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대리의 일기]
12/16 (목) 비 졸라 내림. 오후엔 개더군
어제 일기예보를 보았더니 전에 없이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여자 아나운서가
쪼잘거렸다.
“내일은 서울지역 3~7cm 정도의 적설량을 기록하는 눈이 내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현재 폭설주의보가 어쩌구 저쩌구…”
평소에 얼굴만 이쁘지 하는 말마다 거짓말만 한다고 불신하던 여자 아나운서였는데
오늘은 좀 다르지 싶었다. 그 자신감!!!
………
믿은 내가 바보였다.
뭐 눈을 고대하는 그런 입장은 아니지만 아침부터 폭우처럼 내리는 비가 달가울
이유도 없잖아.
버스 한 번 지하철 한 번 타고 출근하는 서민의 입장에서 비가 좋을 게 뭐 있노.
버스 졸라 늦게 와서 일차 스팀 올려주고
콩나물 시루같은 지하철에서 사람 사이에 낑가서 왔더니… 이요~ 헬스에서 한 시간
몸푼 것보다 더 몸이 찌릿찌릿하게 느껴진다. 씨바……
지하철 역에서 회사까지 걸어오는데 또 20분…
비가 왜 일케 내리는지 우산을 썼어도 외투 다 젖고… 바지가랭이도 흥건해지고…
다행히 구두에 물이 안스며들었기에 망정이지 양말까지 젖었으면 오늘 정말 돌아버릴
수도 있었다. 씨봉.
그런데 편하게 자가용으로 날라오는 피 부장은 왜 부어있는겨?
차가 밀려서 좀 늦는다고 해봐야 부장한테 누가 뭐라고 그러나?
별꼴이야 진짜… 내가 부장이라면 안그런다 씹새야.
[피 부장의 일기]
12/16 (목) 조까튼 비…
어제 일기예보를 보는데 여자 아나운서가 나와서 날씨를 설명하더라.
으흐흐 아직 스물다섯이나 됐겠구먼… 아직 가슴이 탱글탱글해보이는걸…
입 헤벌리고 뉴스보다가 마누라한테 맞아본 사람 손번쩍!
손든 사람들, 나중에 동지끼리 술 한잔 합세다.
하여튼 그 이뿐 아가쒸가 내일 눈온다는 폭탄선언을 하더라.
오~ 눈이 온단 말이쥐? 스노우타이어로 갈아끼워봐?
그럴 것 까지는 없고 체인이나 챙겨봐야제… 하고 어젠 잠이 들었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왠 컴컴.
억! 엔드 오브 데이즈인가!!
부다당 일어났더니 비가 좍좍 내리고 있다. 뭔일이래요 이게?
어제 스노우타이어로 갈아끼워놓지 않은 것을 천만다행으로 여기며,
아 씨바 비오는 날은 차 밀린단 말야 아침 빨리빨리~ 옷 빨리빨리~ 양말 빨리빨리~
넥타이 빨리빨리~
마누라를 족치다시피 서둘러서 집을 튀어나왔다.
에이 차열쇠~ 이쒸~ 빨리빨리~
지하차고까지 뛰어갔다가 도로 집으로 뛰어들어오고… 한바탕 전쟁이었다.
비오는데 그냥 버스로 출근하라는 마누라의 말에,
부장 체면이 있지 이 나이에 무슨 버스를… 탁 질러버리고 마이카에 시동을 걸었다.
부릉부릉~
달려라 키트~
…키트는 개코나…
8차선 도로에서 딱 막혀버려갖구 옴쭉달쭉도 못하더만.
아니 이렇게 비가 퍼내리는데 왜들 차를 갖고 나오고 지랄이야? 지하철 좋잖아?
혹시 지난 번처럼 비가 너무 많이 와 또 어디 지하철 역 침수된 건 아닌가 뉴스를
틀어봐도 그런 소리는 안나온다.
아리따운 여자 아나운서의 강수량이 얼마…하는 소리만 들리고.
이 아가씨 가슴은 큰가 모르겠네.
하여튼 왠놈의 버스가 옆을 지나치면서 물을 촤악~ 뿌리는 바람에 차가 걸레짝이
되질 않나……
비내리는데 오도바이 타고 달리는 노무시키들은 뭐여… 퀵서비슨가… 하여튼 그런
놈들이 빗길에 미끄러질 뻔 하는 바람에 차들이 일제 급정거하고 난리 부르스를 떨고
에구에구~
평소보다 두 배나 더 걸린 출근시간에 신경은 열 배나 더 피곤했다.
편하게 지하철로 실려왔을 봉대리가 쓰잘데기없이 얼굴이 부어있는게 꼴뵈기 싫음에도
불구하고 뭐라고 하기도 귀찮을 정도로.
에구… 그래서 오늘은 그냥 죽은 듯이 있다가 퇴근했다…
뉴스에서 그 가슴 탱글탱글한 아가씨가 내일은 추워진다고 그러네.
내일도 고진말이면…
확 따묵어버릴꼬야 씨…
예나 지금이나 일기예보에 대한 불신은 변함이 없어서
이 글을 시작으로 일기예보 씹는 아이템 많이도 울궈먹었다.
원래 취지는 날씨에 따라 출근전쟁을 치러야하는 직장인의 애환(씩이나!)을 다뤄보자,는 거였는데
난데없이 가슴 큰 기상캐스터 이야기로 빠져버리면서 결론이 이상해져버린 에피소드.
연재중이던 사이트 분위기가 분위기인만큼
야하게 써야한다는 강박관념이라도 있었던 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