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건물인가?
한때 건축학도로서 내가 좋아했던 건축가들은 미스 반 데어 로에, 에로 사리넨 뭐 이런 부류들이었다. 미스는 <건축학개론> 숙제로 이 사람에 대한 리포트를 쓰다가 좋아하게된 조금은 이상한 케이스고, 에로 사리넨은 지금 소개하려는 이 건물을 보고나서 확 좋아하게 된 케이스다. 바로 뉴욕의 JFK 국제공항의 TWA터미널이다.
(미리 말해두는데 이번 글에는 다른 건물이야기와 비교했을 때 유례없이 사진을 많이 포함시킬 생각이다. 그 이유는 잠시 후에 밝히도록 하고)
공항건축에 있어서 하나의 기념비로 꼽힐만한 TWA 터미널은, 정확히 말하면 뉴욕의 존 에프 케네디 국제공항의 5번 터미널이다. (터미널이 건설되던 당시의 공항 이름은 Idlewild공항이었다. 나중에 개명) 트랜스월드항공사(Trans World Airlines)가 주로 사용하는 터미널이기에 TWA터미널로 불리며, 다시 말해 내가 뉴욕에 갈 일이 있더라도 TWA 항공을 이용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일부러 이 청사를 방문하는 수고로움을 감수해야 구경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TWA터미널을 처음 본 (멀리서 봐야겠지만) 사람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은 “금방이라도 날아오를듯한 새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막 땅에 착륙한 새와 같다는 말도 있지만 그렇게 보기엔 너무 날개를 활짝 펼치고 있는 듯 하고. 콘크리트로 지어진 이 건물은 바깥쪽만이 아니라 실내까지도 온통 유려한 곡선으로 이루어져 대단히 매력적이고 유쾌한 공간을 창출한다고 한다. (뭐뭐 한다더라,가 또 시작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새처럼 보이는 바깥 모습에 걸맞게 공항 내부의 통로에는 붉은 카펫을 깔아놓아, 마치 혈관처럼 보이는 효과도 얻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이 건축가가 의도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다만 사리넨은 생전(그는 이 건물의 완공을 보지 못하고 51세에 사망했다) TWA 터미널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TWA 터미널에서 도전한 것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Idlewild를 구성하는 종합터미널 단지 내에서 이 건물이 특색있고 기억할만한 것으로 남게 하겠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터미널 자체에서 여행의 특별함, 즉 기대에 찬 흥분과 극적인 감정을 표현해줄 수 있도록 설계하려는 것이었다. 우리는 고정되고 막힌 장소가 아닌 이동과 움직임의 공간으로서 터미널을 표현하는 건축물을 원했다. 어떤 사람들이 보고 날아갈 새처럼 보인다고 하는 것은 실제로 이러한 희망과 일치하는 것이다. 사실 그것은 우리가 의도했던 바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이 말이 누구든 그런 식으로 건물을 볼 권리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며, 혹은 늘상 비전문가들이 시각적인 경향보다 문자적인 경향이 더 크다고 해서 그들에게 그런 말로 설명해줄 권리가 없다는 뜻도 아니다.”
어떻게 지어졌나?
건물의 역사보다 건축가에 대해서 조금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에로 사리넨은 앞서 말했듯 1910년에 태어나 1961년에 51세의 나이로 사망했는데, 대체적으로 60~70대에도 왕성한 활동을 하는 건축가들이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아까운 나이에 사망했다고 할 수도 있겠다. 핀란드에서 태어났지만 어려서 미국으로 이주해 미국에서 주로 활동한 에로 사리넨은 아버지 – 엘리엘 사리넨 – 도 유명한 건축가였고, 어머니는 조각가였다. 부모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사리넨은 어려서 조각을 공부했고, 커서는 건축가가 되었다.
TWA터미널은 1956년 착공되어 사리넨이 사망한 다음해인 1962년 완공되었다. 사리넨의 또하나의 걸작인 워싱턴 덜레스 공항청사(건축가 자신은 이 건물을 더 좋아했다고 한다)도 1958년 착공되었으나 역시 사리넨의 사망 이후인 1962년에 완공되었다. 동시에 건축된 사리넨의 두 걸작 공항청사는 서로 다른 모습이지만 비행에 대한 개념 탐구와 콘크리트와 강선을 이용한 독창적인 구조, 청사 내 동선에 대한 색다른 아이디어 등 공통점이 많은 건물이기도 하다.
이쯤에서 내가 왜 이렇게 많은 사진을 포함시켜가며 이 건물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하는지를 설명해야겠다. 이 건물의 주인이라고도 할 수 있는 TWA항공사는 2001년 아메리칸항공사(AAL)에 인수합병되었고, 바로 그 직후부터 이 건물은 공항청사로서 기능이 없어지고 폐쇄되고 말았다. 바로 그 무렵 새롭게 떠오른 저가항공사인 JetBlue가 TWA터미널(5번) 다음 터미널인 6번 터미널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자신들의 터미널을 확장할 계획을 세우면서 놀고있는 5번 터미널과 6번 터미널을 합치기로 한 것이었다.
아쉽게도 향후 확장성 같은 것에는 별 관심없이 지어진 독창적인 건물인 탓에, TWA 터미널의 일부만 수리하는 정도로 확장공사가 끝날 상황은 아니었다. 2001년 TWA가 인수합병되자 TWA터미널을 “없어질 위험이 큰 이 시대의 문화유산”으로 등록하는 등 이 건물을 살리려고 애를 썼던 여러 단체들도, 결국 JetBlue – 뉴욕항만관리위원회와 메인홀과 통로를 살리는 등 건물의 많은 부분을 보존하는 정도에서 확장공사에 원칙적인 합의를 해야했다. 그러나, TWA 터미널의 상징과도 같은 날개는 아마도 보존되지 못할 것이다. 철거 및 확장공사는 이미 2005년 여름에 시작되어, 2008년이면 새로운 터미널이 개장될 예정이라고 한다.
시대의 한마디
어설픈 건축쟁이 노릇을 하면서 한 가지 자랑스러웠던 것이, 나름 유명한 건축물을 볼 때 생판 모르는 사람보다 뭔갈 알고 볼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별로 나가보지도 못한 해외지만 여행할 때마다 유명건축물을 일부러라도 챙겨보는 건, 제대로 건축쟁이가 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려는 목적도 있었지만 그래도 사진으로나 보던 건물을 가서 직접 보면 어설프게나마 배운 지식을 바탕으로 뭔가 새로운 걸 하나라도 더 보고 올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내가 정말 좋아했던 건물 중 하나를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는 기회는 이제 영영 없어질지도 모른다.
역동적인 곡선이 아름답네요. 살짝 바르셀로나의 가우디 건축물이 연상됩니다. ^^
큐벨레이 닮았네요.
오, 그런 생각은 한번도 못해봤는데. 정말 닮았군요.
시대가 썼습니다.
사아리넨의 건축물이군요. 핀란드출신의 미국건축가지요. 핀란드의 국민성이 우리나라와 흡사하다고 들었는데, 핀란드에도 우리나라처럼 비조문화가 있었나? 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2008년에 공사 끝내고 새로 개장했다던데 내부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지붕은 그대로라고 하는군요. 뉴욕에 가신다면 보실 수 있을 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