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리피 할로우] Intro

평소 시사회와는 전혀 인연이 없는 편인데, 누가 시사회 표가 남는다고 연락을 줘서 우연찮게 시사회 좌석에서 영화를 한편 봤다. 팀 버튼 감독의 <슬리피 할로우>라는 영화였는데, 평소 팀 버튼을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그 감독의 독특한 영화세계에는 흥미가 있었던 편이기 때문에 비교적 노리고 본 영화 축에 속했다.

내가 생각하는 팀 버튼 영화는 “공포영화조차 유머스러운” 영화다. <슬리피 할로우>는 그런 측면에서 매우 팀 버튼스러웠다. 목없는 무사가 밤이면 나타나 마을 사람들의 목을 잘라간다. 목을 자르는 장면, 그리고 떨어진 목과 목이 떨어진 시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면서도 시종일관 관객들을 푸헤헤 웃게 만드는 힘이 팀 버튼 영화의 힘인 것이다. 나 역시 푸헤헤 웃었던 수많은 관객들의 한 사람이고, 정통 코미디가 아닌 영화에서 그렇게 웃어보기도 참 오랜만이었다.

그런데 시작은 참 독특하다. 시작만 떼어놓고 보면 마치 팀 버튼의 영화가 아닌, 정통 호러/슬래셔무비의 맥을 달리고 있었으니까. 일단 음악이 상당히 무겁게 시작한다. 현악기와 사람의 허밍소리, 그리고 잦은 강약 조절로 관객의 심장박동을 빠르게 맞춰나간다. (공포영화 주제음악의 생명은 관객의 심장박동을 조절하는데 있다. 결정적인 순간에 심장이 딱 멎게 하는 효과는 화면보다 음악의 역할이고) <가위손>을 본 사람이라면 그 슬픈 듯, 우울한 듯, 그러나 운명적인 주제음악을 기억하리라 생각하는데, <슬리피 할로우>의 음악도 역시 <가위손>의 음악을 맡았던 데니 앨프만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시작부분에서 흐르는 이 서곡은 <가위손>의 냄새도 짙게 풍긴다. 그러나 훨씬 장중하고, 또한 공포스럽다.

유언장에 서명하고 봉인하는 한 남자. 그것이 실질적으로 자신의 사망신고서에 서명하는 것인 줄 아는지 모르는지, 그 남자는 서명한 유언장을 담은 가방을 안고 밤길을 마차로 달린다. (이렇게 상투적인… 왜 살해당할 사람은 외진 밤길을 다니는 걸까? 귀신이 씌워서?) 이게 무슨 영화인지 모르고 좌석에 앉은 사람에게도 지금 마차를 타고 달리는 이 남자에게 무슨 일이 벌어질지 충분히 예측 가능하도록, 음악은 관객의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말발굽 소리, 그리고 짧은 쇳소리.

<가위손>에서도 썼던 방법의 하나지만 악기에 의존하지 않고 (하긴, 그 독특한 음악을 잘 살려줄 악기를 나보고 꼽아보라고 해도… 난 못찾을 것 같다) 사람의 허밍 소리로 분위기를 돋구는 방법은 공포영화에서 제법 잘 쓰이는 편이다. 음악으로 초반에 관객들을 압도한 팀 버튼은 그 후부터 마음껏 스크린에 자기 세계를 펼쳐낸다. 그것을 보며 관객은 웃었다가 놀랐다가, 팀 버튼의 지휘에 맘대로 놀아날 수밖에 없었다. 스포츠에서도 기선 제압이 중요하지 않은가. 팀 버튼은 공포영화로는 평범한 시작에 비범한 음악을 끼워넣어 관객을 압도하는데 성공했던 것이다. 그렇게 두 시간 가까이 감독에게 마음껏 조롱당한(?) 관객들은 극장을 나서며 “정말 재밌다”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줄 수밖에 없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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