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이슈반슈타인 성] 동화 속의 성



어떤 건물인가?

어렸을 때 즐겨보던 TV프로그램 <디즈니랜드>에서, 피터 팬에 등장하는 요정 팅커벨이 휘리릭 날아와서 불꽃놀이를 시작할 때 배경으로 등장하는 성이 하나 있었다. 디즈니랜드 성, 신데렐라 성 등으로 일컬어지는 그 성의 모델이 된 것이 바로 노이슈반슈타인(Neuschwanstein)성이다.

이 성은 독일 바이에른 주의 퓌센이라는 곳 동쪽에 위치한 것으로, 바이에른의 왕이었던 루드비히 2세가 건설했다. 지배적인 양식은 13세기 독일의 로마네스크 양식이지만 다양한 양식으로 해석될 수 있는 건물로, 특히나 원뿔형 지붕이 덮인 불규칙한 형태의 높은 탑들이 우리들의 머리 속을 지배하고 있는 “전형적인 유럽의 고성” 이미지를 짙게 뿜어내고 있다.

“노이슈반슈타인”이라는 이름은 “새로운 백조의 성”이라는 뜻으로, 작곡가 바그너의 최대 후원자였고 그의 오페라 로엔그린, 니벨룽겐의 반지 등 영웅들의 서사시를 좋아했던 루드비히 2세의 취향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기도 하다. (영웅적인 기사 로엔그린의 별명이 “백조의 기사”다) 성의 모습도, 세세한 장식에서도 백조의 이미지를 연상할 수 있다고 한다. 바그너의 오페라 등장인물이 나오는 그림, 배경그림 등이 성의 거실에 수도 없이 걸려있고, 침실에는 역시 바그너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한 장면이 걸려있다고 한다.

흰 색 위주의 대리석으로 장식된 외벽이 전체적인 성의 느낌을 밝게 해주는데다, 비대칭적인 원추형 푸른 지붕도 마치 누군가의 장난거리처럼 느껴지는 것이 이 성의 동화같은 이미지를 결정한 것이 아닌가 싶다. 무엇보다도 이 성이 산 중턱에 우뚝 서있는 모습은 마치 자기 스스로 아름다운 성이라고 뽐내기 위해 자리잡은 것 같기도 하다. 특이한 것은 이 성의 삼면이 각각 다른 호수에 비쳐지기 때문에 호수에 비친 성의 모습도 삼면이 제각각이라는 사실이다.
성의 뒤편에는 계곡을 연결하는 ‘마리엔브룩’이라는 다리가 있는데, 이 다리에서 성을 바라보면 우리가 흔히 사진에서 볼 수 있는 ‘그 그림’이 나온다고 한다. (혹여 관광하러 가게 되면 꼭 가보라는 말이다) 다리의 이름은 루드비히 2세의 어머니 이름을 땄다고 한다.

어떻게 지어졌나?

노이슈반슈타인 성에 대해서 특이점으로 꼽을만한 것은, 대부분의 궁궐/성들이 (특히나 웅장하게) 지어지는 이유는 왕의 권력, 힘, 부를 과시하고 상징하기 위한 목적인 데 반해 이 성은 순전히 당시 왕인 루드비히 2세와 그의 측근들을 위한 별장용으로 지어졌다는 점이랄 수 있다.

바이에른왕 막시밀리안 2세의 뒤를 이어 왕이 된 루드비히 2세는 당시 나이 18세에 불과했다. 정규교육은 전혀 받지 않은 채 왕이 된 루드비히 2세는 정치적인 재능도 성향도 발휘하지 않고 정부 대신들과 마찰만 일으키고 역으로 점점 현실에서 도피하려고만 하기 시작했다. 신화와 전설 같은 세상에 심취해버린 루드비히 2세는 예전 부왕이 사두었던 슈방가유 성터에 노이슈반슈타인 성을 짓기로 결정했다. 그 당시 유명한 오페라 작곡가 바그너에게 보낸 그의 편지에는 바그너의 오페라에 나오는 영웅들이 실제로 존재할 듯한 성을 짓겠다는 마음이 담겨있었다.

1869년 공사가 시작되었을 때 설계는 뮌헨 궁전극장 디자이너였던 크리스티안 얀크가 초안을 맡았고 에두아르드 리델이 뒤를 이었다. 리델이 공사 책임을 맡은 것은 1872년까지이고, 그 뒤에도 건축가 2명이 추가로 더 투입되었으나 1886년 루드비히 2세가 사망하면서 재정적인 문제로 공사가 중단되고 말았다. 1880년 당시 추산해본 결과 성의 완공은 1893년 정도로 예상되었고 경비도 매년 90만 마르크 가량이 필요했다는데, 루드비히 2세는 그때 이미 두 개의 다른 성을 추가로 짓고 있을 때였다. 다행인 것은 루드비히 2세가 건축비용을 왕실비용에서만 썼을 뿐 추가세금을 걷거나 공금을 빼돌리지 않았다는 점 정도. 그래서 시민들은 왕을 괴짜 정도로 여겼지 폭군으로 간주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다만 정부에서는 이러한 왕의 행동을 탐탁치 않게 여겨 정신감정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왕을 심하게 견제하였고, 결국 60세의 왕의 삼촌을 섭정으로 임명하며 왕을 압박했다. 루드비히 2세는 결국 왕위에서 물러났고, 사흘 뒤 슈타른베르크 호수에 빠져죽은 시체로 발견되었다. (자살인지 타살인지는 알 수 없다) 17년에 걸쳐 지어진 이 성에 루드비히 2세가 거주한 시간은 고작 102일에 불과했다고 한다.

시대의 한마디

왕자 나오고 공주 나오는 동화책에 정신세계를 온통 사로잡혔던 어린 시절, 나도 모르게 한 번 살아보고 싶다고 꿈꾸며 그려보던 성의 이미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이 노이슈반슈타인 성이라고 한다. (개인적인 생각에도 맞는 것 같다) 대입이니 취직이니 분유값이니 하는 현실적인 문제에도 전혀 직면하지 않던 시절에 동화처럼 꿈꾸던 세상이 형상화된 곳이라고 하면 좀 어울릴라나. 하여튼 치열하게 현실을 사는 사람들도 예전의 동화 속 꿈을 잊지 못해 이런 성을 관광하러 찾아오곤 하는 것일테니. 문제는 바로 이 성을 건축한 루드비히 2세라는 양반도 자신이 속한 치열한 현실을 부정하고 이런 성을 지어 그 속에 들어앉아 전설 속의 꿈만 좇다가 그렇게 죽어버렸다는 거다. 짜증나지만 간혹 현실은 직시해줄 필요가 있다.



You may also like...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는 스팸을 줄이는 아키스밋을 사용합니다. 댓글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알아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