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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손 주택] 깡통모양의 주택

2002년 10월 16일



어떤 건물인가?

대학교 신입생 시절, 건축도학이란 과목을 수강하면서 가졌던 재미 중의 하나는 “희한하게 생긴 건물을 구경하는 것”이었다. 물론 결과적으로 “아 씨 뭐 이따위로 생겨먹은 건물이 다 있어”라며 펜을 던져버리기 일쑤인 모양새들이었지만, 일단 꿈이 짱짱하던 시절에 색다른 건물을 접한다는 것 자체는 나름대로 재미가 있었더랬다.
그러한 건물들 중에 우리 동기들이 이빨깨나 갈아붙였던 건물이 하나 있었으니, 모양은 평범한 직육면체였으나 사방에 칼집(?)이 나서 묘한 홈을 파고 있었고, 그 홈의 끝에는 조그맣게 삐죽 튀어나온 반원통형 물받이대가 존재하여 베껴그려야하는 사람의 심기를 무척 불편하게 했었더랬다. 복잡하게 가로지른 벽면의 무늬나 2층에서 길게 뻗은 구름다리(?)는 차라리 귀엽게 보일 정도였으니.
나중에 친구들의 입을 통해 듣게된 그 건물의 이름은 <산 비탈 주택>(우리말 산비탈이 아니고 San Vitale이다)이었고 설계자의 이름은 “마리오 보타”였다. 그후 마리오 보타의 작품집을 보니 건물들이 한결같이 그따위(?)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쉽게 말해서 세상 어디다 갖다놔도 마리오 보타가 설계한 건물은 찾아내겠다, 싶을 정도로 이 사람은 자기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갖고 있더라는 말이다.

본론은 안들어가고 씰데없는 소리만 늘어놓은 점 별로 죄송하지 않다. 옆에 있는 사진을 보고 “어, 저게 주택이야? 상가 건물도 아니고 주택이야?”라며 경악 내지는 충격을 먹었으리라 생각되는 여러분들께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는 말을 좀 길게 한 것이다. 일단 주택으로는 이례적인 원통형부터가 그렇고, 그나마 원통형조차 엄청난 칼집(?)을 내고 일부를 들어내는 등 훼손(?)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전위적인 조각가가 만든 조형물이라면 모를까 이게 사람이 사는 집이라는 점에 거부감깨나 들 거라는 점 충분히 이해가 간다. (나도 여기서 과연 실제로 사람이 사는지 마는지는 확인 몬해봤다)
로손 주택의 특징은 단순히 원통형이라는 건물 외관만이 아니라, 지붕을 둘로 갈라서 빛을 지하(사실은 1층)까지 끌어들이는 기법이라거나 원통형의 외관과는 달리 내부를 유기적이면서 독립적으로 적절하게 분할한 점 등을 얘기할 수 있으나, 일단 따다만 통조림 같은 외형만으로도 충분히 눈은 즐거울 수 있으리라.

어떻게 지어졌나?

여기저기 알아보았으나 마리오 보타가 무슨 꿍꿍이로 이 건물을 설계하고 지었는지 알아내는데 실패하였다. 다만 로손주택이 지어진 년도가 1987~1989년, 소재하고 있는 곳은 스위스의 로손이라는 곳이다… 정도다. 쉽게 말하면 로손주택(비안다주택이라고도 한다만)이 마리오 보타의 숱한 작품들 중에서 대표작 축에 들 정도의 좋은 작품은 아니다,는 말이 되겠다. 보타의 대표작이라면 보통 샌프란시스코 근대미술관이나 로툰다 주택(이놈도 원통형이다) 같은 것들을 들먹일 수는 있어도 로손 주택은 거론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로손 주택을 여기다 소개한 이유는, 보타의 작품들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맘에 드는 모양새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불만들 있는감?

시대의 한마디?

2003년 준공을 목표로 하고 있는 교보강남타워는 바로 마리오 보타가 기초설계한 건물이다. 짓고있는 현장을 가봤다거나 뭐 그런 건 아니지만, 우연찮게 이 건물의 홈페이지를 통해 건물의 조감도를 보게 되었다. 음… 욕나왔다. 보타가 설계한 숱한 작품들을 죽 봐왔지만 이 건물은 보타의 냄새가 (나긴 난다만) 별로 나지 않았다. 너무 고층건물이라 그런 건지도 모르지만… 그리고 실제로 완공된 건물은 또 다를지도 모르지만… 암튼 지금은 그렇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