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동전사 건담>은 어떻게 시작하는가? 지온이 콜로니를 떨어뜨려 지구에 핵겨울을 일으키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0083>에서도 데라즈 부대의 주목적은 콜로니를 달에 떨어뜨리는 “스타더스트 작전”이었다. <기동전사 건담ZZ>에서도 하만은 콜로니를 지구에 떨어뜨리고, <역습의 샤아>에서도 샤아는 (콜로니는 아니지만) 액시즈를 지구에 떨어뜨리려고 한다.
콜로니 낙하작전은 마치 지온군 대지구전술의 전매특허처럼 보일 정도로 건담에 자주 등장하는 작전이다. 물론 어떻게 보면 당연한 작전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 효과만으로 따지면야 한 마디로 말해서 짧고 굵지 않은가. 실제로 1년전쟁 초반 지온의 콜로니 낙하작전은 지구연방의 인구 2억을 몰살시키고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의 1/6을 침몰시키는 대단한 성과를 거두었고, 아무리 자쿠의 성능이 뛰어나 초반 기선제압에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군사의 양적에서는 연방에 열세임이 분명한 지온이 1년여를 버티는데에는 이 작전의 성공이 큰 힘이 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단순히 전투의 효율적인 측면에서만 이 콜로니 낙하작전을 이해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본다. 왜냐하면 콜로니 낙하의 후유증 또한 만만치않기 때문이다. 무고한 시민을 몰살시키고, 경우에 따라서는 지구 전체를 죽음의 별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는 가공할 작전이 바로 콜로니 낙하작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온군이 끊임없이 콜로니 낙하를 시도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앞서도 말했듯이 지온군은 연방군보다 병력이 너무나도 열세였기 때문에, 그 열세를 한방에 만회하기 위해서는 그 정도의 위험부담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다.
그게 앞에 했던 전투의 효율성 어쩌구 떠들던 말과 뭐가 다르냐고 불평하실까봐 서둘러 부연설명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때까지의 로봇만화들을 살펴보면, 항상 강력한 적에 맞서는 외로운 아군으로 설정되어있었다. 이를테면 뭐 이런 식이다. “외계인의 침입을 막을 수 있는 것은 메칸더 브이밖에 없습니다!!!” 이런 종류의 대사들에서 보여지듯, 지구(아군)측의 병력은 항상 지구를 노리는 나쁜 무리들보다 열세였고, 그것을 한방에 만회할 수 있는 것이 우주상의 어떤 병기보다도 가공할 성능을 가진 주인공 메카였다. (어찌 보면 이것이 슈퍼로봇물의 전형적인 구도다)
하지만 건담에서는 적군인 지온군의 병력이 더 약하다. 자쿠의 성능, 끊임없는 MS의 개발, 카리스마 넘치는 지온의 에이스파일럿들이 줄줄이 등장한다고는 하지만 상식적인 숫자놀음에서 지온은 약할 수밖에 없다. 지온의 병력은 지구연방의 30분의 1에 불과했고, 거기서 더 힘이 약해진 액시즈나 네오지온에 이르면 말할 필요도 없다. 하물며 일개 부대에 불과한 데라즈 부대에 이르면야. 그래서 1년전쟁의 초기설정에서도 지온은 콜로니 낙하작전을 강행함으로써 전력이 완전히 노출되기 전에 전쟁을 일찍 종결지으려 했고, (장기전이 될 경우 연방군의 MS 개발이나 우주전에의 총력화 등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을테니) 그것이 실패하는 바람에 영원히 콜로니 낙하만 도모하는 슬픈 운명의 길(?)을 걷게 되고 말았던 것이다. 초반 설정에서만 콜로니 낙하를 보여주고 그 후엔 콜로니 낙하에 대해 별 언급이 없는 <기동전사 건담>의 경우, 지온군 진영에 홀로 떨어진 건담과 화이트베이스를 설정하여 “총체적인 우세”를 “국지적인 열세”로 변환하는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긴 했지만 차후의 작품에선 그렇지 못했다. 열세에 몰린 지온군이 <기동전사 건담>에서처럼 건담을 고립시키지 못할 바에는, 우리도 만만히 볼 수 없는 적군이라는 이미지를 시청자들에게 심어줄 뭔가가 필요했던 것이고, 그것이 바로 “콜로니 낙하작전”이었다.
정리하면 이렇다. 강한 악에 맞서는 약한 선의 대변자 역할을 하기에 너무 강한 연방군 때문에, 지온군은 “콜로니 낙하”라는 필살기를 갖춤으로써 그나마 선을 제압하려는 거대한 악의 힘을 보유하여 극의 긴장감을 유지시킬 수 있는 평행선을 찾았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만 끝내기엔 또 복잡한 사실을 하나 짚어보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삐딱한 <기동전사 Z건담>에서는 지온군이 아닌, 티탄즈의 자마이칸이 콜로니를 그라나다-달에 떨어뜨리려는 시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티탄즈가 에우고보다 전력이 열세도 아니고, 더구나 바로 앞 에피소드(24화)에서 연방군의 지휘권을 티탄즈에 넘기는 안이 가결된 시점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전력의 약화란 어불성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자마이칸은 콜로니를 떨어뜨리는가? 비교적 일관된 건담시리즈 중에서 유일하게 적군과 아군의 경계가 애매무스꾸리한 <기동전사 Z건담>이기 때문에, 여기서는 단지 잔혹한 티탄즈의 모습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로 “콜로니 낙하”가 쓰였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것은 역으로 생각하면 “콜로니 낙하”라는 것이 지온군에게도 “잔혹한 지온군”의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역할을 했다고도 볼 수도 있다. 실제로는 연방보다 힘이 약하지만, 콜로니 낙하라는 조커를 꺼내들고 있음으로써 지온군은 연방에 못지않은 강성이미지와 아군의 평화를 위협하는 침략적 이미지를 동시에 갖게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덧붙이면 내가 하고싶었던 얘기는 다 하는 것 같다. <건담0080 – 주머니 속의 전쟁>에서는 콜로니 낙하가 나오지 않고 핵무기가 등장한다. 또 일본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핵무기를 얻어맞은 나라라는 점이다. 피폭에 대한 일본인들의 피해의식 및 공포심은 아직도 상당하며, 그 의식의 연장선상에서 “콜로니 낙하작전”을 보면 이것은 또하나의 핵폭탄에 다름아니다. 핵무기에 당한 전력이 있는 사람들에게 한차원 높은 핵무기 – 콜로니를 떨어뜨리는 사람들이 곱게 보일리가 있겠나? 모르긴 몰라도 일본에서 핵에 대한 피해의식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까지는 일련의 로봇물에서 핵무기에 준하는 이런 슈퍼무기들은 계속 등장할 것이고, 더욱 분명한 사실은 그 무기를 사용하는 쪽이 아군일리는 절대 없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