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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덕 – 관운장과 맞선 덕에

2004년 1월 27일



방덕

본시 마초의 부하였다가 뒤에 조조 수하에 든 용장. 남안군 항도 사람으로 자는 영명(令明). 용맹이 뛰어나 위교 싸움에서 조조를 위기에 몰아넣은 적도 있었고, 마초가 패하여 장노를 의지했을 때도 행동을 함께 했다. 마침 병이 들어 마초가 유비에게 항복할 때는 따로 떨어져 남아있다가, 조조의 한중 침공 때 또다시 용감하게 항전하였다. 조조는 그의 용맹을 아껴 장로의 모사 양수를 뇌물로 매수하여 반간계로 고립시킨 뒤 꾀로 사로잡았다. 조조가 관우와 형주 양양성을 두고 싸울 때, 자원하여 관을 짜 지워가지고 나가 싸우다가 주창에게 사로잡혔으나 굽히지 않고 죽음을 당하였다.

무력 94의 장수, 방덕

코에이사의 “삼국지” 게임을 하다보면, 소설 속에서는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거나 크게 다뤄지지 않았던 장수들을 새삼 돌아보게 되는 경우가 왕왕 있다. (물론 삼국지 게임을 쭈우욱 해온 사람이라면 그렇지 않겠지만, 삼국지를 소설로만 읽다가 게임으로 처음 접해본 사람들은 그럴 수 있다) 반대의 경우 – 꽤 대단하다고 생각했던 장수나 선비들이 생각보다 능력치가 낮게 나오는 경우 – 도 있겠지만, 워낙 많은 장수가 등장했다가 언제 나왔는가 싶게 사라져버리는 탓에 (무진장 용맹스런 장수인 것처럼 등장했다가 앞뒤 연결도 없이 사라져버리는 장수들, 많다) 기억해둘만한 장수들 몇몇을 기억에서 놓쳤다가 게임에서 그 장수의 능력치를 보고 ‘오오~ 이 장수가 이 정도였단 말인가?’ 식으로 감탄했던 적이, 적어도 나에게는 제법 있었다.

그렇게 기억되는 장수 중 한 명이 지금 이야기하고자 하는 방덕이다. 삼국지 2를 하던 중 ‘Pang De’라는 장수가 무력 94에 지력 64, 매력 71이라는 만만치않은 능력치를 갖고 있음을 보고, 도대체 Pang De가 누구인가 소설을 다시 되짚어보니 그게 바로 방덕이었더 것이다. (얼굴도 잘생기게 그려져있다) 위에 소개글에서도 나오지만 처음에는 마초의 부장(副將)이었고 이런저런 사연으로 인해 장노의 수하에 있다가 결국 조조의 수하로 들어간 장수로, 우금과 함께 양양성을 치면서 관운장에게 결코 밀리지 않았고, 결국 사로잡혔으나 당당하게 죽음을 선택하는 장면에서 지력과 무력, 매력 모두 상당한 점수를 얻은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삼국지>와 관련된 여러 곁다리 문헌들(최근에 쓰여진…)을 읽어보면 방덕을 아주 높게 평가하는 책이 있는가 하면, 방덕처럼 무명의 장수도 제압하지 못하는 관운장의 무예를 폄하하는 목적으로도 심심찮게 거론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일반적으로 <삼국지>에 열광하는 사람들은 관운장의 무예에 대해서 별로 이견을 달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에 “방덕도 대단한 무사다”라는 식의 해석을 고집하기는 하지만.

방덕은 정말 출중하고 의로운 장수였나?

제목대로 삐딱하게 함 가보자. 방덕의 무예가 그렇게 출중했을까? 코에이사의 “삼국지”에서 매겨놓은 방덕의 무력치를 관찰해보면 94(2편) – 94(3편) – 96(4편)… 이렇다. (2~4편은 내가 수첩에 일일이 따로 정리해놓은 것이 있어 그 능력치를 참고했으나 이후의 시리즈는 기록이 없어서 파악 불가능) 특히 4편에서는 지략도 71이라는 상당히 준수한 점수를 주고 있어, 방덕에 대한 평가가 시간이 흐를수록 높아지는 경향을 볼 수 있다. (그냥 혼자 생각으로는, 나처럼 게임을 통해 방덕의 가치를 재발견한 게이머들이 늘어나면서 게이머들의 방덕에 대한 인기가 오른 탓이 아닐까… 싶은데) 그러면 우리가 익히 들어서 알고있는 장수들의 무력치를 한 번 나열해보도록 하자. 관운장에게 한 칼에 쓰러진 원소의 장수 안량, 문추가 90-91 수준에 머무르는 것은 뭐 그럴 수도 있다 치자. 몇몇 삼국지 애호가들에 의해 “삼국지 내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장수”로 꼽히는 장료가 91 수준이었고, (물론 장료는 지략이 80대고 무력치도 나중에는 95 수준까지 향상된다) 그 외의 조조 무장들은 하후돈이 93, 하후연이 90, 장합이 90, 조인이 84밖에 안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허저(98)와 전위(97) 다음으로 조조 휘하에서 무력치가 가장 높은 장수가 방덕이라는 조금 이해하기 힘든 결과가 나온다. 과연 조조 휘하에서 방덕이 그만큼 대단한 장수로 평가되었었나? 방덕이라는 장수가 하후돈이나 장합, 장료보다 무력이 높을 정도로 대단한 활약을 보여준 적이 있었나? 아무리 탈탈 털어봐도 양양성 전투에서 관운장과 맞짱 떴던 그 장면 뿐인데 말이다.

의로움도 그렇다. ‘병이 들었네 어쩌네’ 핑계는 있지만 방덕은 주군이었던 마초가 유비에게 항복했을 때 그 뒤를 따르지 않았다. 수동적인 배신이지만 배신은 배신 아닌가. 조조에게 항복했던 관운장이 유비의 소식을 듣고 금은보화 다 팽개치고 빈털털이인 유비를 좇아가는 장면과 비교해보면 마초 – 장로 – 조조로 주인을 바꿔가는 과정이 그렇게 아름답지만은 않아보인다. (하여튼 관운장 때문에 삼국지에 등장하는 장수들에게 기대되는 도덕성이 무척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특히 조조와는 마초의 뒤를 따라 위교에서 대판 싸웠고, 다시 장로의 명을 받아 남정에서 크게 싸우는 등 조조에게 엄청난 위협이 되는 인물이었는데, 그러고도 그 인물을 탐내 자기 사람으로 받아들인 조조가 대단하다면 대단하지, 방덕은 – 내가 보기엔 – 그냥 이익을 좇아 이리저리 주인을 옮기는 그렁저렁한 장수에 불과하지 않은가.

어쩌다 관운장과 붙는 바람에…

형주땅을 차지하고 앉아 조조에게 눈엣가시와도 같던 관운장을 치기 위해 우금과 함께 전선으로 나갈 때도, 우금이 조조가 황건적을 칠 때부터 휘하에 있던 노장이긴 하지만, 분명히 우금의 부장으로 따라갔던 것이었다. 연의에서는 이 출정장면에서 방덕이 자신이 들어갈 관을 짜는 등 상당히 비장하게 임했던 것으로 묘사하는데, 삐딱하게 보면 이랬을 수도 있다. 조조가 한중싸움에서 방덕을 탐낸 것은 방덕이 탐나서라기 보다는 자신을 공격하는 장로의 예봉을 꺾기 위해서였고, (실제로 방덕이 조조에게 넘어가자 장로는 오래 버티지 못하고 조조에게 항복했다) 실제로 그후 이런저런 전투에서 방덕이 나왔다는 말을 본 기억이 없다. (물론 연의에서 전쟁마다 참석한 장수 이름을 다 들먹거렸을 거라고 믿지는 않지만) 재주를 아껴서 데려왔다면 써먹지 않고 놔둘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렇다보니 거의 4년만에 자신에게 온 기회를 앞에 두고 (한중함락 215년, 관우사망 219년) 어찌 비장해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게다가 연의에서는 그가 출정하기 전에 “전 주인과 형이 촉에 있으니 배신할지도 모른다”는 모함을 받는 장면도 나온다. 억울해서라도 오바액션하게 돼있는 거다. 마찬가지로 일단 의심받은 상황에서 사로잡혔을 때 덜렁 항복해버리면 모함하던 사람들 말이 맞다고 인정해주는 거 아닌가. 나라도 오기로 항복 안한다. 또 평생 조조만 따라다니던 우금과 비교해서 이유야 어찌 됐건 이리저리 옮겨다니던 신세이다보니, 관운장에게 사로잡혔다고 또 덜렁 항복해버리는 것도 사나이 자존심깨나 상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나는 방덕이란 장수 별로 높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말을 하려고 잡설이 좀 길었으니 이해하시라.

아, 글을 맺으려다 생각나서 덧붙이는데, 그렇다면 방덕과 관운장이 맞붙어서 밀리지 않았던 것은 뭐냐? 라는 물음이 나올 법하다. 너도 관운장의 무예가 연의에서 부풀려져있다고 보느냐? 뭐 이런 거 말이다. 아유, 나는 연의에서 누구랑 누구랑 붙어서 누가 이기고 누가 밀렸으니 누구는 누구보다 잘 싸운다 이런 말 들으면 화딱지가 나는 사람이다. 싸움마다 요새 말로 컨디션도 다르고 체력도 다르고 모든 환경이 다 다르지 않나. 한 번 싸움에서 밀리지 않으면 무조건 동급이라더냐? (그렇게 따지면, 방덕과 붙어서 승부를 가리지 못했던 관운장의 양아들 관평은 왜 무력치가 89밖에 안된다더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