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은 없다>는 한마디로 말하자면 핫바리 인생들의 밑바닥 이야기다. 좀 심하게 말해서 두 명의 주인공(이정재, 정우성)이 잘생기지조차 않았다면, 비싼 돈 내고 극장 안에 앉아있는 관객들은 영화 상영내내 그들을 씹어대기에 바빴을 정도로 그들은 잘난 것도 없고, 하는 짓도 형편없는 핫바리들이다.
홍콩 느와르를 너무 많이 보고 자랐는지 김성수 감독은 <런어웨이>, <비트> 등의 전작에서 일관되게 이런 핫바리들의 영화에 어울리는 감각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나 그 전작에 비해서 <태양은 없다>가 우뚝 서는 이유가 하나 있다. 배우가 잘생겨졌다? 이병헌도 잘생겼고, 정우성은 비트에도 출연했었다. 다름 아니라 <태양은 없다>에서 김성수 감독은 음악에 눈을 뜬 것이다.
이 영화에서 주로 선보이는 음악들은 <Love Potion No.9>, <Let’s Twist Again>, <Wooly Bully>, <Hanky Panky> 등 올드팝이 많다. (라디오헤드의 음악도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옛날 노래 썼다는 이유로 다 음악에 눈뜬 감독이 되는 것은 아니다. 90년대 중반 이후 영화에 올드팝을 삽입하는 것은 충무로의 어떤 유행처럼 번지고 있으며, (저작권 탓인지도 모른다) 그것을 조금 많이 삽입했다는 이유로 감독을 평가해주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태양은 없다>를 칭찬할 수 있는 것은 단지 영상에만 집착하던 김성수 감독의 전작에 비해 <태양은 없다>는 영상과 음악을 어우를 줄 아는 수준에 올라왔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뭐 여러 장면을 들 수 있겠지만, 홍기(이정재)가 보석상을 터는 장면에서 흐르는 <The Letter>는 이 영화에서 가장 긴박한 장면을 연주하기에 나무랄 데가 없다. 그때까지는 세상을 낙관적으로 쉽게 쉽게 살아온 홍기였지만 빚더미에 앉아 내일을 기약할 수 없게 되자 망치 하나만 들고 무모한 강도질을 시작하고, 그 장면을 뒤에서 지켜보는 도철(정우성)은 울려대는 경보기에 놀라 차로 진열장을 들이받는 액션을 보여준다. 망치 한 자루만 분연히 들고서 보석상을 향해 씩씩하게(?) 걸어가는 홍기와 어우러져 경쾌하게 시작하는 <The Letter>는 그런 홍기의 절박함을 조롱하듯, 한편으로는 그의 초조함을 대변하듯 한다. 게다가 차에서 그를 지켜보고 있는 도철의 당황스러움까지도 이 음악은 멋지게 표현해준다.
그들의 불안감과 초조함, 당황스러움을 역설적으로 대변하는 <The Letter>의 가사도 역시 애인을 만나러 가는 한 철딱서니 없는 남자가 비행기를 놓칠까 봐 전전긍긍하는 상황을 노래하고 있다. 조금 상황이 다르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초조함과 불안감을 노래하고 있다는 공통점은 있으니 그 음악의 성격과 화면과의 조화는 적절하다고 봐야겠다. 심정적으로는 그들의 절박함에 공감하지만, 그들의 어설픈 강도질과 경쾌한 음악을 들으면서 관객들이 깔깔깔 웃어버릴 수 있을 정도라면 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