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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삼례이야기] 잘난 척 하는 배삼례

1998년 2월 1일

삼례의 자기 자랑 하나.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다는 삼례의 부모님은 아들을 잘 둔 덕에 아주 호강을 하면서 농사를 짓는다고 한다. 삼례가 짜준 프로그램은 아침이 되면 무인자동시스템으로 움직이면서 돼지 밥도 주고 (내가 돼지밥은 사람이 미리 해놓냐고 물으니까 기계가 알아서 만든단다) 소 여물도 주고 닭 계란도 수거한단다. 이건 프로그래밍 수준이 아니라 아주 자기가 로봇을 만드는 공학박사쯤은 된다고 착각을 하는 모양인데 나를 바보 천치로 알고 이런 거짓말을 하나 싶어 은근히 열받기도 한다.

삼례의 무궁무진한 거짓말은 우리 시설대대를 벗어나 다른 대대에까지 널리 알려져 있었다. 군대에서나 통할 어설픈 말발로 몇몇 어수룩한 사람(이를테면 오소리같은)들은 정말 삼례가 대단한 컴퓨터 도사라고 믿고 있었다. 한번은 무슨 훈련기간이라 야간 교대근무를 할 때였는데, 보급대대에서 레이저 프린터가 고장났다며 상사 한 분이 우리 사무실로 찾아왔다. 한밤중이라 어디 애프터 서비스에 알릴 수도 없고, 여기 사무실에 대단한 컴퓨터 도사가 있다길래 찾아왔다나. 그 사람이 설명을 하는데 얼마전에 우리 프린터가 일으킨 고장하고 똑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그 설명을 얼굴이 흙색이 되어 듣고있던 삼례가 나를 돌아보았다.
“너도 고칠 수 있지?” “그럼요”
(나도 몰랐었는데 애프터 서비스하는 사람이 와서 다음에 또 이러면 이렇게 하라고 가르쳐주고 갔었다) 그러자 갑자기 표정이 확 밝아진 삼례는 자기가 지금 바빠서 갈 수가 없는데 이 자식(그러니까 나다)도 쫌(아주 강조해서 발음하더군) 아니까 데리고 가보라고 말하는 거였다. 내가 선선히 그 상사를 따라가자 삼례는 뒤쫓아와서 잘 모르겠으면 전화하라는 되먹지않은 수작도 빼놓지 않았다. 보급대대에서 프린터를 고쳐주고 돌아오자 삼례는 거만한 자세로 의자에 앉아있다가 나를 보고 물었다.
“별 거 아니지?” “그럼요”
늘상 하는 말이지만 삼례는 언제쯤 인간 구실을 할 수 있을까.

이건 군사보안에 속하는 문제인데 뭐 3년도 더 지난 이야기니까… 우리 사무실은 군사비밀도 담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영내병 중의 한 명은 비밀취급증을 발급받아야 한다. 우리 사무실에서는 왕고참이었던 윤병장이 비취증을 갖고 있었고, 바로 밑에 삼례는 비취증이 없고, (그놈에게 비밀을 맡겼다간 나라 말아먹는다) 그 밑에 내가 제대할 윤병장의 대타로 비취증을 받았다. 그런데 부대에서 일년에 한번씩 비취증을 가진 사람을 대상으로 보안지식평가와 음어조해(쉽게 말해서 암호해독)대회를 여는데, 운이 좋아서 갓 일병이었던 내가 우리 비행단에서 일등을 하고 단 대표로 공군본부에 나가게 되었다.
보안과에서는 비행단의 명예를 걸고 나간다며 나에게 사무실 업무를 오후는 열외하고 보안과로 와서 특별 교육(?)을 받을 것을 요구했다. 당연히 우리 계장이야 오케이지만 바로 윗고참인 삼례는 배알이 꼴릴 수밖에 없지 않은가. 수시로 보안과로 전화해서 나보고 얼른 오라고 개발새발 소리지르는가 하면, 사무실에서도 잠깐 짬을 내서 시험 준비를 하는 나를 들들들 볶지 못해서 안달이었다. 그러더니 하루는 한다는 소리가, 원래 자기가 신병일 때 비취증을 받으려고 했었다,(보일러 특기는 비취증 죽어도 받을 수 없다) 그때 자기가 음어조해를 해보니 100자를 3분만에 풀었었다, 그런데 자기가 다른 업무에 충실하고 싶어서 비취증 받는 것을 사양했다, 이렇게 말하는 거였다. 기가 차서 말도 못하고 그냥 웃어주었다. 음어조해를 내가 한 달 내내 붙잡고 살아서 5분만에 푸는데, 본부에서 세번째로 빨리 풀었었다. 음어를 처음 본 놈이 3분만에 풀었다는 건 야구공 처음 잡은 놈이 퍼펙트 경기를 했다는 말하고 똑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