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속] 껍질은 있으되, 알맹이는 없더라

작년도 국내 최대흥행작? 영화 <접속>을 단적으로 표현해주는 말이다. 나는 근본적으로 로맨틱한 영화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성미이므로, 또 작년은 나에게 지나치게 정신없는 한 해였기 때문에, 나는 그 쟁쟁한 <접속>이란 영화를 개봉관에서도, 비디오로도 볼 수가 없었다. 그저 줏어들은 정보로는 괜찮다더라, 한국영화 많이 발전했더라, 그 영화가 뜬 이후로 PC통신에서 어떻게 커플이라도 이뤄보려는 풍조가 성행한다더라 뭐 그런 정도였다.

드디어 올해 <접속>을 보았다. 야 나도 처음엔 좋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뭐 내가 머리가 나쁜 탓이겠지만, 가만히 앉아서 곰곰이 생각해볼수록 어 이게 아닌데 싶은 점이 불쑥불쑥 떠오르는 것이다. 뭐가 아니란 말이냐고 따질 분들을 위해서 지금부터 하나씩 짚어보겠다.

먼저 나는 이 영화가 로맨스 영화라고 생각했다. 옛사랑을 그리워하는 남자와 지금 사랑하는 남자에게 버림받은 여자가 서로 맺어지는 줄거리로는 완벽한 로맨스 영화다. 그런데, 두 사람이 맺어지는 과정이 내가 보기엔 영 미약하더라는 것이다. 한석규가 자신의 오랜 사랑을 그리워하다가 다시 상처받는 것이나 전도연이 오래 좋아해왔던 남자를 자신의 친구에게 영영 뺏겨버리는 장면은 정말정말 훌륭하게 표현되었다. 특히 추상미하고 그 놈이 누구더라? 하여튼 그 남자배우 연기 밉살맞고 느끼하게 잘하더군. 아 맞다 김태우라나 그랬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한석규와 전도연이 친해지는 과정은 서로 PC 앞에 앉아 타자치는 장면 잠깐잠깐과 뭐라고 썼는지 잘 보이지도 않는 자막들뿐이었다. 서로의 아픈 상처를 서로 만져주면서 서로 좋아해가는 과정이 영화를 보는 나에게 너무나 짧게 느껴졌다면 생트집처럼 들리는가. 아니면 그것이 단지 통신, 특히 채팅이란 문화에 대해서 내 이해가 너무 짧기 때문인가. 그러나 아무리 주관적으로 봐줘도, 이미 그 전부터 채팅을 통해 서로에게 친숙해져있었던 사이라지만 관객들을 납득시킬 수 있는(하기야, 나빼고는 다들 납득한 것 같더만…) 충분한 서술은 부족하다. 관객들도 납득했다기 보다는 어차피 한석규와 전도연이 이루어진다는 줄거리를 알고 들어왔기 때문에 극의 흐름에 따라가준 것 뿐이다. 줄거리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 이 영화를 본다면 말 그대로 두 사람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급속도로 가까와졌다고밖에 믿을 수 없을 것이다.

하나 더, <접속>의 마지막 장면 – 한석규와 전도연이 드디어 서로 만나는 장면은 사실 다른 영화에서 많이 울궈먹은 장면이다. 물론 남녀주인공이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야 처음 만난다는 설정은 아마 보기 드물겠지만(어쩌면 처음일지도 모른다. 나는 전례를 모르니까) 남녀주인공이 만나면서 그냥 말없이 맺어버리는 영화는 많았다. 왜? 여운을 남기려고.

그런데 이상하게 <접속>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여운이 남질 않더라는 것이다. 관객들 모두 당연히 두 사람이 잘될거라고 믿고 아무도 그 미래를 의심하지 않았다. 분위기는 여운을 풍기게끔 만들어놓고 아무도 여운을 갖지 않다니. 내가 가장 좋게 보았던 로맨틱 영화 <가을날의 동화>에서의 라스트 씬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 영화에서 주윤발과 종초홍이 다시 사랑을 하게 될지 아니면 그냥 그렇게 다시 헤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접속에서의 한석규와 전도연은 영화 속에서 내내 애타게 그리워한 사이도 아니고, 그저 몇 번 스쳐 만났고 채팅으로 많이 친숙해진 사이가 드디어 처음 만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관객들은 마음 속으로라도 박수를 보내고 극장을 나섰을 것이다. 두 사람이 잘 됐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내가 말하고 싶었던 핵심은 이미 짜여진 극본처럼 착착 아구가 맞아 떨어지는 영화, 상투적인 영화라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줄거리가 그저 상투적이라는 게 아니라, 줄거리를 이미 홍보를 통해 다 알려놓고 관객들 대부분이 그 줄거리를 쫓으며 영화를 보게 한 영화라는 것이다.
나머지는 괜찮았다. 결국 접속의 흥행 성공은 광고의 성공, 홍보의 성공일 뿐이다. 통신을 통해 맺어지는 사랑이라고 이미 대대적인 광고가 나갔기 때문에 대부분 통신을 즐기는 사람들이었을 관객들은 두 사람이 맺어질 줄 알고 영화를 보았다. 중간에 세번인가 서로 스쳐갈 때도 나중에 맺어질 사람들인줄 아니까 관객들이 안타깝게 볼 수 있었다. 이렇게 이렇게 홍보를 하고, 그 내용을 보고 몰려온 관객들이 이런 기대감을 갖고 영화를 볼테니까 그 기대감을 이렇게 이렇게 요소요소에서 충족시켜주자, 기획의도가 다분히 그런 영화였지 영화적으로 완성도있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통신회사 유니텔이 이 영화의 제작비를 댔고, 이 영화의 성공 이후 통신인구가 급증했다는 신문기사를 보면 아예 이 영화를 2시간짜리 유니텔 광고영화로 폄하하고 싶은 생각도 들지만 이 정도로 참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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