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카모토 류이치

2001년 5월 5일

<마지막 황제>라는 영화를 보면서, 헐리웃에서 중국을 소재로 한 영화를 만들었다는 사실 자체가 생경했던 적이 있었다. 극장에서 줏어든 안내책자에는 이 영화의 음악을 사카모토 류이치라는 일본 출신 작곡가가 맡았다는 얘기도 있었는데, 그걸 보고 일본 사람이 중국 분위기를 어떻게 내나? 라며 코웃음 쳤던 기억이 난다. 서양사람들은 한국 중국 일본이 비슷한 문화권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사실 한국 중국 일본처럼 비슷한듯하며 각자 다른 문화도 없지 않은가?
그러나 사카모토 류이치는 이 <마지막 황제>로 아카데미를 비롯한 여러 상을 휩쓸면서 영화음악가로 입지를 굳혔다고 한다. 일본에서 잘나가는 신세대 작곡자였고,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메리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의 음악을 맡으며 영화음악계에 입문한 이후 <마지막 황제>로 명성을 얻어 유명 감독들이 같이 작업하고 싶어하는 작곡가로 자리매김을 한 셈이다.
영화음악 작곡가로만이 아니라 <메리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에도 직접 출연했고, <마지막 황제>에서도 비중있는 역할인 일본군 장교로 출연했고, 패션모델에 작가로까지 활동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사카모토 류이치가 <마지막 황제>에서 맡았던 장교가 자살하는 장면에서, 감독은 일본인답게 할복자살할 것을 요구했지만, 사카모토 류이치는 자신이 일본의 이미지에 갇혀버리는게 싫다며 미국식으로 권총자살을 했다고 한다. 실제로 그의 음악은 일본적 색채라는 것에 얽매여있지 않고, 신디사이저의 크로스오버적 측면을 잘 살려낸 독특한 자신의 음악적 색깔을 추구하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반젤리스만큼이나 진보적이고 선구적인 이미지를 쌓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