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추억] 범인을 잡아라

언제나 그래왔듯이, 대박나는 영화라고 주위에서 우왕좌왕 떠들어대던 <살인의 추억>은 내 관심밖에 있었다. 사방팔방에서 입에 침이 튀다못해 바짝 마를 정도로 격찬이 쏟아지는 이 영화에 대한 당시 내 심경을 솔직하게 표현하자면, 송강호 연기 잘하는 거 하루이틀 얘긴가? 범인 못잡는다는 결말 다 알잖아? 스펙타클한 화면빨로 승부하는 영화도 아닌데 비디오나 TV로 보면 안되남? 뭐 대충 이런 정도였다.

왜 저 얘기를 하느냐 하면, 중간에 있는 “결말 다 알잖아?”에서부터 이야기를 풀어가기 위해서다. <살인의 추억>이 그 유명한 “화성연쇄살인사건”을 소재로 삼았다는 이야기는 삼척동자도 다 알 것이리라. (…생각해보니 삼척동자는 모를 수도 있겠다) 십 여 차례에 걸친 강간살인사건과 아직도 잡지 못한 범인, 그리고 이제는 잊혀져가고 있다는 것 등등이 어느덧 흘러간 옛날 이야기가 되어버린 “화성연쇄살인사건”에서 지금 떠올릴 수 있는 이미지들이 되겠다.

즈아, 다시 한번 강조해보자. 실제 있었던 사건을 소재로 삼은 영화다. 당근 범인이 잡히지 않고 영화가 끝난다는 거 관객들이 잘 알고 있었으리라. 그런데 웃기게도, (그렇도다. 나는 몹시 웃겼다) 일부 관객들은 “범인이 잡히기를” 기대하고 극장에 찾아온 모양이었다. 왜냐고? <살인의 추억>을 보고난 후 인터넷 등에 올라온 감상평이라는 것들을 둘러보면, “범인이 누구냐”를 따지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기 때문이다. 개중에는 상당히 창의적인 의견을 내놓는 사람도 없지 않아 있었으나(백광호가 범인이라더라 -_-;) 대개는 “박해일이 범인이다”는 쪽에 심증을 굳히고 그쪽으로 어떻게 어떻게 구성을 짜맞추는, 그런 식의 이야기들이었다.

1841년 뉴욕, 메리 로저스라는 젊은 아가씨의 변사체가 발견되었다. “미모의 젊은 여성, 의문의 변사체”라는 게 여론의 관심을 끌었는지 신문에서도 비중있게 다루고 수사도 활발하게 진행되었으나, 결국 사건은 미궁에 빠지고 말았다고 한다. 바로 이때, 인류 최초의 추리소설을 썼던 작가 에드가 앨런 포우가 이 사건을 바탕으로 (무대를 파리로 옮기고 이름도 프랑스식으로 바꿔서) <마리 로제의 비밀>이라는 추리소설을 발표했다. 다시 말하면 미궁에 빠진 사건에 대한 포우 자신의 추리를 공개한 셈이다. 포우가 사건 현장을 방문하거나 경찰들에게 수사 진행사항을 물어보지 않고 신문기사만을 읽고 이 추리소설을 쓴 것처럼, 소설 속의 탐정 오귀스트 뒤팽도 범행 현장에 직접 가보거나 경찰을 만나보지 않고 주위에서 전해주는 이야기와 신문기사만으로 범인을 추리해낸다. 포우가 추리해낸 대로 범인이 잡혔는지는 내가 아는 한 확인되지 않았다. (포우의 추리가 맞았다, 고 주장하는 글도 꽤 있었지만)

왜 뜬금없이 이 이야기를 꺼냈느냐 하면, <살인의 추억>은 <마리 로제의 비밀>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범인을 잡기 위한 영화도 아니고, 범인이 누구라고 밝혀주기 위한 영화도 아니다. 실제 화성연쇄살인사건과 영화 속의 연쇄살인사건은 몇몇 모티브만 따왔을 뿐 전혀 다른 상황, 전혀 다른 환경에서 벌어진 사건들이다. 고로 <살인의 추억>을 보고 실제 화성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을 맞추려는 시도는 무의미하고 쓸데없는 짓이다. <살인의 추억>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왜 그때 범인을 잡지 못했는가”에 대한 추억, 그것 뿐이었어야만 했던 셈이다.

<살인의 추억>에서는 범인을 잡지 못했던 이유들로 민생치안보다 데모진압에 병력을 우선 투입해야만 했던 정국 분위기나 시골이라는 환경에서 벌어지는 비과학적인 주먹구구식 수사 등 80년대의 아프고 초라했던 기억들을 들쑤시고 있지만, 시대에 대한 아픔이나 울분이 지나온 상황을 되돌려주진 않는다. 그래서 제목도 <…추억>이라는 단어를 썼다고 생각되고… 다시 말하면 <살인의 추억>에 있어서 “화성연쇄살인사건”은 인간을 돌아볼 수 없었던 80년대의 아픈 추억일 뿐이지, “화성연쇄살인사건” 자체가 하나의 추억은 아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게 <살인의 추억>이 지향하는 주제에 좀더 부합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내 생각에는 감독이 욕심을 부린 듯 싶다.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서 “사람들이 화성연쇄살인사건에 다시 한 번 관심을 갖기를” 바라지 않았나 싶다. (아예 어떤 인터뷰에서는 직접적으로 그런 말도 하더라만…) 지금에라도 범인을 잡으려는 시도가 잘못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어차피 허구인 영화를 통해서 진실을 규명하겠다는 시도라는 것은 <J.F.K>에서 지목한 범인이 진짜 케네디 암살범이라고 사람들이 믿어버리는 것만큼이나 위험한 일일 수도 있기 때문에 그 점을 경계하는 것일 뿐이다. (가능성? 그런 건 너무 나이브하지않은가) 영화는 영화가 해야할 몫이 있고, 간혹 그 몫을 넘치지않을 수 없을 때에는 관객들이 같이 넘쳐나지 못하도록 외부에서라도 통제를 했어야 했다. 그런데… “실제로 벌어진 화성연쇄살인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라고 입을 모아 홍보하는 꼬라지를 보니, 역시 영화는 사회적 역할이나 문화의 대변보다 그저 어떻게든 입소문을 타서 돈이나 벌면 그게 최고라는 자조적인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에잉, 어차피 자본주의에서 영화란, 문화란 다 그런 것일 수밖에 없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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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Responses

  1. ㅇㅇ 말해보세요:

    실제 몽타주를 닮은 박해일이 범인이었고, 심지어 결혼해서는 처제를 강간하고 죽인 죄로 이미 잡힌 뒤에 영화가 나왔다는게 소름돋는 부분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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