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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아더스] 공존의 이유(?)

2002년 2월 5일

<식스센스> 얘기를 할 때도 얘기했지만 나는 반전이 기가 막힌 영화를 좋아하는 편이다. 좀 심하게 말해서, 반전밖에 볼 게 없더라! 이런 평을 듣는 영화(객관적으로 좋은 평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도 재밌었다고 말하니까. 최소한 “반전”을 노리는 영화들은 영화 내내 감독과 관객이 머리싸움을 벌여야 하는데, 남들은 극장에서 골아픈 거 싫어한다지만 나는 약간 변태스러워서인지 몰라도 그런 거 좋아한다. (물론, 러닝타임 내내 열라게 머리싸움 해놓고 막판에 감독도 ‘내는 모른다~’ 해버리는 <텔미썸딩> 같은 씹탱구리 영화들은 당연히 싫어한다)

<디 아더스>라는 영화가 세간의, 그리고 나의 주목을 받은 이유도 오직 하나 “<식스센스>에 버금가는 반전”이라는 입소문 때문이었다. 뭐 버금가는지 넘어가는지 그거는 알 바 아니고, 아뭏든 탁월한 비교마케팅과 핵심을 찌르는 선전문구에 혹하는 바람에 벼르고 별러서 내가 올해 극장에서 본 첫 영화는 <디 아더스>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많이 유감스럽게도, 극장 화장실에서 “중간쯤 되니까 다 알겠더라!”라고 투덜거리던 사람들만 보더라도 이 영화의 반전은 선전에 비해서 그렇게 충격적이지 못했다. 의도적이던 의도적이지 않던 <식스센스>와의 비교가 홍보 과정에서 자주 들먹여지면서, 나름대로 영화 보기 전에 머리 쨍쨍하게 굴려온 이런 저런 사람들이 그 결말을 예측하기는 정말 어렵지 않았으리라 생각된다. (이 말 듣고 지금 머리 굴리는 아직 영화 안본 사람… 그러지마라) 게다가 <식스센스>에서 쇼크먹은 사람들은 어떻게 저런 결말이 나올 수 있었는지가 궁금해서 영화를 다시 보게 된다던데, <디 아더스>는 반전부분의 내용을 알아버리면 재미가 뚝 떨어지는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에 만약 이런저런 입소문이나 쓸데없는 추측으로 반전부분을 미리 알고 영화를 본 사람이었다면 이 영화는 정말 지루하고 짜증나는 내용이었으리라.
(그래서 특별히 반전부분을 밝히지 않는다. 평소 성질대로라면 다 말해버리고 말테지만)

그런 의미에서 다른 얘기를 해보자. <디 아더스>에서 말하고자 하는 내용은 결국 “타인의 존재에 비춰보는 자아의 발견” 정도가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써놓고나니 상당히 괜찮게 들린다. 그런 의도로 한 말은 아니었는데) “집안에 있는 유령의 존재”를 굳이 들먹이지 않아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세계에 갇혀 자신의 정체성을 올바르게 판단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임을 비추어 볼 때, “유령”이라는 극적 요소를 끌어들여 제법 무거운 주제를 효과적으로 풀어내려고 한 감독의 시도는 훌륭하다.

말이 좀 이상한 것 같지 않은가…? 시도는 훌륭하다, 라니… 거렇다. 나는 감독의 시도가 성공하지 못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이 영화가 근본적으로 지향하는 점은 “공포영화”라는 점을 차치하고도 말이다. 극중 주인공인 니콜 키드만이 집안에 있는 “다른 존재들”(The Others)과 자신과의 관계를 깨닫는 순간, 당연한 순서는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들과 공존하는 것이었다. 나는 영화 서두에 나타난 하인들의 역할도 니콜 키드만에게 그것을 알려주기 위해서라고 생각했고, 그것만이 이 영화가 “정치적으로 공정한” 영화로 결말지어지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런데 젠장, 극중 주인공인 니콜 키드만은 자신과 함께 살아야할 운명의 “다른 존재들”(The Others)을 부정하고 집에서 몰아내버린다. (뭐… 물리적으로 내쫓아버린 것은 아니었지만도) 그리고 자식들을 끌어안고 “앞으로도 여기서 살겠다”는 식의 대사를 읊조림으로써 앞으로도 “다른 존재들”과의 공존은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지도 보여준다. 단순한 공포물에 너무 큰 것을 기대했다는 생각도 없지 않아 들지만, 니콜 키드만이 자신과 타인의 존재를 인정하고 공존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결말이 그렇게 턱없고 비흥행적이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결말을 말하지 않으려니 설명이 곤궁해지고 글도 예상보다 짧아지긴 했는데 (이미 거의 말해버린 것 같긴 하지만) 이런 결말에는 선과 악에 대한 어떤 지독한 선입견, 즉 내 공간에 침입한 다른 존재에 대한 부정적이고 배타적인 관점이 강하게 개입된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어, 솔직히 찜찜하다.

끝으로 하나만 더. <디 아더스>를 보며 제일 찜찜했던 사실 하나. 남편은 도대체 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