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 이것이 진짜 이와이 슈운지

이와이 슈운지의 <러브레터> 불법판이 우리나라를 강타한 것이 대략 1998년도쯤인 것 같다. (그때는 지금처럼 인터넷으로 영화파일을 공유하거나 하는 것도 없이, 순수하게 불법복제테이프로만 돌았지 싶다) 영화가 만들어진 것보다 한 3년 정도 지난 다음이다. 그리고 내가 지금 이야기하려고 하는 영화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참고로 우리나라에도 같은 제목의 영화가 있었다. 김흥국 주연의 <앗싸 호랑나비>라고 아시는지들…)가 만들어진 것보다도 2년 정도 지난 다음이다.

아무튼 <러브레터>가 한창 인기를 끌던 무렵, 부산국제영화제로 기억하는데 이와이 슈운지의 신작인 <4월 이야기>가 우리나라에 공식으로 소개되는 자리가 있었다. 이와이 스스로도 “<4월 이야기>는 소품”이라고 밝혔듯 (나중에 보니 러닝타임도 1시간 정도밖에 안되더라는 -_-;) 사실 주목받을만한 영화는 아니었는데, 내 기억으로 당시 <4월 이야기>는 엄청난 관객을 동원했었다. 아마도 전적으로 <러브레터>의 영향이었다고 생각되지만.

어쨌든 <러브레터>나 <4월 이야기>나, 상당히 낭만적인 스토리에 서정적이면서도 감각적인 영상을 앞세운 로맨틱 무비의 전형처럼 받아들여졌고, 이와이 슈운지도 대략 그런 “낭만파 감독”으로 취급되었던 것 같다. (나 혼자 그렇게 생각했다면, 손들고 반성하도록 하겠다) 그렇기에 문제의 이 영화,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라는 영화가 일본에서 개봉되었을 때도, 우리나라에 불법판이 돌았을 때도-_-; 상당히 충격으로 받아들여졌었다고 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와이 슈운지의 필모그래피에서 보면 <러브레터>나 <4월 이야기>가 오히려 이질적인 영화로 꼽혀야한다는 점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4월 이야기> 정도가 정말 그의 말마따나 “소품”에 불과한 – 좀더 편하게 말하면 심심해서 한번 만들어본 – 특이한 영화고, <러브레터>도 낭만주의나 서정주의랑은 조금 거리를 두는 영화로 봐야 옳다고 생각한다. 생각해보라. “얼굴이 똑같이 생긴 두 여성을 연달아 사랑하다 죽은 남자”에 관한 이야기와, “그 두 여자가 서로 만나 그 남자의 진정한 사랑이 누구인지 결판내는” 이야기에 무슨 낭만이고 무슨 서정인가. 스릴러나 판타지, 심리극에 더 어울리는 소재다 이건. (최근 들어 우리나라에서 이와 비슷한, 로맨틱을 표방한 심리스릴러-_- 영화가 몇 편 나왔다. <오버 더 레인보우>랑 <봄날의 곰…> 어쩌구 하는 것들인데, 전부 로맨스에 얽매여서 흥행 망했다지) <러브레터>에서 “미처 깨닺지 못했던, 학창 시절의 풋풋했던 사랑”이라는 소재가 조금 강조되어 받아들여지다보니 이래저래 확대해석된 부분이 있을 수 있지만, 엄연히 <러브레터>의 핵심은 “사랑인 줄 모르고 사랑을 떠나보낸 여자”와 “사랑인 줄 알았었는데 알고보니 사랑이 아니었다는 걸 깨달은 여자”들의 이야기다.

<러브레터> 이야기하려던 게 아닌데 본의아니게 길어졌다.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로 돌아와서, 이와이 슈운지가 <러브레터>를 찍기 전 내놓았던 일련의 작품들을 보면 분명 우리가 <러브레터> <4월 이야기>를 보며 떠올렸던 이와이의 이미지보다는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쪽에 가까운 영화들이다. 다만 전작들에 비해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에서 좀더 사회적인 내용을 담고, 서정적인 장면 대신 잔혹한 장면들을 많이 넣었으며, 예전의 영화들에 비해서 스토리가 대폭 약해진 것은 변화라고 할만한 정도다. 하긴 그렇다고 해도 사회비판적인 내용이 나오는데 그것이 그렇게 깊이가 있는 것도 아니고, 잔혹한 장면이라고 해도 예전의 감각적인 영상미를 잃었다기보단 좀더 다양한 방식으로 영상을 실험하는 것으로 보이며, 스토리는 대충 접고 보면 또 지극히 단순한 이야기밖에 안되는 것이긴 하다. 이와이 슈운지가 원래 스토리텔링보다는 영상과 스타일에 심취하는 축임을 감안하면, 비현실적인 스토리를 고집하는 것도 결국 그의 스타일의 하나로 받아들여주는게 옳다고 본다. 즉 일련의 작품들에서 보여주던 이와이의 스타일이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에서는 특별히 강조되거나 새롭게 해석된 부분은 있었어도 예전의 스타일을 버리고 새롭게 태어나려는 시도 같은 것은 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야, 간단한 말 한마디 만들어내려고 한참 돌아서 왔다)

대개의 신인급 영화감독들은 초기작품에서 대박이 터진 경우 두 갈래 길로 나뉘어 걸어간다. 하나는 이제야 자신의 스타일을 찾겠다며 흥행작과 전혀 딴판인, 정말 관객들이 외면하기 딱 좋은 영화를 당당하게 들고 나오는 경우고, 또 하나는 자기 색깔이고 뭐고 희미해져서 흥행작과 비슷한 영화를 다시 들고 나와 그냥저냥 흥행이나 다시 노리는 경우다. (최악의 경우는, 첫번째로 갔다가 대실패하고 두번째로 다시 가는 경우다) 이와이 슈운지 같은 경우는 <러브레터>의 대박 이후에도 그 “대박요소”에 얽매이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성급하게 그것을 버리지도 않았다고 본다. 누가 뭐라건 오직 자신만의 스타일을 고수하고, 고수하는 정도가 아니라 변화시켜가고 발전시켜가는 쪽으로 꾸준히 영화를 만들어내는 것으로 봐선, 그의 스타일이 나에게 맞고 안맞고를 떠나서 일단 대단한 감독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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