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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삼례이야기] 무식한 배삼례 2 (부제: 컴맹 배삼례)

1998년 2월 1일

우리 부대 전산과장으로 있던 이 중위는 나하고 함께 부대 대표로 뽑혀 본부까지 다녀온 인연으로 친하게 지냈는데, 공교롭게도 처가집이 우리 동네라는 사실까지 알게되서 휴가도 한 번 같이 나간 적이 있을 정도였다. 서울대를 나온 분인데 컴퓨터를 잘 한다고 떠들고 다니는 삼례는 전산실 직원들에까지 손을 뻗쳐서 인맥을 쌓은 모양인지 이 분하고도 친한 편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그 형편없는 거짓말로 사람 꼬시는 열의는 인정해줄만 하다) 이 분이 한글과 컴퓨터사의 사장인 이찬진 씨하고 어떻게 친구인지 선후밴지 되는 모양인데(모르지 삼례가 지어낸 말인지) 삼례는 이찬진 씨를 이 분의 소개로 만나서 같이 식사도 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언젠가 이 중위가 무슨 프로그램에 대한 이야기를 하길래 삼례에게 그 말을 했더니 삼례는 형편없는 프로그램이니 개떡같은 프로그램이니 자신이 만들면 그 따위 프로그램은 갖다버린다느니 하는 말을 서슴지 않았다. 배치파일도 제대로 못 만드는 자식이 입만 살아가지고.

배치파일 얘기가 나왔으니 말이지, 내가 처음 사무실에 배치받았을 때 쓰던 XT 컴퓨터는 배치파일에서 한글 에뮬레이터를 띄우고 사용하는 것이었는데 에뮬레이터를 띄운 상태에서 HWP를 실행시키면 다운이 되기 일쑤였다. (어차피 주로 쓰는 프로그램은 프로워드였으니까 상관은 없지만) 내가 배치파일로 에뮬레이터를 지우고 HWP를 실행한 뒤 다시 한글을 띄우면 되지 않겠느냐고 하자 삼례는 어떻게 그렇게 만드느냐고 핀잔을 줬다.(하도 진지하게 말해서 나도 진짜 안되는 줄 알았다) 결국 큰 선심이라도 쓰듯 삼례가 한 번 해보라고 해서 나는 이렇게 배치파일을 짰다.
han – (이렇게 하면 한글 에뮬레이터가 메모리에서 지워진다)
hwp
han (HWP가 종료되면 다시 한글을 띄운다)
이 배치파일을 보더니 대단한 프로그램(?)이라고 감탄하는 삼례를 보고나서야 나는 삼례가 대단한 거짓말쟁이일 거라는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

누가 삼례에게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삼례는 당연히 프로그래머라고 말할 것이다. 그런데 삼례의 말대로라면 그는 이미 잘나가는 프로그래머다. (한메타자교사를 자기가 만들었다고 우긴다니까!!) 솔직히 내무반 사람들은 삼례가 프로그래머든 아니든 별 상관이 없는 사람들인데, 삼례는 어떻게든 사람들로부터 그걸 인정받아볼라고 낑낑 거리는 모습이 참 가상스럽다. 한번은 모두 모여서 TV를 보고 있었는데 어떤 TV 프로그램이었는지 기억은 안나지만 하여튼 컴퓨터 그래픽으로 꾸민 화면이 멋들어지게 돌아가는 부분이 있었다. 삼례는 기회다 싶었는지 얼른 한마디했다.
“야, 나는 요즘 저런 걸 보면 C 언어로 어떻게 저렇게 만들었을까를 늘 생각한다니까.”
C로 그래픽을 짜서 누구 죽일 일 있나. (당시 삼례가 막 공부하려던 프로그램이 C였고, 나를 비롯한 사람들에게는 이미 C를 마스터한 것처럼 떠들었지만 그 인간 포인터나 제대로 이해했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그 당시에는 삼례의 구라에 대해서 내무반 사람들도 이미 잘 알던 터라 삼례가 한 말에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삼례는 애절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지만 나도 야멸차게 외면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