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음악이라는 장르를(영화음악을 장르로 볼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좋아하게된 동기와는 별 상관없이, 내가 좋아하는 영화음악들은 그냥 멜로디가 아름답다거나 연주가 좋다거나 노래를 부른 사람 목청이 좋다거나 하는 음악적인 문제와는 별 상관없었고, (그런 문제를 제대로 간파할만한 좋은 귀를 갖고 있지도 못하다) 영화 속에서 나름대로 하나의 역할을 담당했던 곡들을 기억에 남겨두고 좋아하는 그런 편이다. 음악으로는 별로일지 몰라도, 유독 그 영화가 아니라 주위에서 흔하게 듣던 노래라고 할지라도, 그 영화 속에서 맡았던 역할에 더 비중을 둔다는 그런 말이다.
역할을 담당하면, 어떤 역할? 예를 들면 이미 얘기한 바 있는 <마이걸 2>에서 엄마가 부르는 “Smile”이라거나, <에이스 벤츄라>에서 여형사가 남자임이 밝혀지는 순간에 흐르던 보이 조지의 “Crying Game”이라거나… 그런 곡들은 영화 속에서 상당히 복잡하게 표현할 수도 있는 이야기들을 단순한 노래 한 곡에 실어서 간단명료하게 표현해버리는 힘을 보여주지 않았던가. 나 혼자 그렇게 생각했다면 말고.
같은 이유로 나를 아주 쓰러지게 만들었던 영화, 주성치의 <서유기 월광보합-선리기연>을 보자. 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지명-인명은 모두 서유기 원작에 등장하는 지명-인명이지만, 캐릭터나 스토리는 주성치답게 잔뜩 꼬여있기 때문에 단순히 서유기를 그냥 손오공 나오고 저팔계 나오는 수준으로 아는 정도가 아니라 서유기를 나름대로 읽어본 사람이라면 그 이상의 재미를 찾을 수 있다. 주성치의 재해석(?)이 가장 빛을 발하는 부분은 바로 “수다스러운 삼장법사”인데, 삼장법사의 수다에 옆에 있던 사람이 목을 매어 자살을 할 정도다. 이런 삼장법사가 우마왕의 감옥에 갇혀있는데 사람 모습을 하고 원숭이 시절의 기억을 잃어버린 손오공(주성치)이 나타나고, 삼장법사는 손오공을 붙잡고 이렇게 묻는다.
“너는 당당당을 아느냐?”
“네?”
“너는 당당당 당다라당을 아느냐?”
이게 무슨 당나라 스님의 선문답이냐 싶은 순간, 배경음악이 깔리면서 삼장법사가 손수 돼지 멱따는 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Only You~ (우리가 익히 들어 아는 그 Only You 맞다) 나를 도와 서역으로 갈 사람은 Only You, 오공 너밖에 없단다~ 당당당 당다라당~
삼장법사의 캐릭터를 함축해서 보여주면서, 주성치 특유의 개그도 한껏 녹아있고, 손오공이 삼장법사에게 진절머리를 내는 모습과도 극명하게 대비되는 삼장법사의 노래는 분명 <서유기 선리기연>에서 가장 웃기는 장면으로 꼽을만하다. 그 웃음이 단지 삼장법사의 노래가 웃겼다거나, 표정이 웃겼다거나, 상황이 웃겼다거나 하는 차원이 아닌, 영화를 보고있던 관객들의 허점을 푹 찔러들어오면서 어이없는 웃음을 짓다가 결국은 포복절도하게 하는 그런 웃음이기에 영화를 다 보고나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라 할 수 있겠다. 솔직히 다른 주성치 영화 중에서 <서유기>가 그렇게 웃겼다고 생각되지 않지만 나름대로 주성치 영화 중 <서유기>를 상당히 높게 쳐주는 이유가, 자잘하게 웃기지 않고 이렇게 한방에 보내주는 무엇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