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시절] 영화와 만화

집 앞 골목길에 극장이랍시고 종이로 끄적거린 간판을 붙여놓고, 동네 아이들을 끌어모아 놓은 뒤 혼자서 일인극을 벌이는 것이 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내가 놀던 방법이었다. 혼자서 태권 브이, 마징가 제트 등 아무 줄거리도 없는 연극을 나 혼자서 신나서 빵야빵야 뛰고 차고 날라다니기 일쑤였기 때문에 모여있던 아이들은 10여분도 못되서 흩어지곤 했다. 그래도 끝까지 남아있던 아이는 앞집 살던 지은이(나의 첫 여자친구…당시 여섯살) 뿐이었다. 나이를 불문하고 사랑은 위대한 법이니까.

내가 영화를 보다가 감동받아서 눈물을 흘리고 기립박수를 보낸 영화는 지금껏 딱 한 편밖에 없다. 정확히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국민학교 3학년때였던 것 같고, 영화 제목은 「우주전함 거북선」이었다.
영화는 당시 우리의 최고 영웅이었던 태권 브이를 분해해서 우주전함 거북선을 만드는 것으로 시작했다. 이럴 수가 있나. 포스터에 태권 브이가 나오는 걸 분명히 보고 왔는데. 신림극장을 가득 메운 어린이들은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했었다. 그런데 영화가 클라이맥스로 치달을 무렵, 전투기로 싸우던 훈이(태권 브이의 조종사. 설명이 필요한가?)가 위기에 몰렸을 때 윤 박사가 외쳤다.
“훈아! 빨간 버튼을 눌러라!”
훈이가 빨간 버튼을 누르자, 거북선의 옆구리가 열리더니 조각난 태권 브이가 나와서 하나로 결합하는게 아닌가!!!!!! 동시에 극장에는 ‘빰빠라빰빰빰 빰빠라빰~ 달려라 달려 로보트야~’하는 태권 브이의 주제가가 웅장하게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내가 만화영화 주제가는 달달달 외우고 있는데 거북선 주제가는 태권 브이 주제가에 치어서 기억을 못한다) 극장 안의 어린이들은 극장이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면서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기립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스크린에서는 태권 브이가 태권도로 악당들을 격파하고… 나역시 어린 놈이 뭘 안다고 뜨거운 눈물을 흘려가며 박수를 치고 있었다. 그리고나서는, 극장에서 울어본 기억이 없다.

국민학교때 나의 취미는 만화그리기였다. 수업시간이건 언제건 선생님 말씀은 듣지 않고 연습장에 그림을 끄적거리곤 했다. 형이 학교에서 1등을 달리며 어린이회장을 하는 등 화려한 국민학생 시절을 보낸 반면, 나는 우등상은 커녕 그 흔한 개근상 하나 받지 못하고 반에서 20등 정도 되는 성적으로 국민학교를 졸업했다. 일등 공신은 단연 만화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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