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사이유 궁전] 화려한 왕권의 상징



어떤 건물인가?

“베르사이유의 장미”라는 만화 때문에 왠지 어렸을 때부터 귀에 익은 이름인 베르사이유 궁전은 정확히 1623년부터 1789년까지 프랑스의 국왕의 거처(궁전)였던 건물이다. 한가지 알아둘 점은 경복궁은 한양(서울)에 있지만 베르사이유 궁전은 파리에 있지 않고 파리 외곽 서남쪽으로 20km정도 떨어진 베르사이유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베르사이유 궁전의 역사적 의미라면, 태양왕 루이 14세의 궁전으로 건설되었던 것처럼 시대의 중심이 “신”에서 “왕”으로, 즉 교회-신권의 비중이 떨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편적인 예라는 점을 들 수 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라에서 큰 돈을 들여 짓는 건물은 거의 교회, 성당이었는데, 루이 14세가 자신의 궁전에 수많은 인력과 돈을 투입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교회의 힘이 약해졌고 루이 14세도 왕권의 강화를 위해 노력했다는 점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이곳은 프랑스대혁명의 한 무대를 장식하기까지하여, 신-왕-서민으로 이어지는 권력의 이동을 조용히 지켜본 역사적 장소가 되었다. 그것도 모자라 1783년 미국 독립전쟁후 미국과 프랑스가 맺은 조약, 1871년 독일제국선언, 1919년 제1차대전후 평화조약 체결 등이 베르사이유 궁전의 “거울의 방”에서 이뤄졌었다.

궁전 자체도 예술적이지만 조경을 전공하는 사람들에게 베르사이유 궁전의 정원(후원)은 꼭 한번 가볼만한 곳으로 꼽힌다. 노트르(Andre Le Notre)가 설계한 이 후원은 태양왕을 상징하는 방사선도로로 꾸며져있으며, 총 길이가 1km나 되는 (이게 정원이냐…?) 엄청난 크기를 자랑하기도 한다. 정원에 대해서도 한참 떠들 수 있고 실제 베르사이유 궁전 관광도 정원 중심으로 이루어진다고 하지만, 여기는 건물 이야기를 하는 곳이니 정원 이야기는 “대단하다”는 것만 강조해두고 넘어가기로 하자.

건축사적인 의미에서 본다면 역시 바로크건축의 대표작 중 하나인데, 당시의 바로크 건축은 쉽게 말해서 요즘의 포스트모더니즘과 비견할 정도로 파격적인 양식이었다. (바로크란 말의 의미가 이상하다, 낯설다 뭐 그런 뜻이란다) 베르사이유 궁전은 크게 3개로 나누어져있으며, 궁전을 일일이 둘러보려면 하루이틀로 모자란다고 할 정도로 큰 규모지만, 대개 “거울의 방”은 꼭 봐야할 곳으로 꼽고있다. 400여장의 거울과 대리석, 샹들리에(샨데리아가 아니다)로 만들어진 거울의 방은 베르사이유 궁전을 대표하는 방으로 잘 알려져있고, 그 외에도 왕의 방, 왕비의 방, 전쟁의 방, 왕실예배당 등과 로마신화에 나오는 신들의 이름이 붙은 방들이 각각 있다.
그 밖에도 대트리아농(Grand Trianon)과 소트리아농(Petit Trianon)으로 불리는 작은 궁 두개가 더 있는데, 대트리아농은 루이 14세가 은거용으로 지은 별장이며 현재는 영빈관으로 활용되고 있고, 소트리아농은 루이 15세가 자신의 애인(…몰래한 사랑?)을 위해 지은 건물인데 후에 마리 앙트와네트 왕비의 별궁이 되었다.
아, 참고로 정문으로 들어가면 말타고 폼잡고 있는 동상을 하나 볼 수 있는데, 루이 14세의 기마상이 되겠다.

어떻게 지어졌나?

앞서도 말했지만, 태양왕 루이 14세가 한번 폼나게 살아보고 싶어서 여러사람 귀찮게 하며 지은 건물이 되겠다. 처음에는 자신이 주로 사냥을 즐기던 곳에 있는 작은 별장에 정원(지금의 후원)을 설계하는 것으로 시작되어, 루이 르 보(Luis Le Vau)가 1661년에서 1665년까지 르메르시에가 세운 기본건물을 증축하였다. 그 뒤 1676년부터 1688년 사이에 아르두엥 망사르(Jules Hardouin Mansart)가 대확장공사를 실시하여 남북으로 계속되는 거대한 익부를 건축하였는데, 원래 서쪽 테라스였던 부분을 “거울의 방”으로 만들어놓은 것이 이 증축때였다. 마지막 증축은 1756년에서 1764년 사이에 가브리엘이 맡았는데, 북쪽 끝부분에 오페라극장(궁정극장)을 세우는 것이 목표였다.

원래 이 지역은 늪지대였으나 그걸 메꾸고 집터를 잡았으며, 정원의 분수를 위해 강물의 물줄기까지 돌려놓을 정도로 사람-돈을 쏟아부은 건물이기도 하다. 공사 기간 중 루이 14세는 공사현장 순찰을 자신의 주요일과로 삼을 정도로 관심이 많았는데, (관심인가 간섭인가) 결과적으로 이때의 무리가 루이 16세 시절 프랑스혁명으로 터져나왔다고 봐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시대의 한마디?

요즘 드라마 “명성황후”가 인기인데, 갑자기 “경복궁타령”이 생각나누만… 그런데 프랑스의 루브르궁전이나 베르사이유궁전 등은 미술관이나 박물관 등 다른 용도로 훌륭히 역할을 해내는데, 우리나라 궁전들은 왜 드라마 촬영장소 정도의 역할밖에 해내지 못하는가 모르겠다. 문화재로서 그냥 관리만 하는 것보다, 박물관처럼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이 정녕 없단 말인가? 뭐, 창경원? 너 죽고잡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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