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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아직도 짓고 있다

2002년 3월 22일



어떤 건물인가?

어떤 건물이고 나발이고 일단 건축가에 대한 얘기부터 하자. 안토니오 가우디(Antonio Gaudi, 1852~1926)라는 이름을 대면, 참으로 유감스럽게도 르 꼬르뷔제나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귓등으로도 들어본 기억이 없다는 사람들도 들어본 이름이라면 반길만한 이름이기 때문이다. 사실, 건축사적으로 까놓고 말해서, 아르누보의 한 분파에 지나지 않은 가우디가(물론 그의 건축물이 유례없이 독창적이고 가우디 자신만의 세계가 뚜렷하게 각인되었다는 점은 높게 평가되어야 하지만) 그렇게 유명해지고 인기가 높은 이유는 무엇일까? 답은 간단하다. 건물이 이뻐서!!!!

가우디의 대표작이라고 하면 보통 지금 설명하려는 사그라다 파밀리아(성가족성당), 카사밀라, 구엘공원 등을 언급하는데, 이 세 건물의 사진을 죽 놓고 보면 정말 웃음이 삐죽삐죽 나올 정도로 독창적이고 기묘하다. 흔히들 가우디의 건물을 일컬어 “흘러내리는 컨셉”이라고도 하고 “가장 자연적이면서 가장 인공적인 건물”이라고도 하는데, 다 좋다 이거다. 건물 짓는 사람들(쉽게 말해서, 십장 이하 노가다꾼들) 팔다리만 고생하면 되니까니.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말하면서 절대로 빠지지 않는 이야기. “아직도 짓고있다”는 말이다. 공사가 시작한 것은 1882년이고, 가우디가 죽은 것은 1926년이고, 지금은 2002년이다. 120년째 짓고 있다는 말이다. 물론 마냥 짓기만 하는 것은 아니고 지어진 부분은 성당의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기 때문에, 간혹 이넘들이 “아직도 짓고있다”는 광고문구를 활용하기 위해 괜히 다 지어놓은 건물 디테일만 깎아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을 해보기도 한다.

흔히 말하는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외관은 수세미를 세워놓은 형국인데, 요즘 젊은 것들(?)은 수세미를 잘모르기 때문인지 옥수수라고 바득바득 우기곤 한다. 슈퍼에서 파는 수세미가 아니다, 이것들아. 높이는 약 160m 정도로 당시로선 파격적이라고 할 수 있는 고층이었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아직도 공사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며-.-; 건물 지하에는 가우디 박물관이 마련되어있다. (현재 건축된 부분은 120m 정도라고 한다)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비롯, 가우디의 건축물은 거의 바르셀로나에 위치하고 있다. 좀 심하게 말하면 바르셀로나를 가우디의 도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바르셀로나에서는 가우디가 세운 건물 구경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운 여행을 할 수 있다는데, 안가봐서 모르겠다.
앞서 아르누보라는 말을 했는데 쉽게 말하면 조형적인 미를 우선하는 당시 건축계의 한 흐름이었다. (들어본 사람도 많이 있을듯…) 기존의 양식에 대해 도전적으로 나선 이 아르누보 계열의 가우디인지라,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양식도 기존 양식과는 많이 다르다. 일단 하늘을 찌를듯이 솟는 모습은 고딕양식과 많이 흡사하지만, 앞서 말한 수세미적 형태에 철저하게 직선을 배제하고 곡선을 유려하게 뽑아낸 디자인은 고딕의 날카로운 맛과 전혀 다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어떻게 지어졌나?

이 성당이 처음 기획된 것은 1866년이었고, 가우디가 그의 두 스승으로부터 처음 설계를 맡은 것이 1875년이었다. 그러나 빌랴르라는 건축가가 무료로 설계를 지원하면서 그의 설계도를 기본으로 삼아 일단 건축이 시작되었는데, 1883년에 가우디가 다시 설계에 참여하면서 빌랴르의 디자인은 가우디의 디자인으로 대폭 교체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가우디는 완성된 도면을 가지고 작업에 뛰어든 것이 아니라 공사를 진행하면서 자신의 아이디어에 맞게 부분부분 수정해가며 건물을 지었다고 한다. “아직도 짓고있다는” 느림보 공사의 첫번째 요인으로 이 디자인 교체를 꼽고있기도 한데, 사실은 성당 건축의 돈줄(?)인 지역교구가 공사비를 제때 내지 못해 공사가 자주 중단되었다고 한다. 그런 틈이 날 때마다 가우디는 자신의 입맛에 맞게 디자인을 수정해나갔고,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대표적 특징 중 하나인 디테일한 조각들을 만들어갔다. 어느 정도 완성된 설계도가 나온 것은 1906년경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이때 정면도가 공개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우디가 죽으면서 완전한 설계도면을 남겨놓은 것도 아니어서, 건물의 일부분, 특히 디테일한 부분들은 가우디의 뒤를 잇는 건축가들이 가우디의 기본 이념에 맞춰서 추가로 설계작업을 해가며 짓고있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 가서 보면, 가우디가 죽기 전에 지어놓은 부분과 가우디가 죽은 후에 설계되어 덧붙여진 부분은 확! 차이가 난다고 한다)
참고로 가우디는 말년에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에서 먹고 자면서 설계에 매진하다가 성당 바로 앞길에서 전차에 치어 죽었다.

시대의 한마디?

100년 넘게 짓고있는 건물로 충분히 유명하다보니 우리나라에서 부실건물 무너질 때마다 꼭 거론되곤 하는 건물이다. (어쩌면, 그렇게 자주 보다보니 우리나라에 가우디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아졌는지도) 하지만 사그라다 파밀리아가 부실공사를 안하려고 안짓는 것도 아니고… 비유는 좀 적절하지 못한 것 같다. 사실 나는 이렇게 디테일하고 조형적인 건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내가 좋아하는 건축가는 미스 반 데어 로에라니까… 건축하는 사람들은 안다) 가우디의 건물에 대해서도 별로 할 말이 없다. 단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아직도 짓고있다”는 홍보성 멘트라도 날려줄 수 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