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손목에 찼던 시계는 아마 국민학교 3~4학년 무렵에 이모가 사주셨던 “카시오 전자시계”였다. 당시에는 전자시계가 나온지 얼마 안된 시점이라 애들한테는 전자시계가 꽤 인기가 있었는데, 스톱워치 기능이 있으면 더욱 인기가 높았다. (내 시계에는 없었다)
이 시계는 중간에 한번 앞유리에 금이 간 것 제외하고는 멀쩡하게 십여년을 버텨주었다. 다른 손목시계가 없었던 것도 아니지만 나는 줄곧 그 전자시계만 차고 다녔고, 대충 그 시계의 줄이 짧아져서 더 이상 찰 수 없을 때까지 (대략 고등학교 졸업하기 직전까지는 되지 싶다) 그 시계만 찼다.
그 시계의 뒤를 이어서 내가 손목에 차고 다닌 시계는 우습게도 형이 중학교인지 고등학교인지 졸업할 때 부상으로 받은 시계였는데, 시계 뒷면에 “XX부대장상”(학교와 자매결연을 맺은 부대장이 주는 상이었다)이라고 긁어서 새겨놓은 시계였다. 그걸 대학 다니면서, 군대 있으면서, 대학 졸업하고 취직한 뒤까지도 계속 차고 다녔던 것 같다. (대략 10년 조금 안되는 기간이다) 아, 군대에서는 하도 도둑맞는 물건이 많아서 이 시계를 목욕할 때도, 잘 때도 풀어놓지 않고 항상 차고 있었다. 그러니까 30개월동안 한번도 손목에 풀어놓은 적이 없다는 말이 되겠다. 군대 갔다와서는 시계 뒷면의 “…부대장상” 때문에 군대에서 상으로 받은 시계냐는 질문도 숱하게 들었고.
그러던 어느날 이놈이 수명을 다했을 때(전지만 다 됐다) 그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듯 어머니가 새로운 시계를 차라고 주셨다. 행여 내가 다시 그 시계에 약넣어서 다시 차고 다닐까봐 새 시계를 차고 다니라고 두번 세번 당부까지 하시면서… 내 인생 최초의 가죽끈 시계였는데 시계의 12시 자판 밑에 무슨 마크가 새겨진, 역시 아버지가 어디 방문 기념으로던가 얻어오신 시계였다. 이 시계는 약 1년 정도 차다가 말았는데, 이때부터 핸드폰을 갖고 다니기 시작하면서 여름에 땀나는데 손목에 뭘 감고 있다는 사실이 영 귀찮아지기 시작해서였다. 마침내 1년만에 이 시계의 건전지가 수명을 다 하자, 그냥 핸드폰만 들고 다니고 손목시계는 풀어서 서랍에 고이 간직해버렸다. 지금은 손목시계를 차지 않은지 거의 2년 정도 되가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