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동전사 제타건담 극장판> 1부 “별을 쫓는 자”를 보기 위해 시부야 시네팔레스극장에 도착한 순간이 2005년 5월 28일 저녁 8시 30분. 진작 시부야 역에 도착해서 토큐한즈, LOFT 등을 아이쇼핑하다가 더 기다리기 힘들어 약속시간보다 (극장측에서는 영화 시작 15분 전까지 오라고 했었다) 15분이나 일찍 도착했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극장 로비에 가보니 이미 영화를 보려는 사람들로 한창 북적거리고 있었다.
게다가 극장 입구에는 “기동전사 제타건담 오늘 상영분은 매진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라는 A4 용지가 곳곳에 붙어있어서 ‘진작 표를 끊지 않았다면 큰일날 뻔 했다’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였다. 입장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은 아침의 무대인사를 기다리던 팬들보다는 여성 비율이 좀더 높아보였고, 그것은 아마도 심야상영이라는 특성상 연인끼리 극장을 찾은 비율이 더 높은 탓이 아니었을까 나름대로 추측해보았다. (물론 한국이라는 상황에서나 그렇지… 영화 끝나고 11시경 바깥으로 나와보니 그 유명한 시부야 거리도 한산하더라. 밤새워 노는 건 우리나라 전매특허인 듯)
몇 개 안되는 의자는 이미 일찌감치 온 사람들이 다 차지해버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로비에 서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면서 팝콘이나 음료수를 사기도 하고, 제타건담 팜플렛이나 OST CD를 사기도 하고, 기타 기념품들(열쇠고리나 전화카드)을 사는 사람도 있었다. 마침내 8시50분, 앞선 영화의 상영이 끝나자 직원들이 상영관 입구를 막아 나가는 관객들의 출구를 확보해주었다. 입구에서 나가는 모습을 지켜본 앞선 영화의 관객들은 30여 명이 채 안될 정도. 지금 제타건담의 상영을 기다리고 있는 관객들은 (매진이라고 하니) 180여명. 조만간 종일상영과 심야상영의 순서가 바뀔 조짐인 것 같았다. (6월5일 현재 바뀌었다)
시네팔레스 1관 (홈페이지에서 가져왔음)
관객들을 다 내보내고 장내 정리를 하는 듯 하더니 정각 9시에 입장 개시. 두 개의 문 앞에 두 명의 남자직원이 서서 “정리번호 1번부터 10번까지 나오세요”를 열심히 외쳐대고, 그러면 웅성거리던 사람들 중에 몇몇이 나와 자신과 가까운 쪽의 문으로 다가가 표를 제시하고 입장해서 자기가 앉고 싶은 자리에 앉은 방식으로 입장이 진행되었다. 내 정리번호는 51번이니까 51~60번을 호명할 때 입장했는데 한 번호만 빨랐어도 조금 일찍 입장할 수 있었다는 생각에 조금 손해본 기분도 들었다. 그렇지만, 정작 극장에 들어서 보니 내 정도 번호면 엄청 빠른 축이라, 넉넉하게 가장 뒷자리 중앙(원래부터 앉으려고 작정했던 자리)을 차지하고 앉을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극장에 갈 때마다 항상 신경쓰였던 것이 앞자리에 무릎이 부딪히는 문제였는데(외람되게도 다리가 좀 길다보니) 이 극장은 의자간 간격이 상당히 넓어서 다리를 꼬고 앉기에도 불편함이 없는 점이 맘에 들었다. (우리나라 극장들처럼 따닥따닥 붙여넣었으면 20~30석은 더 넣을 수 있었을 거다) 나보다 정리번호가 뒤인 사람들이 계속 들어오는 가운데 내 왼쪽에는 금발로 염색한 꽁지머리를 한 30대 정도의 남자가 애인과 자리를 잡았고, 오른쪽에는 양복에 서류가방까지 든 안경쓴 남자가 홀로 앉았다. 입장이 진행되는 동안 스크린에는 특별한 광고라거나 개봉예정작 예고편이라거나 하는 영상이 나오지는 않았고, 제타건담 극장판의 테마곡인(3부작 모두 테마곡으로 쓰인다고 한다) 각트Gackt의 “Metamorphoze”와 <기동전사 건담>(퍼스트건담)의 주제가인 “翔ベ! ガンダム(날아라! 건담)”만 번갈아 틀어주고 있었다. (솔직히 오랫동안 “翔ベ! ガンダム”는 오래된 만화영화 주제가라 조금 촌스럽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이런 자리에서 이런 분위기에서 들어보니 갑자기 가슴이 따뜻해지는 것 같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水の星へ愛をこめて”라도 틀어주었으면, 하는 생각도 들긴 했지만.
객석이 대충 가득차고, 늦게 들어온 연인들은 자리가 없어서 서로서로 헤어져앉는 생이별의 현장도 목격하고, 마침내 극장의 불이 꺼졌다. 왠일로 광고가 없다 했더니 불을 끄고나서부터 광고가 시작되었다. -_-; 하지만 연달아 방영된 네 편의 광고는 공교롭게도 모두 건담 관련.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프라모델 광고, DVD 광고, 뭐 그런 식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나서 이연걸이 주연한 영화 “대니 더 독”(일본넘들 발음으로는 “다니 자 독꾸”)의 예고편이 방영되고, 드디어, 영화가 시작되었다.
역시 테마곡인 “Metamorphoze”가 흐르면서 우주-소행성지대를 3D 그래픽으로 그려낸 화면이 넓게 펼쳐지다가, 지온군 병사의 시체가 우주를 떠도는 장면을 클로즈업하면서 오프닝이 마무리되었다. (여기까지는 신영상) 그리고는 바로 익숙한, 제타건담 1화에서 샤아가 등장하는 장면이 등장했다. 다른 군더더기 없이 바로 샤아의 릭디아스가 그린노아2에 잠입하는 장면, 그리고 검은 건담 MK II와 마주치는 장면까지 빠르게 넘어갔다.
알려진 바대로 카미유가 제리드와 육탄전을 벌이는 장면 없이, 바로 헌병에게 취조당하는 장면이 카미유의 첫 등장이었다. (나중에 회상하는 장면에서 잠깐 나오긴 한다) 그리고 바로 카미유의 탈주, 릭디아스와 건담 MK II의 전투… 여기까지는 신작화와 구작화의 비율이 거의 2:8 수준이었는데, 카미유가 아가마로 간 후 에마가 특사로 넘어오는 부분에서부터 신작화가 늘어나기 시작, 막판으로 갈 수록 신작화의 비율이 늘어나는 추세를 보였다.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신작화는 옛날 영상에는 없는데 스토리를 축약 편집하면서 필요하게 된 장면이거나 16:9 비율로 자르면서 화면이 많이 손상된 장면에 한해서만 삽입된 것이 아닐까 보여지고, (한 씬에서 신작화와 구작화가 번갈아 나오기도 했고, 에마 등이 싸이드 1을 방문하는 장면은 레코아가 싸이드 1을 촬영한 비디오를 보여주는 화면으로 처리되었는데, 보여주는 사람들은 신작화고 보여지는 영상은 구작화이기도 했다. 즉 한 화면에 신작화와 구작화가 절묘하게 편집되어 들어간 셈) 마지막 지구에서의 전투만 팬서비스 차원에서 좀 길게 신작화를 넣은 것이 아닌가 싶었다. 하여튼 전체적으로는 신작화:구작화의 비율이 5:5 정도로 보여졌다.
스토리를 구구절절 늘어놓는 것은 스포일러성이기도 하고 솔직히 다들 알고있는 내용이기도 하니 생략하고, 몇가지 포인트만 짚어보겠다. 스토리는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샤아와 카미유, 아무로의 세 가지 이야기에 집중하는 느낌이 강했다. 그러다가 마지막 장면에서 세 사람이 조우하게 되면서 라스트~ 아마 이런 효과를 노린 것이 아닌가 싶고, 그래서인지 1부 한편만 놓고 봐도 꽤 스토리에 완결성이 느껴졌다. (2부, 3부에서도 계속 이렇게 진행될까? 하는 기대를 가졌는데 2부 예고편을 보니 어째… 아마 2부에서는 카미유-포우, 샤아-레코아, 아무로-벨토치카를 중심으로 스토리를 편집하지 않을까 예상해본다. 제목이 “연인들” 아닌가.) 잡다한 전투는 없애고 크게 네번의 전투로 축약시켰는데, 첫번째는 샤아의 그린노아2 잠입과 카미유의 Mk II 탈취, 두번째는 카미유의 어머니가 저격당한 후 카미유의 MK II와 제리드의 하이잭의 싸움, 거기서 이어서 카미유의 아버지가 샤아의 릭디아스를 탈취해서 도주하다가 다시 카미유와 교전, 라이라 미라 라이라의 가르발디가 그 싸움에 끼어들었다가 카미유의 아버지가 사망하면서 종결되는 전투, 세번째는 에우고의 모빌슈트들과 티탄즈의 모빌슈트들이 쟈브로 강하와 저지를 위해 대기권에서 벌이는 전투, 거기에 이어서 쟈브로 상륙 후에 벌어지는 전투, 네번째로 아우도무라로 탈출하다가 앗시마와 갸프랑에게 추격당해서 벌어지는 공중전, 그리고 아무로의 등장으로 깔끔한 마무리. 이렇게 전투 장면도 크게 나뉘고 그만큼 스피디하게 전개되었기 때문에, 솔직히 동시통역 수준의 히어링이 안되는 상황에서 1시간 30여분을 정확히 알아듣지도 못하는 대사를 들으며 하루종일 동경 시내를 돌아다닌 피곤한 몸으로 극장의 편안한 의자에서 버틸 수 있을까 걱정했던 것은 말짱 기우였고, 화면에만 빠져서도 충분히 긴장감을 늦출 수 없었다.
특히나 고작 인터넷에서 다운받은 오래된 동영상파일로는 도저히 느껴볼 수 없는 5.1채널스러운 사운드… (빔라이플이 머리 뒤에서 날아와 MS에 꽂히는 순간 가슴이 벌렁거릴 정도였다) 무엇보다도 16:9 비율의 커다란 화면… 그 화면을 꽉꽉 메꿔주는 스피디한 영상이 압권이었다. 왼쪽에 앉았던 꽁지머리 연인들이 거의 끌어안다시피 하고 영화를 보지만 않았다면 좀더 집중할 수도 있었겠지만, 뭐 그렇게 크게 신경쓰였던 것도 아니니까… 다만 스토리가 스피디하다면 스피디하고(어차피 다 아는 이야기라고 쳐도) 군더더기 없다면 군더더기 없달 수 있겠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장면이나 꼭 필요한 설명이 빠진 것은 아쉬움도 있었다. (그것 삽입해봐야 10~20분밖에 더 추가되지 않았을텐데) 카미유와 제리드의 첫만남, 카미유의 샤아 수정 같은 장면들이 그랬고, 건담 Mk II는 갑자기 검은색에서 흰색으로 바뀌어 나오고 백식도 그냥 갑자기 튀어나오는 형국이었다. (참고로 카미유 아버지가 릭디아스를 뺏아 도망칠 때 샤아는 쫓아나가지 않고, 카미유가 검은색의 3호기를 몰고 추격하며, 도중에 릭디아스의 저격으로 3호기의 왼팔이 날아가면서 TV판과 영상이 매치되기 시작한다 -_-) 2부에서 포우의 죽음까지 다룰지(그렇게 될 공산이 크다고 본다)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상영시간을 좀 늘이지 않는다면 2부에서도 이런 문제는 계속되지 싶다.
영화가 끝난 후 일어나서 나가는 관객들
어쨌든 백식과 MK II가 아무로를 감싸안은 채 아우도무라를 배경으로 정지화면- 이 멋진 일러스트를 배경으로 영화가 끝나고, 아무런 배경화면도 없이 각트가 만든 엔딩테마 “君が待っているから”가 흐르면서 엔딩크레딧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보통 이쯤에서는 극장에 불켜지고 관객들 일어나고 이래야 정상일텐데, 극장에 불도 켜지지 않았고 관객들 아무도 일어나지 않았다. (딱 한 명. 일어나서 나갔지만 화장실이나 갔다오는 거였는지 금방 되돌아왔다) 엔딩 크레딧이 끝나자 극장판 2부 예고가 시작되었는데, 신작화 위주로 짜여진 예고편이어서 그런지 이것 역시 굉장한 영상을 보여주었다. 특히 포우의 모습과 마지막에 잠깐 보여주는 제타건담의 모습이… 그렇게 예고편마저 끝나자 극장에 불이 켜졌고, 사람들도 그때서야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한꺼번에 180명의 사람들이 나오는데 엘리베이터는 꼴랑 두 대라, 아까 사려다 못산 팜플렛이나 사려고 판매대로 갔더니 이미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어서 줄을 서야했다. 판매직원이 한 줄로 서라고 해서 섰는데 옆에 있던 놈이 뒤로 가라고 성질을 부려서 잠깐 기분상했다가(쬐끄만 자식이…) 내 차례가 와서 팜플렛과 특전영상이 포함된 CD까지 사버렸다. (전화카드… 같은 건 나한테 필요없지 않겠나?) 사람들이 대충 다 빠져나가서 한산해진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미리 잡아둔 숙소로 돌아온 시각이 대충 밤 11시20분. 숙소까지 오는 지하철 안에서 제타건담 팜플렛을 자랑스레 들고왔다는 점도 참고삼아 밝혀둔다.
약간 계획에 차질이 생겨 가장 사람이 많이 몰렸을 신주꾸 조이시네마의 무대인사관람 입장행렬을 보지 못한 것을 빼면, (감독의 무대인사는 원래 볼 계획이 없었고) 지극히 만족스러운 관람이었다. 귀국한 후 여기저기에서 들은 정보에 따르면 그리 부족한 개봉관 수에도 불구하고 흥행성적 3위를 기록했다 하고, (그런데 내가 보기엔 전체적으로 극장 관람 인원수가 많지 않더라) 지금도 극장 홈페이지를 찾아보면 매진행렬을 기록하고 있는 모양이니 어쩌면 장기 흥행이 될지도 모르겠다. 토미노 감독이 무대인사 자리에서 걱정(?)했다던, “흥행이 되어야 2부 3부가 계속 나올텐데”라는 걱정은 일단 접어도 될 듯 싶고, 이제는 2부 3부가 어떤 퀄리티를 가지고 세상에 나오는지가 중요한 시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