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5월 29일.
아침에 일어날 때, 왜 그럴 때가 있지 않나.
잠이 얼핏 깨서 잠시 눈을 감고 있으면 주변의 소리가 차츰 뇌에 인식되고,
그러면서 조금씩조금씩 정신이 들고 서서히 눈을 뜨는 그런 일반적인 단계가 아닌,
마치 뒤통수라도 철퍼덕 맞은 것처럼 갑자기 눈을 번쩍 뜨면서 잠을 깨는 그런 때.
바로 이날 아침이 그렇게 일어난 날이었음.
눈을 번쩍 뜨고 ‘어, 이게 무슨 경우야’하면서 주위를 둘러보니
날이 흐려서인지 햇살이 강하게 들어오고 그런 건 개뿔이나 없고
그냥 창밖에 도쿄타워만 번들거리며 서있을 뿐…
가만, 오늘 알람을 7시에 맞춰놨는데… 알람 소리는 안들리고…
9시10분까지 식당으로 가야 밥을 먹을 수 있는데… 지금 시간은?
다시 한번 정신이 번쩍 들면서 침대 맡의 시계를 봤더니!!!!
AM 07:30 기상.
아이고 살았다 싶어서 (이미 잠은 확 깨버렸으므로) 잠깐 침대에 누워서 버르적거리다가
7시40분에 일어나서 TV 켜고 (뭔가 소음이 들려야 심신이 안정되는 특이체질)
욕실에서 씻고, 호텔에 비치된 칫솔이랑 치약은 가방에 챙기고 ^^;
(참, 호텔에 비치된 실내용 슬리퍼를 보면 1회용이니 퇴실할 때 그냥 가져가시라…고 써놨던데 안가져왔음. 일단 사이즈가 안맞아서…)
아침은 좀 쌀쌀할 것도 같아서 옷도 긴팔셔츠로 갈아입고
짐 싹 챙겨서 (이번엔 시계도 잊지 않고!!!) 방을 나옴.
흐린 아침 창밖의 도쿄타워
아침식사 쿠폰을 보니 신관 2층으로 오라고 해서
한참을 걸어서 신관으로 가봤는데 2층으로 가는 계단을 못찾아 그냥 엘리베이터 타고 올라감.
가보니 바로 부페식 식당이 나오고 종업원이 뭐라고 하면서 맞이하는데…
메뉴들을 보니 우리나라 부페에도 필수처럼 나오는 김밥이랑 초밥이 없더만.
게다가 메뉴의 종류도 많지 않아서 우리가 생각하는 부페처럼 뭘 골라먹는게 아니라 그냥 있는 메뉴에서 양이나 조절하는 자율배식 수준…
이것도 부페라고 할 수 있나… 참.
아무튼 이것저것 골라보다가 계란이 있길래 그것도 한 알 챙기고
식탁이 있는 곳으로 갔더니 헐… 여기도 음식테이블이 또 있네.
아까는 양식 위주였고 여기는 일식 위주.(…이래봤자 밥이랑 죽, 국 정도였지만)
일단 손이 모자라서 테이블부터 잡아놓고 죽하고 국을 한그릇 퍼옴.
별로 맛있는지는 모르겠고 그냥 먹다가 가만히 계란을 쳐다보니
갑자기 이놈이 날달걀인지 삶은달걀인지 의심스러워졌음.
뭐 돌려보면 안다는 둥 여러가지 고르는 방법이 있지만 하나도 생각 안나고
그냥 모서리를 툭툭 쳐서 조심스럽게 까보는 방법을 택한 바…
날달걀이었음.
갑자기 이놈시키를 어떻게 먹어치워야하는지 고민하다가
방법 없잖아. 그냥 마셔버렸음.
(노래 부를 일도 없는데…)
오렌지쥬스까지 한 잔 가져다가 배 뚜드리면서 잘 먹어치우고
시계를 보니 아침 9시 15분.
이제 슬슬 움직여야겠다 싶어 식당을 나와 데스크로 가서 키 내주고 체크아웃.
호텔을 나오는데 아무래도 한국인으로 보이는 일단의 무리가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발견.
청춘남녀가 적당히 섞여있고 나이 좀 되어뵈는 분이 한 분 끼어있던데
교수님 모시고 답사여행 나온 학생들 분위기 물씬.
원했건 안했건 그 무리와 지하철까지 같이 타고
에비스역에서 헤어져 (빠이빠이하고 헤어진 것은 아님) 나는 시부야로 감.
오늘 일정은 오전에는 시부야에서 긴자선을 타고 가에몬마에 ~ 오모테산도 구역을 탐방하고 (볼만한 건축물이 좀 있음)
점심 쯤에 동경역으로 가서 도쿄포럼 구경하고
다시 고라쿠엔으로 가서 도쿄돔이랑 라쿠아 유원지 구경하고
저녁에 오다이바로 가서 구경하다가 밤에 하네다 공항으로 가는 코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이날 쓸데없이 시간 낭비를 한 곳이 많았는데… 뭐 그렇다고 볼 걸 못본 것은 없으니까라고 위안.
하여튼 시부야에서 긴자선을 타고 가에몬마에역에 내린 시간이 오전 10시 30분.
(거리상으로는 1시간이나 걸릴 필요가 없는데… 시부야역에서 갑자기 분카무라가 궁금해서 잠시 시간 헛보내고, 긴자선 타는 곳을 찾느라 또 시간 헛보내는 바람에)
일단 테피아를 보기 위해 메이지신궁 외원(가이엔)쪽으로 이동.
옛날엔 궁이었나 어쨌나 모르겠지만 지금은 국립경기장도 들어서고 유원지/공원으로 쓰이는 모양.
하여튼 그쪽으로 가려고 지하철 출구를 나왔는데
출구에서부터 일본식 도시락을 파는 사람들이 우르르 모여있는 걸 발견.
아… 일요일 아침이라 놀러오는 사람들한테 도시락을 파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하나 사먹을까 하다가 여기 오래 있을 생각 없으니 이따가 갈 때 하나 사볼까…로 생각을 고침.
조금 가다보니 어리게 보면 고등학생 정도로도 보이는 젊은이들이 스포츠신문을 펼쳐들고 서서 뭐라고 외치는 모습이 줄줄이 나오는데
아무래도 그 신문을 파는 것 같았음.
가이엔마에 역에서 조금 걸어가니 등장하는 경기장(나중에 알아보니 럭비경기장이라고 함)에서는 일요일 아침부터 무슨 경기가 벌어졌는지 난리난리…
아, 무슨 운동시합이 있어서 도시락을 팔았던 건가? 하는 생각도 들고.
조금 더 걸어가니 테피아가 등장.
테피아
테크놀로지 유토피아를 줄인 이름. (일본놈들 이런 식의 명명 되게 좋아한다) 기계정보산업에 국한된 국제정보교류의 장으로 기획된 곳으로 후미히코 마키가 설계. 카페, 전시장, 회의실, 스포츠시설 등이 있는데 그런 거 이용해보고 싶어서 간 건 아니니까… 이것저것 사진 찍어봤는데 아무래도 건물 안을 못본 것은 좀 아쉬움.
테피아만 보고 달랑 떠나기 뭐해서 메이지신궁 외원도 살짜쿵 구경해주기로 함.
조금 걸어올라가니 사람들이 바글바글, 소리도 웅웅거려서 뭔가 다가가보니
이것이 바로 말로만 듣던 메이지진구구장(야구장).
그 아침 일찍부터 무슨 야구시합이 있는지 응원소리 들리고 경기장 바깥에도 학생들이 바글바글. (아마 무슨 고등학교 시합이거나 하는 모양)
그 밖에도 국립경기장, 테니스코트, 성덕기념회화관 등을 슬쩍슬쩍 돌아보다 나옴.
여기서부터 본격적으로 계획 하나가 확 틀어졌는데
원래는 가이엔마에역에서 내려 테피아, 그리고 오모테산도역으로 걸어가다가 중간에 와타리움, 그리고 오모테산도역에서 콜레지오네와 스파이럴, 이런 탐방순서였음.
그런데 걸어가면서 와타리움 가는 길을 그려온 약도를 찾아보니, 없어졌음.
가만히 생각해보니 약도가 없어진게 아니라 이쪽 주변 약도를 뒤지면서 와타리움 약도를 찾는 걸 빼먹은 모양.
우씨,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가이엔마에에서 지하철 타고 오모테산도로 가면 되는데,
이미 절반 가까이 걸어와버렸으니 그냥 걸어가버릴 수밖에 없는 상황.
투덜투덜하면서 방향 크게 꺾어서 콜레지오네로 향했는데 생각보다 쉽게 찾음.
콜레지오네
유명한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작품. 지하 3층 지상 4층의 복합상업시설로 직육면체와 원통형태의 조화가 멋진 건물. 이번 여행을 다니면서 일부러 안으로 들어가본 몇 안되는 건물 중 하나인데, 원통형이 만들어낸 곡선이 창조해낸 공간도 궁금했고, 안도가 스스로 아주 맘에 들어했다는 지하 2층의 마당도 보고 싶었음.
콜레지오네에서 스파이럴까지는 의외로 쉽게 찾음.
(스파이럴이 워낙 오모테산도역에 바짝 붙어있었으니)
스파이럴
테피아를 설계한 후미히코 마키의 아마도 대표작? (마키의 직관적인 모더니즘의 완벽한 실례 어쩌구 하더라) 생각보다 가까이에서 본 모습은 별로였지만 뭐 그거야 내가 공부가 부족한 탓일테고, 자세히 살펴보면 학부시절 학생들이 열심히 베껴대던(?) 유형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음.
스파이럴을 끝으로 오모테산도 부근 건축기행을 마치고
다시 시부야까지 한 정거장을 지하철을 타고 돌아가서
JR로 갈아타고 동경역으로 향함.
PM 12:26 동경역 도착.
동경역
얼핏 보면 (구)서울역이랑 매우 흡사한 동경역… 암스테르담 중앙역을 본따 지었고, 서울역은 동경역을 본따 지었다는게 대충 정설… 일단은 사진만 대충 찍고 도쿄포럼을 보고 와서 좀더 살펴보려고 했는데… 본의아니게 지하도를 통해 동경역으로 돌아오는 바람에 사진을 더 못찍었음.
동경역 구경은 대충 하고 라파엘 비뇰리의 도쿄국제포럼을 보기 위해 출발.
(나중에 보니 지하도를 통해서 바로 도쿄포럼까지 갈 수 있더만. 괜히 더운데 바깥으로 걸어갔음)
도쿄국제포럼
우리나라의 종로타워를 설계한 라파엘 비뇰리의 작품. 아무래도 설계비용의 차이가 이런 건물의 차이를 만들어내지 않았나 싶음. (뭐 종로타워도 나쁜 건물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친구 김 모군 홈페이지에 이 건물 야경을 찍은 사진이 있는데 다음에 혹 오게되면 나도 밤에 와봐야겠음.
도쿄포럼을 구경하다가 잠시 벤치에 앉아서 다음 일정(고라쿠엔) 체크.
(고라쿠엔으로 가는 방법이 하도 복잡해서 동경역에서 뭘 타고 어떻게 가야되나 한참 살펴야했음)
다행히 동경역에서 고라쿠엔으로 한번에 가는 지하철이 있음.
지하철을 타려고 지하로 내려갔더니 황거(일본천황이 사는 곳)로 가는 방향에 대한 안내가 있어서
아 여기까지 왔는데 좀 걷더라도 가볼까… 싶었다가 포기.
PM 01:25 고라쿠엔역 도착.
도쿄돔 BIG EGG
고라쿠엔역에서 내려서 육교로 나갔더니 바로 도쿄돔이 보이더만.
카메라를 들어서 대충 각도 맞춰서 찍으려는데 어디서 들려오는 외마디 비명소리. 끼아아아악~~~~
뭔가 하고 둘러보려는 순간 휑 하면서 눈 앞을 지나가는 그 무엇인가.
말로만 들었던, 도쿄돔시티의 명물 선더돌핀(롤러코스터 이름)이었음.
주위를 둘러보니 커다란 관람차(빅오)도 있는데
선더돌핀은 도쿄돔 맞은 편에 지어진 라쿠아를 끼고 돌아서 빅오를 관통하는 등
이 도심 속의 유원지를 제대로 즐길 수 있도록 설계된 모양.
(도쿄돔시티를 배회하면서 비명소리를 거의 알람 수준으로 들을 수 있음)
라쿠아
도쿄돔의 바로 맞은 편에 지어진 복합상가/엔터테인먼트 건물. 스파라쿠아 같은 천연온천과 선더돌핀/빅오 같은 놀이기구, 13의 문(유령의 집) 등으로 구성된 도심 속의 유원지라고 함. (마치 홍보맨이 된 듯한…) 건물을 휘감고 있는 것은 선더돌핀의 레일.
빅오 (대관람차)
빅오를 관통하는 선더돌핀
야구 기념품점
라쿠아 구경은 좀 이따 하기로 하고 일단 도쿄돔으로 향함.
불행히도 경기가 없어서 도쿄돔 내부 구경은 할 수 없는 상황.
바깥쪽에서 사진만 좀 찍고 주위를 둘러보기로 함.
그래도 야구 기념품점이라거나, 메이저리그 기념품점이라거나, 도쿄돔 주변을 둘러싼 분수 구경 등 볼거리는 괜찮았음.
시계를 보니 대충 2시가 돼가는 것 같아 점심을 먹기로 함.
마침 기념품점 옆에 이런저런 식당이 있어서
역시 어제처럼 자판기에서 식권 뽑아 먹는 우동집으로 들어감.
(어제는 소바 먹었으니 오늘은 우동이닷! 결심하고)
아마도 커다란 튀김새우를 넣어줄 것으로 예상되는 이름의 우동을 사서 카운터에 디밀어줌.
여기는 서서먹는 체계가 아니라 그냥 셀프서비스인 관계로 카운터 가까운 자리에 가방 내려놓고 기다리다가
내 차례가 나오자 잽싸게 음식 나꿔채서 물이랑 챙겨서 후루룩 먹어치움.
큰 새우 곁들인 우동… 먹었음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니 어떤 아저씨들은 맥주 500cc도 한잔씩 놓고 꿀꺽꿀꺽 마시면서 식사를 하고 있길래
나가면서 자판기를 다시 살펴보니 맥주 식권도 추가로 주문할 수 있게 되어있더만.
아~ 날씨도 따끈따끈한데 맥주나 한잔 마실걸.
도쿄돔 귀퉁이에 있는 야구박물관으로 향함.
입장료가 성인 400엔이니까 그런대로 싼 편… 확실히 볼 것도 별로 없긴 했지만.
바깥에는 표 파는 곳이 없어서 일단 안으로 들어갔더니 데스크에 여자 한 명이 앉아있다가 벌떡.
그리고 데스크 옆에는 티켓 자동판매기.-_-;
일본은 왠만하면 자동판매기로고.
자판기에서 표를 뽑아 여자에게 내밀었더니 도장 하나 꽝 찍어줌.
도쿄돔 주변
야구박물관 입구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을 타고 가니 바로 나가시마(요미우리 전 선수/감독)의 유니폼이 나를 반겨줌.
확실히 일본야구를 대표하는 선수는 왕정치도, 사와무라도, 장훈(일리는 없지만)도 아닌 나가시마라 이거지.
오른쪽 왼쪽으로 가는 길이 갈라지는데 왼쪽으로 가는 길을 택함.
먼저 보이는 것은 현재 일본 프로야구 각 팀별 유니폼과 주요선수의 사인, 방망이, 글러브, 신발 등이 전시된 방.
그리고 방의 중앙에는 아마도 재팬시리즈 우승컵이 아닐까 싶은
요상한 컵이 전시되어있었음.
우승컵?
그 방을 지나가면 등장하는 것이 가네다, 왕정치, 그리고 후쿠모토, 기누가사 선수의 모습.
아마도 세계기록을 가지고 있는 선수들만 모아놓은게 아닌가 싶었음.
(한국계인 가네다 마사이치는 통산최다탈삼진, 왕정치는 아시다시피 통산최다홈런, 후쿠모토는 통산최다도루, 기누가사는 최다연속경기출장)
세계기록을 세울 당시에 입었던 유니폼이나 방망이, 글러브 등이 함께 전시되어있었는데
후쿠모토의 경우는 그때 훔친 베이스도 함께 전시해놓은 것이 재밌었음.
아울러 선수들의 기록 세우는 모습을 계속 TV화면으로 보여주는 것도 좋았고…
지나가니 일본 야구의 역사를 자료와 함께 전시해놓은 곳도 있고
(과연, 이런 것이 있어야 야구박물관이라 할 수 있겠지)
역사적인 선수들의 사진을 뒷배경 삼아 벤치에 앉아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곳도 있었는데
역시나 일본 프로야구 유일의 3000안타 선수, 장훈의 모습도 볼 수 있었음.
아테네올림픽 동메달 기념 스페셜코너
잠깐 열받았던 것은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딴 일본 국가대표 야구팀의 스페셜 코너.
(우리나라는 대만에게 덜미를 잡혀서 올림픽에 나가보지도 못했음)
미국조차 캐나다에게 발목을 잡혀서 나오지 못한 올림픽에서 고작 동메달을 따놓고도
올림픽에 참가한 전 선수의 사진/유니폼과 프로필을 쭉 전시해놓고
선수들 사인볼에 올림픽 경기 사진 모음,
그것도 모자라 올림픽 관련 영화까지 구석에서 틀어주고 있었음.
(선수 선발/소집부터 훈련하는 것까지 보여주던데… 자세히 안봤음)
아, 뒷골 땡긴다.
명예의 전당에 전시된 대형 사인볼
그 밖에 일본야구 전체 기록이 담긴 방에서 장훈 선수(어차피 알만한 이름은 장훈밖에… 선동열이 혹시 있을까 찾아봤는데 없는 것 같았음) 기록이나 찾아보다가
장훈 선수의 3000안타 칠 당시의 공과 방망이를 찾아서 사진 한방 찍고…
명예의 전당에서도 역시 장훈 선수만 찾아보다가 나옴.
명예의 전당을 지나오니 아까 가지 않았던 오른쪽 길이 도로 나오는데
일본 야구 관련 도서관과 배팅체험을 해볼 수 있는 코너, 각종 야구 게임 등을 전시해놓았고
TV에서는 누가 보거나 말거나 현역 야구선수들이 야구에 관한 간단한 강의를 하고 있었음.
잠깐 의자에 앉아서 봤는데 도루와 번트에 대한 강의 중. (모르는 선수들이었음)
나랑 같이 보던 젊은이들은 TV에서 번트 시범을 보더니 감탄사를 연발하더만.
아아, 역시 번트에 열광하는 일본넘들이란.
야구박물관 명예의 전당
장훈 선수가 3000안타 친 공
명예의 전당에 오른 장훈 선수
대충 야구박물관 구경을 마치고 나오니 3시가 채 안된 시각.
라쿠아 쪽으로 가서 이런저런 구경을 하려고 했는데
스파라쿠아(도쿄돔시티 내부에 있는 천연온천)에 가기는 좀 남사스럽고, 롤러코스터 선더돌핀은 굳이 탈 생각 없고,
빅오는 타보려고 했더니 (도쿄타워에 못올라간 한을 여기서나마 좀 풀어보려고…-_-) 대기시간이 무려 30분이나 되고,
원더드롭(워터슬라이드)은 시즌이 아닌지 물이 말라있고,
볼 거리는 되게 많은 것 같은데 막상 별로 할 것이 없었음.
다만 라쿠아 안에서 역시 자판기로 티켓 파는 라면집을 발견했는데
일본까지 와서 라면박물관은 못가볼 지언정 생라면은 한번 먹어봐야겠지 않나… 싶어
그래도 2시 조금 전에 밥을 먹었으니 라면은 4시에는 먹어줘야지… 하는 생각으로
그냥 한 시간 넘게 라쿠아에서 아이쇼핑이나 하면서 개기다가
4시부터 음악분수 공연을 한다니까 그거나 잠깐 보고 라면 먹고 오다이바로 가자…라고 결정.
지금 생각하면, 한 시간이라도 더 빨리 오다이바로 가는 게 나았을 것 같음.
(아~ 막판에 시간에 쫓겼던 것 생각하면 진짜…)
라쿠아 가든 스테이지
음악분수 (공연전)
선더돌핀 (막 떨어지는 순간)
13의 문(유령의 집)
도쿄돔까지 괜히 한바퀴 더 돌아보고나서 4시 조금 전에 라면집으로 감.
아까는 점심시간이라 사람들이 줄을 쫙 서있더니 지금은 한산해진 상태였는데
메뉴가 뭐뭐 있나 자판기를 한참 보고 있노라니 어느새 내 뒤로 줄이 쫙 생겨버림.
(이게 무슨 군중심리도 아니고…)
그런데 가만히 보니 버튼은 많은데, 이게 메뉴가 아니라 그냥 메뉴는 라면 하나고
고기 추가, 사리 추가, 계란 추가, 음료 추가 뭐 이런 옵션밖에 없는 거라.
고기나 사리는 추가할 생각 없고 그냥 라면 하나, 달걀 하나(추가),
그리고 맥주처럼 생긴 그림이 있어서 무작정 누르고나서 글씨를 읽어봤더니 차(茶)였음. (아아~ 날씨도 따끈따끈한 마당에~~)
티켓 세 개를 들고 내부가 전혀 안보이는 라면집 자동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대뜸 꽉 막힌 나무벽이 보이고 왼쪽에 일본연예인 야구치 마리 닮은 애가 하나 서있다가 뭐라고 씨불씨불거림.
아니 갈 곳 없게 콱 막아놓고 이게 무슨 상황이로고?
여자애한테 못알아들었다는 듯한 눈길을 지그시 보내주니 여자애가 다시 뭐라고 떠드는데
“하지메” 하나 알아들음. ㅠㅠ
아마 우리 가게에 처음 오셨냐 뭐 그런 얘기 아닐까 싶어서 예, 라고 대답해줬더니
무슨 설문지 같은 종이를 하나 주면서 저쪽으로 가라고 손짓을 함.
아니 저쪽은 나가는 문인데 -_-;;
저쪽 맞냐고 물어보니 맞다고 다시 손짓.
혹시 라면 안팔테니 그냥 나가라는 이야기…?
그쪽으로 쭉 가봤더니 아항~ 왼쪽은 나가는 문이지만 오른쪽에 또 통로가 있었음.
그런데 이게 헉… 언젠가 TV에서 얼핏 본 적이 있었던
그 한 사람씩만 앉아서 바로 옆 사람하고도 칸막이 다 되어있는… 그런 라면집이었음.
(앞에도 칸막이와 작은 커튼이 내려져있어서 주문받는 종업원도 보이지 않음)
야 우연찮게 고른 라면집 치고는 재밌는 곳을 잘 골랐네, 라고 감탄하며 자리에 앉았더니
배때기만 보이는 종업원이 다가와서 (그렇다고 그 좁은 틈으로 머리 디밀어 종업원 얼굴 확인하기도 뭐하고)
뭐라고 나발나발 떠들면서 아까 받은 설문지를 손가락으로 탕탕 치고는 테이블 구석의 벨을 가리키고 휭 사라짐.
이건 또 무슨~~~~~????
억지로 침착하려고 애쓰면서 주위를 살펴보니 주문하는 요령이 적혀있음.
(여전히 리딩은 되지만 히어링은 안되는 이노무 외국어실력…)
가만 보니 아까 준 설문지가 처음 오신 손님께 드리는 가게 관련 설문지가 아니라 주문서였음.
맛의 농도, 고기의 크기, 비법양념, 면의 상태 등을 묻고 있었는데
(못알아본 것은 대충 뺐음. 질문사항만 일고여덟개 됐던 것 같음)
뭐 알지 못하니 대충 다 기본, 기본, 기본으로 동그라미 치고 벨 눌렀음.
여전히 배때기만 보이는 종업원이 다시 오더니 주문서와 티켓 세 장 들고 말없이 사라짐.
사진 촬영을 할 수 없어 라면집(이치란) 홈페이지에서 찾은 이미지
테이블마다 식수 나오는 수도꼭지가 따로 있어서 물컵에 따라 마시고 있으려니
라면보다 차하고 달걀이 먼저 나왔음.
음… 이놈의 달걀은 또 날달걀일까, 삶은달걀일까?
소금이랑 같이 준 걸로 봐서는 삶은 것 같기는 한데…
역시 모서리를 툭 쳐서 조금씩조금씩 까보니, 삶은 달걀이었음.
달걀을 까고 있으려니 문제의 생라면 등장.
종업원이 뭐라고 한참을 얘기하더니 (그러고보니, 저 자식은 손님이 백인이건 흑인이건 보이질 않으니 무조건 일본말로 떠들 수밖에 없겠더만) 커튼 확 내려버리고 사라짐.
그려, 평화가 왔구먼.
나무젓가락 뜯어서 생라면을 드셔보니 예전에 서울에서 먹었던 생라면보다… 느끼함.
(서울에서 일본식 생라면이랍시고 먹어본 적 있었는데, 된장국에 국수 말아먹는 느낌이었음)
면이 꼬불꼬불하지 않아서 그렇지 그냥 삶은 면발하고는 좀 다르고
국물도 고기를 한덩이 둥실 띄워놓고 기름이 잘잘 흘러서 그렇지 라면스프맛도 좀 났음.
처음엔 먹기 이상해서 면발만 깨작깨작하다가 나중엔 그릇들고 국물까지 후루룩 마셔버렸으니.
(근데 확실히 느끼하긴 느끼해서 차 한잔 추가해놓길 잘했다 싶더만. 나중엔 차가 없어서 물 마셨음)
라면 먹고 나와서 음악분수 공연 잠깐 보다가 지하철로 이동.
(음악분수는 사운드 오브 뮤직에 나왔던 노래들을 메들리로 틀어주면서 공연하는데… 볼만했음)
PM 04:21 동경역행 지하철 탑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