의 죽음마저 지켜주지 못했지만 죽은 딸의 영혼이 돌아와 모든 것을 용서해준다. 그 용서를 받고 남편은 직장에서 숨을 거둔다.
어떤 영화의 줄거리인지는 새삼 말할 필요가 없을테니 급한 질문부터 하나 던져본다. 이런 영화를 한국에서 만든다면, 이 영화 <철도원>이 일본에서 그랬던 것처럼 백만의 관객을 동원할 수 있었을까? 다른 질문 하나, 우리나라 영화인들이 이런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첫번째 질문과 두번째 질문에 대한 해답을 나는 <아버지>라는 영화에서 찾고자 한다. 말그대로 공전의 베스트셀러를 영화화한 <아버지>는, 일에만 몰두해온 가장의 쓸쓸한 말년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철도원>과 많이 흡사하다. (물론, 많이 다른 면도 있다) <철도원>의 원작도 베스트셀러였고, 그 흥행기록도 다분히 원작소설의 영향이 있었다고 봤을 때 우리는 <아버지>의 흥행실적에 주목한다. 서울개봉관 3만. 망했다는 말이 걸맞을 정도로 초라한 실적이다.
왜 망했나. 혹자는 이미 소설로 다 봐버린 얘기를 굳이 영화관에서… 라고 말하고, 혹자는 진부한 최루 멜로영화를… 이라고 말한다. <철도원>은 소설이 덜 팔려서 극장이 미어터지고, 진부하지 않은 멜로영화라서 최고관객을 동원했다는 말인가. (진부하지 않다는 점에 대해서 뒤에 다시 얘기한다) 나는 그것만으로 납득할 수가 없다.
그럼 일본의 국민배우라는 다카쿠라 켄과 떠오르는 십대 아이돌 히로스에 료코라는 캐스팅이 <철도원>을 밀어주었나? <아버지>의 박근형 장미희 최정윤으로는 딸린다? 딸릴지는 모르지만, 그 캐스팅에 어떤 다른 배우를 집어넣으면 영화가 성공했으리라 생각하는가? 안성기? 신성일? 김희선? 누구를 집어넣어도 안되는 건 안되는 것이다.
우리나라 관객들은 <아버지>같은 영화를 볼 준비가 안되있다는게 내 결론이다. 이런 영화를 보면서 눈물을 훌쩍이고 손수건으로 코를 풀어낼 관객들은 분명 이십대 중반 이상, 그것도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그 공감도가 클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삼십중반 넘어간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극장을 찾는단 말인가. 기본적으로 타겟 설정에 실패한 것이다. 최루성 멜로도 이십대의 파릇파릇한, 그것도 좀더 어린 세대의 공감을 얻기 위한 PC통신의 도입이나, 아니면 자극적인 조폭과 의사의 사랑 같은 소재가 아니면 통하지 않는 영화판이라는 말이다.
두번째 질문, <철도원>과 <아버지>의 차이점을 따져보면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철도원>의 주인공 다카쿠라 켄은 앞서 말했듯 고지식하고 일에 철두철미한, 속으로는 다정다감하지만 겉으로 표현이 많지 않은 그런 남자다. <아버지>의 박근형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를 바라보는 가족의 시각이 영 다르다. 스토리에 갈등구조가 있어야 얘기가 잘 풀리기 때문에 박근형의 가족들은 아버지와 갈등한다. 딸은 극단적인 편지를 아버지에게 보내서 아버지를 가출시킨다. 하지만 <철도원>의 아버지는 아내로부터, 죽은 딸로부터 모두 용서를 받는다. 그를 둘러싼 갈등은 내재되어있지만 어느 것도 폭발해서 나타나지 않는다. 아내의 주검 앞에서 친구의 아내가 너무하다고 소리치는 정도? 그 외에는 누구도 그를 탓하지 않고, 시종일관 따뜻하게 감싸안고 있다. <아버지>를 뻔한 줄거리의 70년대식 멜로물이라고 한다면, 그런 점에서는 <철도원>의 낭만주의가 훨씬 앞서나가고 있다.
관객보다 먼저 울음을 터뜨려 관객으로하여금 울기 멋적게 만들어버리는 한국 멜로영화 배우들 같은 건 논외로 치자. <철도원>이 일본에서 흥행이 된 것은 일본이기 때문이고, <아버지>가 쫄딱 망한 것은 한국이기 때문이었다. <철도원>이 한국 개봉에서 그나마 선전한 것은 “일본영화 최고 히트작”에 대한 기대감 이상도 이하도 없을 것이다. 맨 정신으로 이런 영화를 돈내고 보러오는 한국관객들은 거의 없을 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