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니오 모리꼬네

2008년 2월 26일

옛날 라디오에서 영화음악을 들을 때, 연말마다 애청자 엽서를 받아서 영화음악 베스트 100을 꼬박꼬박 방송했었다. 그때 100위부터 1위까지 꼬박꼬박 다 받아적으면서 정리를 해두었었는데… 지금 어디 있나 찾을 수가 없다. (무지하게 열받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대충 기억을 떠올려보면 당시 1,2위를 고수하던 영화는 <라스트 콘서트> 아니면 <러브스토리>였다. 그러나 내가 고등학교로 접어들며 라디오를 듣기 힘들어지고 영화음악 프로가 없어질 무렵 이 영화를 제치고 당당하게 1위를 차지한 영화가 있었다. 바로 <시네마 천국>이었다.
지금도 <시네마천국>은 연말 베스트 100에서 높은 순위를 차지하고 있을 것이고, 지금 현재 내 홈페이지 랭킹에서도 2위를 상당한 격차로 따돌리고 조회수 1위를 달리고 있다. 영화의 감동이 영화음악으로 발전된 경우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시네마 천국>의 음악을 담당한 엔니오 모리꼬네를 그렇게 쉽게 넘겨버릴 수만은 없다.
1928년 이탈리아 출생인 그는 마카로니웨스턴(황야의 무법자)의 주제음악을 담당하며 영화음악계에 데뷔했는데, 미국적 정취가 물씬 풍기는 헐리웃판 서부영화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서부영화를 창조해내는데 일조했다. 지금은 누구나 서부영화, 하면 떠올릴 정도로 유명한 ‘방랑의 휘파람’과 나름대로 서부영화 음악 중에 명곡으로 꼽히는 셰인의 “먼산울림”을 비교해들어보면 그 정서가 아주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는 관현악을 전공한 사람답게 관현악 악기를 잘 다루는데, 특히 <미션>의 “가브리엘의 오보에”는 상당히 애잔하고 차분한 음악인데, 장중한 스케일의 영화 <미션>에 너무나도 잘 녹아들었다. 종교적인 영화, 스케일있는 영화, 스펙타클한 영화는 흔히 장중하고 무거운 분위기의 (벤허를 보라) 음악을 즐겨쓰는데 반해 엔니오 모리꼬네는 자신의 음악적 세계로 대작을 더욱 빛나게 해주었던 것이다.
그 밖에도 마카로니 웨스턴의 끝세대에 속하는 <웨스턴>이라거나, 아들과 함께 작업했던 <시네마 천국>, 영화보단 솔직히 음악이 훨씬 들을만 했던 <러브 어페어> 같은 영화들이 엔니오 모리꼬네의 대표작으로 꼽힐만하다. 내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프로페셔널>(어느 연약한 짐승의 죽음)의 음악을 가장 좋아하고, 오래전 들은 뒤 영화제목만 기억하고 무지하게 찾아헤맸던 <오르카>의 테마도 가슴에 와닿는다. <웨스턴>처럼 여성의 보칼을 적절하게 삽입하여 <오르카>의 그 독특한 분위기를 잘 살려냈다. 비슷한 영화인 <죠스>와 <오르카>가 차별되는 것은 존 윌리암스와 엔니오 모리꼬네의 차이가 아니었을까?
들리는 말에 따르면 엔니오 모리꼬네는 영어를 전혀 하지 못한다고 한다. 하지만 헐리웃에서 그가 받는 대접을 생각해보면 음악은 언어 이상의 설득력을 갖고 있는 것이 사실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