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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시절] 부반장 / 대학입학학력고사

1997년 12월 20일

나는 고등학교 3년 내내 부반장이었다. 적어도 우리 기수에서는 내가 유일한 3년 연속 부반장이었다. 1학년 때는 형이 학생회장이고 하니까 내가 반장을 하기는 좀 그렇고 부반장이나 해라 이런 식으로 지명을 받았다. 2학년 때는 투표를 했는데 반장은 임시 반장을 맡았던 녀석이 일찌감치 앞서갔고 나하고 지금 서울대 대학원에 있는 친구 놈하고 열 몇표를 놓고 피터지게 싸운 끝에 내가 한 표차로 이겼다. 3학년 때는 더욱 극적이었다. 4명이 후보로 나왔는데 투표 결과 16표, 15표, 14표, 13표로 4명이 주르륵 줄을 서버렸던 것이다. 고민하던 선생님은 꼴찌를 지우고 2차 투표를 결심하셨다. 나는 당시 14표로 3등이었는데 선생님이 내 이름까지 지우고 두 명으로 결선 투표를 하지 않으신 이유는 송구하옵게도 나를 반장으로 밀고 싶으셨던 것 같다. 내가 잘났다기보단 형이 워낙 빵빵했으니까. 하여튼 결선 투표 결과 나는 극적인 막판 뒤집기(솔직히 나는 별로 하고싶지도 않았는데)로 반장이 된 녀석을 한 표차로 추격했지만 결국 부반장에 그쳤던 것이다. 참고로 말하면 당시 나는 183cm에 70kg정도였고 반장이 된 녀석은 155cm에 38kg가 나가는 녀석이라 둘이 같이 다니면 참 볼만한 꼴이었었다.

남들 다 고생한다는 고3 시절을 나처럼 편하게 보낸 사람도 드물 것이다. 성적은 뚝뚝 떨어졌지만 전혀 상관하지 않고 탱탱 놀았으니까. 얼마나 태평했느냐 하면 대개 집마다 수험생이 귀가하면 식구들이 기분을 맞춰주려고 조심스러운데 우리집은 내가 귀가해서 식구들 기분을 띄워줘야 했다. 어쨌든 다섯 번의 배치고사 결과 나는 평균 210점 정도의 학력고사 점수가 예상되고 있었다. 하지만 마지막 배치고사는 앞의 네 번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높은 점수였다. 늘 그랬지만 막판 뒤집기였다고나 할까. 원서를 쓰게 되자 선생님은 평균 점수를 고집하셨고 나는 최고 점수를 고집했다. 게다가 1번이었던 나는 1번이 무너지면 뒷번호 학생들이 모조리 무너지게 된다는 학우들의 응원까지 받고 있었으니 선생님의 온갖 협박과 회유에도 요지부동이었다. 결국 나는 커다란 수험정보지에서 내 최고점수를 따라 수평선을 그어 학비가 싼 서울시립대학교 건축공학과를 골라 선생님의 항복을 받아냈다. 평균 점수보다 40점이 높은 과였는데도 결과는 수학 주관식을 찍어서 맞추는 놀라운 실력을 발휘한 (당시 문제 : ~의 교차점 개수를 구하시오. 답 : 3개. 배점 : 4점) 끝에 합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