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라 모스라 메카고지라 동경SOS] 고지라의 추억

국민학교(아직 초등학교란 말이 입에 잘 붙질 않아서)에 다니던 시절, <소년중앙>이라는 잡지의 애독자였던 우리 형제는 간혹 “애독자엽서”라고 잡지 속에 끼워져있는 조그만 종이쪽을 뜯어내 이런저런 건의사항도 적고 무슨 만화/기사가 제일 재밌었다고도 적어서 소년중앙 편집국으로 보내곤 했었다. 그렇게 엽서를 보내준 애독자들 중 추첨을 해서 푸짐한 상품을 준다고 했기에, 뭐 밑져야 본전 아니었겠나.

내 기억으로는 그 애독자 엽서, 딱 두 번 당첨됐었다. 첫번째로 받았던 선물은 지금은 뭐라고 불러야할지 이름조차 막막한, 알파벳으로 된 이름을 찍어서 스티커처럼 붙이는 그저그런 장난감이었다. 당시 선물은 지방은 우편으로 보내주지만 서울에 사는 어린이들은 직접 중앙일보사로 와서 찾아가라고 안내하고 있었는데, 중앙일보사가 어디에 붙어있는지도 모르는 우리 형제를 대신해서 아버지가 직접 중앙일보사에 가서 이 선물을 받아오셨더랬다. (아이가 아닌 어른이 직접 찾아와서 달랑 장난감 하나만 주기 뭣했는지 물감 같은 기타 선물들을 몇 개 더 받아오셨더랬다) 두번째로 받았던 선물은 우리 형제가 상당히 갖고 싶어했던 미니칼라백과 전집이었다. 로봇대백과, 괴수공룡대백과, 요술대백과, 축구대백과, UFO대백과, 세계의 미스테리 대백과, 종이공작대백과 등등 (지금 생각해보면 일본에서 나온 형식을 고대로 베껴온 것이 틀림없을) 애들이 좋아할만한 장르를 두루 섭렵하고 있던 이 미니백과전집은, 누구였는지 (심지어는 형 친구였는지 내 친구였는지) 기억은 정확하지 않지만 하여튼 남의 집에 놀러갔다가 한 번 보고나서 부모님께 사달라고는 못하고 (쓸데없이 비싸보여서) 갖고는 싶어했던 그런 물품이었는데, 덜컥 애독자 경품에 당첨돼준 것이었다.

이번에는 니들끼리 찾아가보라는 아버지의 권유(?)로 형과 나는 경품을 받으러 씩씩하게 서울 한복판에 있는 중앙일보사로 향했다. 아직 서울에도 지하철 2호선이 개통되기 전이라 아버지가 몇 번 버스를 타고 어디어디서 내리라고 얘기해주셨을텐데 다 까먹었다. 지금 기억나는 건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렇게 까마득하게 높은 빌딩을 봤다는 것. 아마도 신림동 촌놈 꼬마들이 목이 부러져라 그 고층빌딩들을 쳐다봤을 게다. 어떻게 어떻게 중앙일보사로 들어가서 소년중앙 편집국을 찾아가서 우리가 당첨된 선물을 달라고 했더니 직원 아저씨가 이상한 좁은 창고로 데려가서 우리에게 줄 미니백과를 한권 한권 꺼내 15권씩 두 묶음으로 나눠서 노끈으로 묶어준 것까지는 비교적 자세히 기억하는 편이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 한 권 한 권 확인해보니, 개인적으로 보고 싶었던 <괴수대백과>를 비롯한 몇 권이 빠져있었다. (사실 직원 아저씨가 몇몇 권은 없을 거라고 미리 얘기해줬다. 요즘 같으면야 그런게 어딨냐고 발라당 드러누웠겠지만 그때는 고층빌딩에 쫄아버린 국민학생이었으니) 하지만 <괴수대백과> 대신 <우주전쟁대백과>에 엉뚱하게도 고지라, 가메라, 킹기도라 같은 유명괴수들이 조금씩 소개되어있어서 그나마 위로가 좀 되었다고 할까.

고지라 이야기를 해야되는데 고지라는 시작도 못하고 쓸데없는 말만 길어진 것 같은데… 하여튼 어렸을 때부터 나처럼 그런 미니백과류를 많이 접해본 사람이라면 “고지라”라는 존재가 많이 낯설지 않을 거다. 그렇지만 한국과 일본의 관계라는 것이 애매해서, 내가 한때는 (지금은 아니다) 고지라를 비롯해 일본에서 나온 괴수영화(소위 특촬물)의 괴수들을 줄줄이 꿰고 그 특징이 뭐다 뭐다 한참을 떠들 수 있었지만, 정작 그 원본(영화건 TV시리즈건)을 본 것은 하나도 없었던 거다. 세상이 좋아지면서(?) 우리나라에 정식 수입되지 않은 영화들도 P2P 같은 경로를 통해 구해볼 수 있는 시대가 되었지만 원본 고지라 같은 건 P2P 내에서도 희귀자료에 속하는 물건이었고… (헐리웃에서 만든 <고질라> 리메이크판은 워낙 평도 안좋고 해서 제대로 보지도 않았다) 그렇다보니 자연스럽게 고지라 류의 괴수영화/특촬물은 그냥 어렸을 때의 기억에 불과할 뿐으로 조금씩 잊혀져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우연찮은 경로를 통해 일본에서는 최근까지도 고지라의 신 버전이 계속 개봉되고 있다는 점을 알고 말았다. (그 우연찮은 경로도 설명하려면 무지 길어지니 생략하자) 옛날 고지라는 몰라도 요즘 고지라는 구해볼 수 있을 거란 기대감으로 P2P를 뒤져보니 역시, 있었다. 비록 금방 다운받을 정도로 소스가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볼 수 있다는 게 어딘가.

그렇게 구해본 작품이 <고지라 x 모스라 x 메카고지라 동경SOS>다. 원작 <고지라>가 1954년에 나오고 숱한 후속작이 나왔는데, 이 작품은 첫번째 고지라의 두번째 개체가 40여년만에 다시 나타났다가 자위대가 새로 개발한 3식기룡(일명 메카고지라)과 싸우다가 달아난다는 내용의 2002년작 <고지라 대 메카고지라>의 후속편이 되겠다. (이 내용을 모르면 영화 보다가 조금씩 핀트가 안맞기 때문에…) 그럼 왜 원작도 아닌 전편도 아닌 후편을 제일 처음 보는 고지라 영화로 골랐느냐. 특별한 이유가 있다기 보단 앞서 말했던 우연찮은 경로를 통해 접한 영화가 바로 이 <고지라 x 모스라 x 메카고지라 동경 SOS>였기 때문에 그냥 이 영화를 고른 것이었다. 뭐, 굳이 덧붙이자면 그 이름도 유명한 레이싱걸 출신 모델 요시오카 미호가 주연급으로 나온다는 소리도 들었고.


얘가 바로 요시오카 미호

영화 파일만 구해놓고 한글자막이 안나와서 또 한참을 기다렸다가 마침내 영화를 본 소감. 우와!도 아니었고 어휴!도 아니었다. 역시!도 아니었고 애걔!도 아니었다. 오래전 “지구를 지켜주는” 고지라를 무찌르기 위해 “지구를 침략하려는” 외계인이 만든 메카고지라가 등장하는 영화 이야기를 미니백과에서 본 적이 있어서 그 정반대의 상황이 펼쳐지는 이 영화가 조금 이질적으로 느껴졌던 것만 제외하면, 그럭저럭 괜찮게 볼 수 있는 영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밖에 말 못하겠다. CG 수준은, <쥐라기공원>을 보다가 <용가리>를 보고 제대로 덴 경험이 있다보니 (사실 용가리 정도면 그리 나쁜 CG는 아니다) 기대 수준이 낮아서 그랬나 특별히 눈에 덜차는 것도 없었다. 솔직히 말해서 일본 특촬물 정도의 수준이면 돈 수 억 때려박는 헐리웃 정도까지는 아닐지 몰라도 상당하기도 하고.

분명한 것은, 앞으로 (<파이널 워즈>가 마지막 고지라 영화라고 선언하고 있지만 별로 믿는 사람 없으니) 고지라 영화가 또 나온다면, 그리고 아직 보지 못한 고지라 영화를 또 P2P에서 찾을 수 있다면, 열성적으로…라고는 자신할 수 없지만 찾아서 틈틈이 볼 것 같다는 거다. 아무리 샤쿠 유미코나 요시오카 미호처럼 얼굴하고 몸매는 되는데 대사는 국어책 읽는 애들이 주연급으로 계속 나온다고 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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