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0월 30일 목요일.
그러니까 어제, 오후 6시쯤 ‘눈이나 좀 붙이자~’ 그러고 옷 그대로 입고 침대에 쓰러졌는데
중간에 한 번 뒤척인 느낌도 없이 눈 딱 떠보니 그대로 6시.
뭐야 좀 이상한데? 라는 생각에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아침 6시라는 사실 발견.
12시간을 쓰러져서 쥐죽은듯이 잔 거지 뭐.
그래도 푹 자고 난 탓인지 몸은 좀 개운한 것 같기도.
오늘의 일차 목적지인 개선문과 샹제리제거리
(출처는 flickr.com)
마누라는 아직도 비몽사몽에 몸살기운까지 있는지 완전히 쩔어서
못일어나겠다며 나보고 혼자 아침 먹고 오라고 함.
정말 못일어나겠냐니까 좀 쉬다가 일어나서 죽어도 또 구경은 하겠다고 함.
보아하니 오전에는 좀 쉬어야할 거 같아서 일단 나 혼자 밥먹고 왔음.
밥먹고 왔더니 일어나서 씻고 옷 갈아입고 있는 철의 여인-_-;;
괜찮으냐고 물으니 괜찮다고는 하는데 밥은 못먹겠다고.
나도 옆에서 옷 갈아입으며 그래도 밥은 먹어야 된다고 쫑알쫑알 잔소리.
밥은 밥이고 일단 바깥이 어제보다 더 추운 것 같아서
화요일밤에 추울까봐 내가 입는 두꺼운 점퍼를 마누라한테 입혀서(크긴 엄청 크지만) 나갔었는데
오늘은 대낮부터 일단 마누라한테 입혀놓고 (멋부릴 때가 아니다 지금)
나는 스웨터에 등산용 점퍼로 대충 마무리.
나가는 길에 설득당한 마누라는 1층 로비에 있는 식당에 들러서 아침먹고
식권이 있어야만 식당에 입장이 되는 관계로 나는 밖에 있는 소파에 앉아서 기다리며 오늘 일정 체크 시작.
체크해보나마나 이틀 연속으로 오후에 고꾸라지는 바람에 일정이 갑자기 빠듯해졌음.
일단 오늘 원래 계획된 일정은 개선문 – 샹제리제 – 노틀담성당 – 퐁피두센터였는데
저녁에 유람선 탑승을 추가로 넣어야 되는 상황.
아예 속편하게 그냥 내일 타자~ 그러면 되는데 (내일 귀국이긴 하지만 저녁 비행기라 시간 여유는 좀 있었음)
야경이 그렇게 좋다는데 밤에 안타보면 섭섭하잖아…
동선이 좀 많이 꼬이는 문제가 있긴 하지만 일단 노틀담에서 급히 유람선 타는 곳으로 달려오면 가능할듯도;;
그렇게 대충 정하고 일단 출발.
일차 목적지는 개선문!!
오전 9시 45분 개선문 도착.
일단 많이들 찍는 곳에서 멀찍이 보이는 개선문 한 방 찍어주고
지하도를 통해서 개선문 밑으로 이동.
5년전에는 그냥 아래에서 구경하고 말았는데 이번엔 “박물관패스”를 끊은 김에 아예 개선문 옥상에 올라가보는 것이 목표.
개선문 사진
프랑스가 유럽연합 의장국이 된 기념으로 이렇게 큰 깃발들을 달아놓으셨단다.
개선문 밑에 당도해보니
무슨 재향군인회 같은 곳에서 몰려왔음직한 제복 입은 할아버지들이 잔뜩 계시고
그밖에 관람객들도 엄청 많았음.
막 옥상 입장이 시작됐을 시간이라 입구가 어딘가 찾아다니다보니
조그만 문 앞에 왠 흑인아저씨가 나와있다가 다른 사람이 들어가려고 하니까 티켓을 사오라는 둥 뭐 그런 대화를 나누는게 보였음.
저기가 입구인가, 싶어 마누라 끌고 다가가 박물관패스를 보여줬더니
날짜를 유심히 살펴보더니 들어가라고 손짓.
자아, 이제부터 개선문 꼭대기까지 걸어올라가야 하는 미션.
그나마 실컷 자고 아침까지 먹어서 쌩쌩한 상태라 잘 올라갔음.
아침에는 죽을 것 같은 표정이던 마누라도 왠일로 잘 올라감.
중간에 한 두어 번 쉬었나? 까마득하게 올라갔더니 마침내 끝~~은 아니고
옥상 바로 아래아래층에 도착.
여기서 잠깐 휴식.
나선형 계단
계단 끝
한 10분 쉬고나서 다시 한 층 올라갔더니
개선문 모형도 있고 기념품가게도 있고 내용은 잘 모르겠지만 관련 영상물도 막 보여주고 있고.
기념품가게만 대충 구경하다가 옥상으로.
개선문 옥상층
옥상으로 나오니 찬바람이 휭휭 몰아치는게
한겨울 날씨래도 이 정도는 아니겠다 싶을 정도로 추웠음.
실제 기온은 영상 2도인가 정도였는데
높은 곳에서 찬바람도 맞고 옷도 제대로 겨울옷을 갖춰입은 건 아니라서 더 춥게 느껴졌을지도.
아무튼 개선문도 높긴 높지만 파리에 워낙 높은 건물들이 없는 편이라
(일부러 그렇게 한 것임)
샹제리제를 포함해서 파리에 주요 건물이나 거리가 한눈에 싹 들어오는 전망.
마누라와 함께 사방을 다 돌아다니며 카메라 줌 땡겨서 사진 찍어댔더니 이것도 꽤 쏠쏠한 재미가.
개선문 옥상에서 바라본 샹제리제거리
개선문 옥상에서 바라본 에펠탑
개선문 옥상에서 바라본 샤크레쾨르성당
몽마르뜨 언덕에 있는 성당인데 내일 방문 예정지.
개선문 옥상에서 바라본 라데팡스
아쉽지만 이번 방문계획에 없어서 이렇게라도 찍었음. 신도시라더니 확실히 건물규모가 다르구나.
개선문 옥상에서 바라본 그냥 파리 거리
대충 구경 다하고 아래로 또 걸어내려옴.-_-
그래도 걸어내려오는 건 금방이더라.
내려왔더니 아까 그 재향군인회 같은 아저씨들이 개선문 바로 아래에서 무슨 행사를 하고 있었음.
뭔지 모르는 행사 중
오 잘하면 행사 구경도 하겠는걸… 하는 생각에 신이 나서 개선문 앞쪽으로 돌아나가려고 했더니
주변을 지키고 있던 경찰이 뭐라고뭐라고 하면서 막아섬.
반대편으로 가려고 했더니 거기도 경찰이.
아마 저 행사가 끝나야 지나갈 수 있다는 모양.
아니 그런데 개선문에서 다른 곳으로 건너가는 지하도가 개선문 바로 앞에 있는데
그쪽으로 못가게 하면 저 행사가 끝날 때까지 꼼짝없이 이 개선문 아래에 갇혀(?)있어야 된다는 이야기.
다른 건 상관없는데 찬 바람이 쌩쌩 부는 이런 날씨에 어찌.
일단 주위를 보니 아마 직원용(?) 출입구처럼 보이는 곳이 움푹 들어가 있길래
마누라를 거기 숨겨서(?) 바람이라도 피하게 하고 내가 그 앞에 버티고 섰음.
개선문 안에서 나온 다른 사람들도 우리와 똑같이 발이 묶여 주변에 옹기종기 모여있었는데
바람을 피할만한 자리가 내가 선점한^^; 그 자리밖에 없어서 다들 밖에서 그냥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었음.
딱히 앉지도 못하고… 행사는 거의 한 시간 정도 걸려서 끝난 듯.
(기다린 시간은 아마 30분이 넘었지 싶은데…)
개선문 아래에 있는 무명용사의 묘
아마 이거 관련된 무슨 행사였겠지.
천신만고(?) 끝에 개선문을 빠져나온 시간이 오전 11시.
이제부터 본격적인 샹제리제 거리 관광.
사실 여자들이 파리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샹제리제 거리를 가득 메운 명품가게들이 아니겠나.
마누라도 여자인지라 여기에 엄청난 기대를.
(이미 표정은 아침에 못일어나겠다며 침대에 쩔어있던 그 사람이 아님. 생기가 돌더만)
그런데 시작하자마자 첫번째 가게인 까르띠에 쇼윈도에서 3만유로짜리 시계를 보고 둘 다 경악을;;;
구경하다가 잠시 다리도 쉴 겸, 추위도 피할 겸, 가까운 맥도날드로 들어갔음.
빵 하나하고 커피 두 잔 주문하려는데 줄이 한참이길래
마누라는 일단 2층에 가서 자리 잡으라고 하고 나 혼자 서있다가
말 한마디 안하고 손짓으로만 주문 성공. (아 영어울렁증)
2층에 가보니 날이 추워서 그런지 사람들 엄청 많아서 마누라도 어디 구석에 겨우 자리잡고 앉아있었음.
천천히 커피 한 잔 마시고 다시 출발.
푸조 매장에서 찍은 자동차 사진
샹제리제 거리 표지
그냥 샹제리제 거리
길 건너에 있는 루이비통 매장
여기 꼭 가봐야된다고 마누라가 난리난리.
도중에 마누라가 친구들 선물 산다고 <세포라>라는 화장품가게(거의 백화점 수준)에 들름.
화장품 가게라 그런지 종업원들이 다들 악착같이 화장하고 있었음.
(외국에서 백인들 화장 악착같이 한 모습 보기 드뭄)
옷도 깔끔하게 정장 입어서 뭐 말이 종업원이지 다들 지배인이나 가게 주인 같더만.
(참고로 남자종업원들은 뭔가 게이같은 느낌을 풍기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마누라가 맘에 드는 물건을 몇 개 고르고 있는데
한 남자 종업원이 다가와서 뭐라고 했는데 순간 못알아들었음.
한 1초 정도 생각해보니 “Can I help you?”라고 한 것임.
마누라가 됐다고 하니까 그냥 갔는데 가만 생각해보니
이 녀석이 영어를 쓰면서도 불어 액센트가 그대로 살아있어서
내 귀에 “캔아이헬퓽?” 이렇게 들렸던 것임.
괜히 웃겨서 혼자 낄낄대다가 이상한 사람 취급받았음.
중간에 디즈니샵 들러서 사촌동생 애기옷(모자 & 장갑)도 사고
추운 날씨 대비(뭐 파리에 고작 하루 더 있을 거긴 하지만) 마누라 외투도 사고
<아가타>라는 곳에서 귀고리도 사고… 은근히 좀 샀구나.
세포라 매장
(출처는 flickr.com)
표정이 닮았다며 마누라가 찍어준 사진 (디즈니샵에서)
아, 저 짝눈은 어쩔 수가 없구나.
그런데 이것저것 사들고 샹제리제 거리를 걷다보니
왠지 이 추운 날씨와 분위기가 꼭 크리스마스 선물 사러 쇼핑나온 기분 비슷.
날도 마침 흐릿한게 눈이라도 와줬으면 금상첨화였겠지만.
여기저기 돌아다니다보니 어느새 점심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2시 20분.
그러면 길을 건너가서 (루이비통이 있는 쪽) 아이쇼핑 더 하다가 적당한 식당에서 밥 먹고
노틀담성당 쪽으로 이동하기로 함.
그런데 신기한 것이 어제나 그제 같으면 이 시간쯤에 마누라가 슬슬 졸립다고 해야할 땐데
쇼핑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계신 건지 표정이 생생하기 그지없음.
뭐 잠도 푹 잤고 대충 시차 적응도 됐으니 그런가 보다…라고 생각해야되는데 별로 그런 생각 안듬.
아니 거의 3시간이 넘게 앉지도 않고 계속 돌아다녔는데
피곤한 티도 안내고 있는 모습을 단순히 그렇게만 설명할 수 있겠어?
“쇼핑의 힘”이 틀림없음.
횡단보도를 건너서 다시 개선문쪽으로 올라가기 시작하는데 슬슬 빗방울이 떨어짐.
나야 비 맞고 싸돌아다니는 거 좋아하니까 별 상관없는데
비 맞는 거 싫어하는 마누라는 짜증이 올라오기 시작.
비 맞고 돌아다니느니 후딱 밥부터 먹자! 라는 일념으로 식당 선택에 들어감.
여기저기 식당은 많은데 딱히 땡기는 곳도 없고해서
5년전에 먹었던 (이 자리는 아니지만) 홍합요리집을 선택.
이름하여 “레옹 드 브뤼셀”.
워낙 샹제리제 거리의 가게가 유명하지만 내가 5년전에 먹은 곳은 지하철 피갈 역 부근에 있었는데
피갈 역 근처의 가게가 현재 홈페이지에서 검색이 안되는 걸 봐선 없어진 것 같음.
레옹 드 브뤼셀
(출처는 flickr.com)
들어갔더니 입구에 가까운 자리를 내주길래 일단 앉아서
홍합탕하고 샐러드 하나, 로즈와인을 시켰음.
(여태 파리를 돌아다니면서 와인 한 잔 제대로 못사먹었다닛!)
꽤 오래 기다렸는데 음식이 안나오길래 마누라가 화장실에 다녀옴.
화장실 다녀온 사이에 음식이 나오기 시작.
오 생각보다 푸짐함.
여행 다니면서 처음 찍어본 음식 사진
계산하고 식당을 나온 시간이 오후 3시 15분.
이때까지도 비는 계속 (많지는 않지만) 내리고 있는 중.
어쩔 수 없이 비를 피한다는 구실로 아무 가게나 들어가서 구경하는 모드로 변신.
(가게마다 우리 우산을 받아서 잘 접어주는 서비스 하나는 좋더라. 하긴 가게 더러워질까봐 그랬겠지만)
예전에 마누라한테 생일선물로 “란셀”이라는 브랜드 가방을 사줬었는데
그 브랜드샵도 있길래 들어가봤더니
내가 사준 가방하고 똑같은 제품이 대충 비슷한 가격에 팔리고 있었음.
원래는 이 가격에 관세 붙고 이러니까 여기가 싸야 정상인데
최근에 워낙 환율이 뛰니까 어느새 비슷해진 거지.
여기서 왠 동양인 여자직원(이라지만 역시 가게주인마냥 근사하게 빼입은)이 우리한테 와서
Chinese? Korean? 이렇게 물어봄.
일본이 빠진 이유는 뭔가 꾸질꾸질해보여서? -_-;;
Korean, 이라고 했더니 대뜸 “안녕하세요~”라고 말하더라.
그게 끝.-_- (뭐냐)
더 말은 안나눠봤지만 아마 한국인이었을지도.
문제의 루이비통 도착.
마누라가 입장인원 제한을 한다며 걱정했는데 문 열어주는 덩치 큰 아저씨가 그냥 입장시켜줌.
한국사람 바글바글하더라.-_-
마누라가 왠 봐둔 가방이 있다며 여기저기 찾아다니는데
왠 아줌마 직원이 우리에게 한국인이냐고 묻더니(영어로) 2층에 가면 더 많이 있다고 친절하게 일러줌.-_-;;
친절한 건 좋은데 왜 굳이 한국인이냐고 확인까지;;;
하여튼 말도 안되는(내 입장에선) 가격표가 붙은 물건들 보면서 눈만 버리고 왔음.
샹제리제 구경 끝.
짐 보따리-쇼핑백-가 엄청 늘어나긴 했지만 일단 숙소로 돌아갈 시간이 없으므로 이대로 이동.
그대신 비가 계속 오는 관계로 종이가방은 포기하고 비닐로 된 큰 가방 위주로 물건을 정리해 담으면서 가방 갯수를 줄임.
다음 목적지는 드디어 노틀담성당~!
노틀담성당에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타고 파리 시청 역 도착.
파리시청
5년 전에는 이 앞 광장에 모래사장을 조성해놓고 비치발리볼 같은 거 하는 사람들이 있더니 지금은 무슨 공사중인지 대형천막을 쳐놓았음.
비가 아까보다 한층 더 쏟아지는 상황.
여기서 북쪽으로 가면 퐁피두센터, 남쪽으로 가면 노틀담 성당인데
퐁피두센터가 가깝긴 하지만 왔다갔다할만한 시간은 아니라는 생각에 포기.
시청만 바깥에서 구경하고 이동하려는데
동양인인지 남미쪽인지 순간 구분이 안가는 여자 셋이 우리 근처를 서성이다가
(마누라가 “우리보고 사진 찍어달래나보다”라고 이미 눈치챘음)
카메라 들고 다가와서 사진 찍어달라고 대충 짧은 영어 + 손짓.
마누라가 한 장 찍어주고 덩달아 우리도 한 장 찍어달라고 하자 걔네들도 좋다며 찍어줌.
어쩌다보니 신혼여행에서 처음 같이 찍은 사진
문제는 우리는(마누라는) 사람 얼굴 위주로 찍어줬는데
얘네는 건물 위주로 찍어줬더라는.
우리는 사진 보고 사람 쪼그맣게 나왔다고 실망했는데
얘네들은 건물이 전혀 안보인다고 실망하고 뭐 그랬을 듯.
비를 죽죽 맞으며 노틀담성당 앞 광장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4시 30분.
건물 옆에는 성당 종탑으로 올라가는 사람들이 줄을 죽 서있길래
일단 바깥쪽이랑 안쪽 구경부터 하고 올라가기로 했음.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게 실수였음-_-;;
노틀담성당 외부
노틀담성당 내부
성당 구경 잘하고 나와서
(2유로짜리 기념주화까지 샀음)
종탑 올라가는 문쪽으로 가보니 왠걸? 문이 굳게 닫혀있고 아무도 나와있는 사람이 없음.
어라? 싶다가 갑자기 생각나서 안내책자를 찾아보니
동절기에는 오후 5시 이전에 종탑 관광이 마감된다는 사실.-_-
(현재 시간은 오후 5시 20분 정도)
아까 서있던 줄이 마지막 관람객 입장하는 줄이었나 보다 ㅠㅠ
아 그런 줄 알았으면 먼저 종탑부터 보는 건데 ㅠㅠ
내가 왠만하면 이렇게 좌절하지 않는데
노틀담 종탑에 못 올라가면 박물관패스 사봤자 오히려 손해나는 꼴이잖나.
내일까지 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오늘은 이미 해 저물어가는 판국에 이걸 들고 어딜 가.
결국 5유로 손해 ㅠㅠ
쓰라린 가슴을 움켜쥐고 퐁네프다리로 이동.
비가 오는 도중이긴 한데 지하철 타러 가는 거리가 더 애매해서 그냥 걸어가기로.
공교롭게도 비는 점점 더 많이 오기 시작하고-_-
퐁네프 다리에 도착한 시간 오후 5시 40분.
퐁네프다리와 사마리텐 백화점
퐁네프다리
퐁네프다리 하나 더
이제 남은 공식적으로 일정은 저녁식사 & 세느강 유람선(바토무슈) 탑승.
그런데 마누라가 면세점에서 들러서 사달라고 부탁받은 물건이 있다며 Paris Looks를 가자고 함.
이 시간까지 쌩쌩하게 살아있는게 고마워서 무조건 Go~!
문제는 면세점에 갔는데 찾는 화장품이 없었다는 거.
생각보다 면세점이 작은 탓에 몇 분 머물지도 않고 도로 나와
시계를 보니 시간은 이제 겨우 6시를 넘어가는 중.
그때 갑자기 머리 속을 스친 생각.
퐁피두센터는 밤 9시까지 개장할텐데?
지금 퐁피두센터를 가면 못해도 한 시간 정도는 관람할 수 있고
박물관패스로 입장이 가능하니 5유로 손해가 5유로 이익으로 전환되기도 하며 <- 요게 사실 주목적.
예전에 처제가 파리 갔을 때 퐁피두센터 근처에서 맛있는 걸 먹었다는 말을 해줬기 때문에
저녁식사도 거기서 해결하면 되고... 이거 쏠쏠하다는 생각이 퍼뜩 든 것임.
바로 마누라 설득작업 시작.
다만 이 작전을 결행하는데 있어서 가장 큰 문제라면 문제는
바토무슈가 9시 출발이 막차(라고 알고있었음)이므로 이걸 타려면
퐁피두센터에 들렀다가 식사까지 마치고 8시 30~40분까지는 알마 다리로 도착해야하는
상당히 뻑뻑한 일정이 돼버림.
그러나 아직 우리에겐 2시간 넘는 여유가 있다는 점을 강조했더니
마누라 결국은 "밥"에 설득당해서 (응?)
다시 지하철 타고 파리 시청 역으로.
30분 안에 다시 탔더니 아까 타고 내린 지하철표를 다시 넣어도 통과되더만.
(이렇게 된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한번도 성공하질 못했었음)
퐁피두센터 도착한 시간이 오후 6시 35분.
퐁피두센터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니 입구에서 가방검사 및 금속탐지검사.
앞에 있던 내가 먼저 가방 보여주고 쇼핑백까지 보여주려고 하니
검사하던 대니 드 비토 닮은 아저씨가 나와 마누라를 번갈아 쳐다보며 Chinese? China? 라고 물어봄.
(나중에 물어보니 마누라는 순간적으로 잘못 들었다고)
내가 No, Korean. 하고 대답했더니
그 아저씨가 Korea? Get in. Get in. 그러면서 그냥 들어가라고 손짓.
왜?
이유는 모르지만 그 아저씨가 웃으면서 들어가라는데 가방검사 마저 하라고 버틸 필요는 없잖아.
메르시~ 해주고 들어갔음.
왼쪽 계단으로 올라가면 현대미술관이라길래 일단 그쪽으로 가서
의자에 앉아있던 아저씨한테 박물관패스 보여주고 입장.
들어가보니 건물 바깥쪽에서 보이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야 비로소 미술관 시작.
현대미술이라 뭐 아는 것도 없고…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아는 그림/작가 많았음.
그런데 루브르나 오르세와 달리 사진 찍는 사람들이 전혀 없어서
어 사진 찍으면 안되는 곳인가… 싶어 그냥 눈으로만 감상하다가
직원들이 안보이는 곳에서 아무거나 몇 장 몰래 찍었음.
그나마 유명하다면 유명한 뒤샹의 “샘”을 보고 사진 찍을 수 있어서.
몇 장 찍은 내부사진
마지막 사진이 그 유명한 뒤샹의 “샘”
생각보다 넓지는 않아서 대충 둘러보는데 한 시간이면 충분.
(꼼꼼하게 보려면 한참 더 걸리겠지만…)
시간도 없고 저녁밥도 먹어야되고 해서 그만 철수.
퐁피두센터 에스컬레이터에서
마누라가 찍어보래서 찍은 비맞은 유리창 사진
그나저나 처제가 밥먹은 곳이 퐁피두센터 1층에 있다던데
퐁피두센터 1층엔 카페테리아 하나 달랑 있고
지하에 혹시 있나? 싶어서 둘러봤는데 없는 것 같고
(아마 내부구조가 바뀐 모양)
그냥 밖에 나가서 햄버거라도 먹을까? 했더니 마누라가 그건 싫다고 해서
퐁피두센터를 나와서 지하철역으로 가는 길에 있는 이탈리안레스토랑에 들어갔음.
(왜 가는데마다 이탈리안레스토랑만 이렇게 많은 겐지…)
우리는 겁나 시간에 쫓기고 있는데 종업원들은 여유작작.
겉보기는 멀쩡한데 10유로 내외의 겁나 싼 파스타를 하나씩 시켜서 후루룩 먹어치우고
불러서 계산할 것도 없이 테이블에 돈 놔두고 뛰쳐나와서 지하철 탑승.
바토무슈 탑승하는 곳에 무사히 도착한 시간이 8시 40분.
아직도 비는 오락가락.
바토무슈 유람선
(출처는 flickr.com)
도착해보니 마지막 탑승 손님들이 이미 줄서있는 중.
다행히 안늦었다 싶어 얼른 우리도 줄을 섰는데
갑자기 마누라가 우리가 갖고있는 표(여행사에서 출발 전에 준 표)로 그냥 탑승해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며
표파는 곳에 가서 물어보겠다고 함.
그러라고 하고 나는 계속 줄 서있었는데 어느새 탑승 시작.
사람들 탑승할 동안 표파는 곳에서 뭐라고 얘기 중인 마누라만 빤히 쳐다보고 있었더니
마누라가 요상한 표정으로 돌아오면서 아니라는 손짓.
얼른 다가가서 물어보니 이건 바토무슈 타는 표가 아니라 바토파리지엥 타는 표라고.
저기 에펠탑 밑에 가서 타는 거라고 얘기해줬다고 함.
마누라 추측으로는 우리처럼 잘못 오는 사람들이 많은지
마누라가 표를 보여주자마자 뭐라고 물어보기도 전에 줄줄줄 설명을 해주더라고.
아니 이넘들(여행사)이 바토무슈 티켓이라더니 왜 엉뚱한 걸?
하며 여행사에 준 이런저런 안내지를 뒤적뒤적해보니
바토파리지엥 타는 법이라고 친절하게 설명 잘되어있었음.
우리는 여행사 홈페이지에서 “바토무슈 탑승권 포함”이라는 글귀를 본 것만 가지고
그냥 이게 바토무슈려니~ 철썩같이 믿어버리고 제대로 안 살핀 거고.
누굴 탓하겠나.
얘가 바토파리지엥 유람선
(출처는 flickr.com)
어쨌든 바토파리지엥 타러 에펠탑 밑에 가야지.
9시 막차라고 해도 아직 시간 여유가 있는 편이라 천천히 걸어가기로 했음.
지하철로 한 정거장 거리밖에 안되는 곳이기도 하고…
뭐 시간 늦어서 얘도 놓쳐버리면 유람선 못탈 팔자려니 하기로 한 거지.
바토파리지엥을 타는 곳인 이에나 다리 밑 도착한 시간이 정각 9시.
혹시 탈 수 있을까 싶어서 허둥지둥 달려가 유람선 표 파는 곳에 가서 물어보니
우리가 가지고 있는 표만 그냥 가지고 타면 된다고 하고
다음 유람선 출발은 9시 30분이라고;;
갑자기 시간 여유가 생겨서 에펠탑 바로 밑에 가서 구경이나 하기로 했음.
바로 밑에서 찍은 에펠탑 야경
대충 구경하다가 시간이 된 것 같아서 다시 탑승장으로.
유람선 타는 곳에서 왠 사진사가 묻지도 않고 막 사진을 찍어대길래 개무시하고 그냥 탑승.
나중엔 자리에 앉아있는데도 쫓아와서 막 찍어댐.
내리면 사진 보여주며 돈내라고 할 거 같긴 한데 그냥 무시하기로 하고 편하게 찍혔음.
실내에 들어와 창가에 나란히 앉았더니 지붕이 있어서 생각보다 보이는게 별로 없음.
그렇다고 나가자니 춥고 비맞고.
자리마다 안내방송이 나오는 리모컨 같은게 있는데 아무리 돌려봐도 한국말은 안나와서
(심지어 영어도 안나오는 것 같더라) 그냥 포기하고 내가 마누라한테 가이드했음.
지도 펼쳐들고 아 여기가 어디쯤이니 저건 뭐겠다…하면 대충 되긴 되더라.
좀 흔들린 탓인지 사진은 제대로 찍힌 게 없으므로 패스.
유람선 내린 시간 밤 10시 30분.
숙소로 가려니 마누라가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해서
에펠탑 근처에 가면 공중화장실이 있지 않을까 싶어 찾아가봤는데
공중화장실은 있긴 있는데 다 문을 닫았더만.
마누라가 대충 참을만하다고 해서 그냥 돌아가기로 함.
그렇게 건널목에서 신호 바뀌길 기다리고 있는데
우리 옆에 서있던 젊은 남녀가 뭘 하다가 동전을 떨어뜨리는 걸 봤음.
나는 분명히 동전 세 개가 떨어지는 걸 봤는데
얘네들은 자기가 얼마를 들고 있었는지 잘 몰랐는지 눈에 보이는 동전 두 개만 집어들고 건너가버림.
(파리 사람들은 신호 상관없이 차만 안다니면 무조건 건너감)
내가 웃으면서 마누라한테 쟤네 동전 하나 안 줏어갔다… 그랬더니
마누라가 어디? 어디? 하면서 바닥을 찾더니 바로 50센트 동전 하나 주웠음.-_-
유럽에 와서 돈도 줍고 야~
여기서 그래도 파리 마지막 밤인데
그냥 숙소로 들어가기 아쉬워서 샹제리제 거리 야경 보러 가기로 함.
(뭐 엎어지면 코닿을 거리니까)
그런데 막상 가봤더니 가로수에 전등만 잔뜩 걸어놓았지 불켜놓은 게 하나도 없더만.
시간이 밤 11시가 넘어가서 꺼버린 건지… 아직 10월이라 안켜는 건지는 모르겠음.
아무튼 좀 실망해서 개선문 야경사진만 찍고 다시 숙소로.
개선문 야경
이제 좀 시차적응했는지 마누라 쌩쌩해졌는데 벌써 내일은 돌아가는 날이네.
(오늘 내내 돌아다니면서 한번도 졸린다고 한 적이 없었으니)
숙소에 도착해서 대충 짐 정리하고 바로 취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