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3년 정도 된 이야기 같은데,
<미라클>이라는 연극 작품을 재밌게 본 적이 있어서
그 연극 이후 다른 작품이 뭐 없나 뒤지다가
지금 공연 중이라는 연극작품의 배우 프로필 사진 중에서
어디서 많이 본 얼굴 하나가 눈에 띄었었다.
이게, 분명히 친한 친구라고 하기는 뭣하지만,
학교 다닐 때 나랑 같은 반이었거나 오래 전에 조금 친했던 친구,
뭐 그런 정도가 아닐까 싶은 정도의 인상.
그 배우의 이름이 오재균이었다.
오재균, 오재균. 졸업앨범부터 찾아봐야겠다.
먼저 고등학교 졸업앨범을 뒤져보니 과연 있었다.
그런데 문과인 걸로 봐서 2,3학년때 나랑 같은 반이었을리는 없고
1학년 수학여행 사진에도 없는 걸로 봐서 고등학교 친구는 아니라는 결론.
중학교 앨범을 뒤져보니
아하, 3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녀석이었다.
비록 중학교 고등학교를 같이 나왔다고는 하지만
무려 20년만에 다시 보는 얼굴이다보니 잘 기억이 안났을 수밖에.
그런데 연극배우라. 허허 그것참.
중학교 3학년때의 짧은 기억이긴 하지만 연극배우가 될 것 같은 분위기는 전혀 없었는데 말이지.
아무튼 삼십이 넘어서도 계속 (흔히들 돈 안된다고 생각하는) 연극무대에 있다니 괜히 대견한 것도 같고
요즘 한국영화가 워낙 많이 나오다보니 연극무대에서 내공을 깨나 쌓은 배우들이 속속 스크린에 데뷔하곤 하니까
이 녀석도 조만간 영화배우로 나서는 거 아닐랑가, 싶은 생각도 들고…
(중학교 당시 기억으로는 키가 작은 편이었으니 그게 좀 핸디캡일지도 모르지만)
뭐 그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조금 잊고 있었더랬다.
그러다가 얼마전,
신문기사를 뒤지다가 새로 나온 연극 이야기에서 또 이 친구의 이름을 발견했다.
연극제목은 <수수께끼 변주곡>. 2인극인데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심리 스릴러물이라나.
이런 종류의 이야기를 좋아하다보니 읽다가 친구의 이름을 발견한 셈인데
나를 기겁하게 만든 대목은 사실 기사의 이 부분이었다.
(전략) 우수에 찬 눈빛의 미남 배우 오재균이 기자 역으로 밀도 있는 연기를 보여준다.
우수에 찬 눈빛의 미남 배우
우수에 찬 눈빛의 미남 배우
우수에 찬 눈빛의 미남 배우
그래, 생각해보니 그 녀석이 좀 우울해보이는 인상이긴 했지.
학교 다닐 때 안경을 쓰긴 했어도 잘생긴 얼굴이었지. 그것도 맞고.
근데 왜 이렇게 웃기는 건지 원.
기사랑 같이 난 사진을 보면 우수에 찬 눈빛의 미남 배우란 말도 잘 어울리네.
하여튼 괜히 기사 한 줄에 삘이 꽂혀서 네이버/구글 총동원해서
이 녀석의 이력을 함 뒤져보기로 했다.
그러다가 더 재미있는 기사를 발견.
그는 잘 생긴 외모 탓에 항상 우수에 차고 시종일관 진지한 주인공 역할만을 해 오다 김광보 연출에 의해 극단 청우에 발탁된다.
기자들끼리 짠 건가.
아님 아까 그 기자랑 같은 기자인가.
하여튼 잘생긴 배우라는 말이 이렇게 재밌을 수 있다는 사실 처음 발견.
그러다가 위 기사의 원천(?)일 연합뉴스 기사를 보니 또 같은 이야기 반복.
우수에 찬 외모가 트레이드 마크인 극단 청우 단원 오재균이 기자를 맡아 밀도있는 연기를 보여준다.
몇몇 기사를 더 찾아보니 예전에 맡았던 배역에 대한 기사도 조금조금 눈에 띄었다.
<웃어라 무덤아>라는 연극에서 맡은 택시기사 역에 대한 호평과
뮤지컬 <로미오와 쥴리엣>에서 로렌스 신부 역을 맡은 것에도 연기력에 대한 호평(노래실력까지)이 있었다.
기사 말고는 아까 말한 <수수께끼 변주곡>을 보고온 사람이 자기 블로그에 올린 글 중
이 친구의 연기를 대단히 칭찬한 글도 있어 조금 인용해봤다.
에릭 라르슨의 역할을 맡았던 오재균 씨의 연기는 상당히 인상 깊었습니다. 비밀을 감추고 아무것도 모르는 척 평범한 신문 기자 행세를 하는 라르슨의 부드러우면서 정곡을 찌르는 날카로운 대사를 무척 잘 소화하더군요. 작품 내내 그 부드럽고 침착한 태도를 유지하다가 마지막에 감정이 격앙되어 “내가 본 그 빛은 두려움이었습니다. …… 살아있었습니다! 살아있단 말입니다!”라고 외칠 때에는 그대로 가슴이 철렁. 캐릭터 자체도 굉장히 매력적이었고 ㅡ 반면에 아벨 주노르코는 조금 정형화된 감이 있었습니다 ㅡ 연기도 훌륭해서 마음껏 감정 이입이 가능했습니다.
(출처는 http://lunaticsun.myi.cc/tt/50)
중학교 당시의 오재균에 대한 기억이 조금씩 살아나는 마당에
우수에 찬 미남배우로 자리매김한 (거기다 출중한 노래실력으로 뮤지컬까지 소화하는) 동창의 현재 모습이 정말 매치가 안되서
혼자 계속 키득거리며 재미있어하고만 있었다.
연극계에서는 그래도 자리를 잡은 편인 모양인데, 아무리 뒤져봐도 영화에 출연했다는(조연이라도) 말은 없어서
우수에 찬 눈빛의 미남배우다보니 영화쪽 조연자리는 잘 안들어오는 모양이구나… 싶어 거 미남배우 타이틀이 오히려 좀 아쉽기도 했고.
그랬는데,
어제 뒤늦게 (개봉한 것이 2005년이니) <음란서생>을 보다가
어라, 저녀석이? 싶은 장면을 발견하고 만 것이다.
영화 보신 분들은 아실랑가 모르겠지만, 이범수가 오달수를 붙잡으러 갔다가 건달들과 실랑이 하는 장면에,
우수에 찬 미남배우 오재균이 출연한 것이다.
물론 건달-_-역으로.
저 장면 조금 뒤에 이범수한테 정통으로 한 대 맞고 나자빠지는데…
연극무대에서 그래도 이렇게 저렇게 잔뼈 굵은 배우들이, (그것도 우수에 찬 눈빛의 미남배우가) 거대자본이 투입된 영화판에서는 저런 식으로밖에 소모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니
그렇게 기분이 좋지만은 않더라.
더 기분 나빴던 것은 그래도 친구(?) 이름 보려고 막판 크레딧까지 기다렸는데
이렇게 나왔을 때.
잘 알 수는 없지만 그 친구한테 이 영화 출연은 그리 좋은 기억은 아닐 것 같다.
물론 뭐, 아무리 우수에 찬 눈빛의 미남배우라도 건달역도 할 수 있고 연쇄살인범역도 할 수 있는 것이지만,
그래도 연극판에서는 주연급 배우라는 사람을 2~3분짜리 장면에 대사 두어개 주고 출연시켜놓고는 이름까지 틀리게 나오게 하다니.
하여 결론은,
<수수께끼 변주곡> 2월11일까지 대학로 산울림소극장에서 한다는군요.
우수에 찬 눈빛의 미남배우와 중학교 고등학교 동창인
시대가 썼습니다.
임수정은 저와 초등학교 동창입니다.
같이 주번 할 때 제가 청소 안 한다고 걔가 고자질해서 매 맞은 적이 있네요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이 오재균이란 배우랑 친한 사람인데 그는 임권택 감독의 하류인생이란 작품에서도 한성일보 기자로 나와서 우수에 차게 걸어와서 조승우에게 한방 맞고 나가떨어진답니다.
하류인생이면 좀 오래됐네요. (못본 영화입니다) 오재균씨에게 알고보니 국민학교도 동창이더라고 전해주세요.
시대가 썼습니다.
재균아, 열심히 해라. 언젠가 우리 사당역에서 새벽까지 소주 8병 마시면서 내가 했던 말 끝까지 기억하기 바란다… 누구나 무대에 설 수는 있다. 하지만 그들 모두가 배우가 되는건 아니다. 언제나 초심을 잃지 말기 바란다.
저도 예전에 음란서생 크래딧 보다가, 이름 잘못나온거 보구 씁쓸했던 한명입니다.
키도 작고 그닥 미남(?)은 아니었지만, 좀 멋있었던 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