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을 사용하게 되면서 이것저것, 전에 안해보던 짓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 중 하나가 인터넷을 하다보면 심심찮게 접할 수 있는 “이메일 E-mail”이란 단어였는데, “컴퓨터 상에서 편지를 보낸다”는 말에 혹해서 이것저것 알아보니 하이텔이나 유니텔 같은 인터넷 접속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에게는 xxx@xxx.xxx 라는 식의 이메일 주소를 부여해주고 그 이메일 주소로 편지를 주고 받는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니까 나처럼 따로 접속서비스를 활용하지 않고 학교 전산실 죽돌이가 된 사람은 학교에서 이메일 아이디를 주지 않는 한 이메일을 못쓴다는 말이 되겠다. 그런가보다, 하고 포기하고 있었는데 모 시사잡지에서 인터넷 특집을 다룬 기사 쪽을 읽다가 “무료로 이메일을 준다!”라는 문장에 눈이 확 돌고 말았다. 무료 회원 가입만 하면 이런저런 사이트에서 이메일 계정을 준다, 는 말이었는데 그 이런저런 사이트 중에서 나름대로 심사숙고하여 골라 회원 가입을 하고 이메일 주소를 받았다. 그 사이트가 바로바로 핫메일 Hotmail 이었다. 잘 믿기지 않는 분이 계실지 몰라 말씀드리는데, 그때는 한메일이라는 게 생기기 전이었고 핫메일도 한국어 지원이 되지 않을 당시였다. 몇개월 뒤에 한메일이 생기면서 한국어 지원이 안돼 불편하던 핫메일은 놔두고 한메일 계정을 따로 만들기는 했으나 그때만 해도 무료 이메일 계정은 참으로 희귀한 것이었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인터넷에서 동호회 활동도 하고, 구인광고 같은 거 없나 뒤져도 보고, 모 기업에 인터넷으로 지원서도 내보고… 등등으로 인터넷을 활용하고 있었지만 “홈페이지”라는 것에 대해선 딱히 매력을 느끼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가 동호회 회원 한 명이 학교에서 내준 계정으로 홈페이지를 만들었다며 광고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 홈페이지에 방문했다가 링크된 자료 중에서 “HTML 기초강의”라는 HWP 문서파일을 하나 아무 생각없이 받았다. 베이직이나 C++ 등의 프로그래밍 언어에는 여전히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일단 HTML이 언어라면 심심풀이삼아 배워볼만 하겠다, 싶어서 그날부터 문서를 펼쳐놓고 하나하나 해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메모장에서 HTML 문서를 작성해서 브라우져에서 확인하려고 보니, 내 컴퓨터가 386이라 넷스케이프를 설치해서 돌리면 버벅버벅거리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학교 전산실에서만 해볼 수도 없고… 해서 여기저기 수소문해서 비교적 용량이 작은 브라우저인 <오페라>를 다운받아 디스켓에 담아서 집에 있는 386 컴퓨터에 설치한 뒤 HTML을 본격적으로 공부할 수 있었다.
처음 HTML을 독학으로 배우기 시작할 때만 해도 “홈페이지를 만들겠다”는 생각은 별로 없었다. 그냥 이렇게 이렇게 써넣으면 브라우저 상에서 저렇게 저렇게 보인다, 라는 사실 자체만 재미있어서 요모조모 뜯어보고 고쳐보고, 기껏해야 인터넷 게시판에 글을 올릴 때 이미지를 넣거나 폰트를 좀 꾸미는데 활용하는, 정말로 심심풀이 수준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인터넷에서 “무료로 홈페이지 계정을 줍니다”는 말을 듣게 되었고, (그 전에도 지오시티 등 무료 홈페이지 계정을 주는 사이트들을 몇 알고 있었으나 ‘홈페이지 만들 생각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관심을 갖지 않았었다) 마침 취직도 여의치 않고 기분도 꿀꿀해 “홈페이지나 하나 만들어보자!” 이런 생각이 정말로 문득 들었던 것이다.
일단 네띠앙에 회원 가입을 하여 (회원 가입한 순번이 500번째 안쪽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때 가입순서에 따라 무슨 이벤트가 있었거덩) 무료 계정 4메가를 얻었고, (그때는 FTP가 뭔지도 모를 때였다) 네띠앙에서 제공해주는 파일매니저를 통해서 내가 만든 HTML 문서 몇 개를 올려놓았다. (“곧 개장하겠습니다” 뭐 그런 수준의 내용이었다)
홈페이지를 만들기로 결심하고나니, 홈페이지에 무슨 내용을 넣을까? 가 새로운 고민이 되었다. 제일 먼저 생각했던 것은 “내 홈페이지에서 영화음악을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였고, 그 당시만 해도 인터넷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음악들은 미디파일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몇 곡의 영화음악 관련 미디 파일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영화음악만 달랑 올려놓기는 뭐해서 영화에 대한 이야기도 좀 넣어야겠다… 라고 생각해보니, 다른 영화 관련 홈페이지라는 것들이 너무 상투적인 내용만 다루고 있는 것 같아 약간 그런 주류에서 빗겨나간 내용을 넣는게 (내 성격에도 어울리고)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몇몇 외국 사이트들을 뒤져 “영화 속의 옥의 티” “영화 제작에 얽힌 비화” “영화 속의 카메오” 같은 정보들을 득득 긁어모으기 시작했다. (나중에 알았는데, IMDB 사이트에 알아서 정리가 자~알 되어있더라) 그리고 학교 도서관을 뒤져 기네스북에서 영화관련 기록만 복사해서 다시 워드로 입력하고, 평소 관심이 많던 골든래즈베리 영화제에 관련한 내용도 관련 사이트를 찾아서 모아두었다. 한마디로 영화를 다루는데 있어서 별로 중요하게 생각되지 않는 것들만(뒷이야기, 영화음악, 영화계의 기네스기록, 최악의 영화 등) 죄다 모아서 홈페이지를 만들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일이 커져버린 것이, 평소처럼 건담에 관련된 사이트들을 서핑하며 이미지도 보고 글도 읽고 하다가 “건담에 대해 종합적으로 소개해놓은” 사이트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부터였다. 예전에 워드 연습한다고 건담대백과를 몽창 HWP 문서로 만들어놓은게 있었기 때문에, 이걸 홈페이지에 넣는 거야 식은 죽 먹기 같았다. 아싸리 건담도 넣자! 이러면서 일이 걷잡을 수 없이 되어버렸다. 평소 <천녀유혼> 영화를 좋아했기 때문에, 동호회 게시판에 <천녀유혼>에 대한 글을 쓰면서 참고를 할까 싶어 인터넷에서 <천녀유혼>에 대한 정보를 검색했더니 거의 하나도 없다시피 하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또 <천녀유혼>도 넣자! 이렇게 돼버렸고, <영화음악>도 첨엔 가볍게 생각했었는데 외국 사이트를 검색해보니 버리기 아까운 영화음악 미디파일들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던 것이다. 결국 원래 의도와는 달리 <영화음악>도 별도의 메뉴로 독립하는 방향으로 홈페이지 최종 구상이 끝나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