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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대리일기 열번째

2007년 3월 20일

[봉대리의 일기]

12/08 (수) 댑따 흐리다…

오늘, 나는 피가 마른다는 느낌이 무엇인지 실감하고 말았다.
컴퓨터에는 도사라고 자부하던 내가,
나라면 못잡아먹어서 안달하던 피 부장도 자기 컴 요상해지면 전산실보다 먼저
나를 찾을 정도로 인정받고 있는 내가,
내 컴을 날려먹었다.
도대체 알 수 없는 일이다. 손에서 무슨 알 수 없는 기운이라도 뻗어나간걸까?
바이러스인가? 설마 그럴리가. 내가 아는 모든 시스템을 다 동원해서 완벽한 방어벽을
구축해놨는데.
분명히 부팅시켜서 워드 작업할 때까지만 해도 멀쩡했는데.
그냥 프린터 걸었더니 확 날라가버렸다.
허거덕…
프린터 드라이버 버근가? 아니면 워드 프로그램 버근가?
그런데 어제까지 멀쩡하던 게 왜 오늘 갑자기 날라가?
워쨌든… 오후는 그거 복구한답시고 일은 거의 못했다 히히히…
전산실로 어디로 그거 들고 이리저리 뛰어댕겼더니… 결론…
모르겠는데요…
전산실놈들도 물갈이를 해야되겠다. 용산에서 뛰던 실무경력자들로 싹 바꿔버려야
된다. PC도 제대로 못고쳐주면서 쒸…
어쨌든 하드 포맷하고… (가슴이 찢어진다…) 그동안 작업해놓은 파일들은 모두
안녕안녕 노래불러버리고… 새로 다 깔았다…
씨발 컴퓨터…
그래도 덕분에 당분간 일거리는 줄어들겠군…

[피 부장의 일기]

12/08 (수) 졸라 흐리다…

아침부터 배가 살살 아프더니 똥물만 나온다 씨…
화장실 몇 번 들락거렸더니 다리가 알딸딸하네.
그런데 믿거나 말거나지만 나는 이상한 징크스가 하나 있다.
똥간 갔다온 뒤에 컴퓨터를 만지면 꼭 컴퓨터가 나가버린다.
지난 번에도 똥때리고와서 아무 생각없이 마우스를 만졌더니 컴퓨터가 훡 소리와
함께 나가버렸다.
그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
지화자 씨 말에 따르면 변소에서 귀신이 내 손에 붙어와갖구 그게 컴퓨터로 옮겨가기
때문이란다.
저년 헷소리 하는 거 듣고있을라면 앞으로 신입사원 면접은 내가 하고 싶다.
오늘 아침에는 에쵸티가 케이비에쑤 가요대상 후보에 빠졌다고 혼자 열라 흥분한다.
뭐 알아듣도 못하게 노래 부르는 이상한 것들이 빠지는게 당연하지 왜 그래?
올해 가요대상은 “누이”를 부른 설운도가 먹어야되는데…
하여튼 오늘도 실수하지 않겠다는 신념으루다가
들어오는 길에 마침 자리를 비우고 담배피러나간 봉대리 자리로 가서
봉대리 컴퓨터를 살며시 쓰다듬어주고 갔다.
주위 사람들은 내가 똥간 다녀오는 줄 모르니까 아무 말이 없다.
뭐 알았어도 봉대리 평소 행실로 봐서 누가 말해주지도 않겠지.
하여튼 그러고나서 내 컴을 만지니까 아무 이상없다.
30분 뒤에 봉대리가 컴이 날라갔다며 고질라 같은 비명을 지른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야.
무당을 불러서 똥간에서 굿이라도 해야되겠다.

SIDH’s Comment :
첫직장에서 근무하던 곳이 전산실이었는데
사무용 컴퓨터가 아직 활발하게 보급되기 전이라 그랬는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컴퓨터가 말을 안듣는다며 고쳐달라는 전화를 받는게
주요 업무나 마찬가지였다.
(좀 높은 사람 컴퓨터가 고장났을 경우, 말단인 내가 가면 안되고 대리-과장급이 가서 고쳐야했다)
가서 상담(?)을 해보면 주요고장원인이
“내가 건드리기만 하면 고장난다”는 거였다.-_-
그리고 그런 이유로-_- 고장난 컴퓨터가 고치기 가장 어려웠다.
컴퓨터를 잘 모르는 사람이 알게 모르게 무리를 주다가 어느날 터졌겠거니, 라고 생각하지만
그런 하소연을 반복해서 듣다보면 어느날엔가는 정말 믿게 된다.
이래서 반복식 주입교육이 중요하다는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