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속>은 일본영화 <하루>와 헐리웃 영화 <유브 갓 메일>과 종종 비교되곤 한다. 이 영화들은 단적으로 말하자면 ‘PC통신 붐의 덕을 가장 많이 본 영화’들이다. 거창하게 말하면 거대한 사회 속에서 소멸된 개인을 개개인간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찾아가는 영화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고. (PC통신은 아니지만, 오랜만에 보는 무선통신을 소재로 삼은 <동감>에 그런 분석을 갖다 붙이는 것도 가능하다) 어쨌든 유행에 민감한 소재를 영화 전면에 내세워 히트를 친 영화들임에는 틀림이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접속>이 뜨던 그 무렵 내 귀를 상당히 시끄럽게 만들었던 노래는 ‘A Lover’s Concerto’ 라는, 바흐의 곡에 가사를 붙여 부른 팝송이었다. 개인적으로 내가 좋아했던 <일렉트릭 드림>의 테마곡과 같은 곡이라 나에겐 어떤 면에서 익숙한 노래였다. 그런데 영화 개봉과 동시에 노래가 너무 히트치는 바람에(영화가 너무 히트친 것이겠지만) <접속>과 ‘A Lover’s Concerto’는 거의 동격의 이미지, 동일화되어가기까지 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내가 정작 <접속> 영화를 직접 보았을 때 내 머리를 가득 메운 노래는 ‘A Lover’s Concerto’가 아니라 ‘Pale Blue Eyes’였다. 이 노래는 <접속>의 주제가라는 이름으로 크게 히트하고 있던 ‘A Lover’s Concerto’와는 전혀 격이 다른 곡이다. 경쾌한 팝과 우울한 블루스의 차이는 엄청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 <접속>을 시종 지배하고 있는 어두운 조명과 (이 영화에서 밝은 조명은 후반부까지는 거의 나오지 않았다. 밤이 아니면 비오는 낮이 대부분일 정도로) 상처를 안고 있는 두 주인공을 대표하는 곡은, 드라이브를 하던 수현이 교통사고를 목격하는 순간 라디오에서 흐르던 그 노래, 동현이 옛사랑으로부터 받은 음반에 수록된 노래, 수현이 방송국에 신청함으로써 동현과의 만남의 매개체가 된 그 노래, ‘Pale Blue Eyes’였다.
‘Pale Blue Eyes’는 어떤 면으로는 사람들의 만남을 매개로 하기에는 부적절한 면이 많은 노래다. (그래서 후반부의 만남으로 갈수록 영화는 조금씩 밝아지고, 마지막 엔딩은 ‘A Lover’s Concerto’가 장식하는지도 모른다) 더구나 자동차 사고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노래다. 하지만 감독 개인의 취향 탓인지 이 노래는 조금 언밸런스한 느낌으로 영화에 삽입되었고, 음악에 영화를 맞춘 탓인지 영화의 분위기와 썩 맞아 떨어지는 노래가 되어버렸다.
‘Pale Blue eyes’에서 ‘A Lover’s Concerto’로의 흐름은 두 주인공의 심경 변화와 드라마의 극적 전개과정과도 맞물려있는 것이지만, 어쨌든 ‘A Lover’s Concerto’는 두 사람의 행복한 만남(동현의 극중 통신 아이디처럼, 또는 수현역을 한 전도연의 다음작품 제목처럼… 해피엔드)을 장식해주는 화려한 장치로는 나무랄 데 없지만 <접속>이라는 영화 전반적인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뭐, <접속>의 흥행을 타고 ‘Pale Blue Eyes’도 뒤늦게 인기를 끌면서 벨벳 언더그라운드 음반이 다시 주목 받기도 했다지만, 영화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마케팅으로 인기를 몰아버린 어느 곡과 비교하면 섭섭함이 드는 것도 어쩔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